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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V ③] 女배구, 위계질서 버리고 '신뢰'로 뭉쳤다

기사입력 2012.07.19 10:06 / 기사수정 2012.07.20 03:18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한국여자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동메달 획득 이후 36년 만에 메달을 노리고 있다. 일본에게 당한 22연패의 사슬을 끊고 올림픽예선전에서 당당히 2위로 본선행 티켓을 거머줬다.

'이번에는 꼭 해보자'라는 결연한 의지로 뭉친 12명의 선수들은 '자매애'로 똘똘 뭉쳤다. 선후배간의 위계질서는 없었다. 국내리그에서 빚어진 갈등의 앙금도 없었다. 라이벌이라는 자존심 싸움도 모두 벗어던졌다.

4대 구기 종목 중 이번 2012 런던올림픽에 출전하는 종목은 남자축구와 여자배구뿐이다. 남자배구와 남자농구, 여자농구가 줄줄이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여자배구에 거는 기대가 커졌다.

선수 보강이 안 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12명의 선수들은 꿋꿋하게 걸어왔다. 올림픽 메달에 대한 의지는 여전히 뜨거웠지만 최근 대표팀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팀의 에이스인 김연경이 자신의 거취 문제로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원 소속팀인 흥국생명으로부터 임의탈퇴선수가 된 김연경을 만나 최근의 심경을 들어봤다. 또한 여자배구의 올림픽 전망을 짚어보고 팀을 이끌어가는 선임 선수들의 목소리도 들어봤다.

[매거진V ①] 김연경, 고민은 '에이스의 사명'만으로 충분하다
[매거진V ②] 미리보는 런던올림픽 女배구
[매거진V ③] 女배구, 위계질서 버리고 '신뢰'로 뭉쳤다

선후배간의 위계질서는 한국스포츠의 전통 중 하나다. 과거에는 '군기반장'으로 나서며 후배를 다잡는 선배들이 팀마다 존재했다. 후배들의 나태함을 꾸짖는 긍정적인 요소도 됐지만 효율적인 경기 운영을 해치는 '독'으로도 작용했다.

런던올림픽에서 36년 만에 메달 획득에 도전하는 한국여자배구대표팀 선수들은 "우리는 군기반장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선후배를 떠나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나가는 동료이기를 원했다.

언니와 동생 때로는 친구처럼 서로를 격려하고 자극을 주며 동행하자는 것이 이들의 뜻이었다.

여자배구대표팀은 지난 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올림픽이 열리는 영국 런던으로 떠났다. 올림픽을 눈앞에 두고 막바지 달금질에 있었던 대표팀을 만나봤다. 특히 ‘마지막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선임 선수들의 마음가짐은 남달랐다.



女배구, 위계질서 버리고 '신뢰'로 뭉쳤다


여자배구대표팀의 캡틴인 김사니(31, 흥국생명)는 지난 10년 동안 대표팀 주전 세터로 활약해왔다. 그가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 밟은 것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이었다. 김철용 감독이 이끌던 당시 대표팀에는 '당대의 세터'인 강혜미(전 현대건설)가 버티고 있었다.

강혜미의 존재는 대표팀에 큰 힘이 됐다. 하지만 주전 세터로 코트에 더 많이 나선 이는 20대 초반의 어린 세터였던 김사니였다. 올림픽 예선전에서 러시아와 이탈리아를 연파하며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줬을 때 김사니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런던 올림픽을 눈앞에 뒀는데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 하지만 감독님과 선수들이 올림픽이 가까이 왔다고 각인시켜주시죠. 이번 올림픽에서는 집중력이 필요하고 점수 하나에 메달이 달려있다고 봅니다. 런던에 도착한 뒤에는 시차적응을 잘해서 꼭 좋은 성적을 올리고 돌아오고 싶어요." - 김사니

김사니는 여전히 어깨부상으로 고생 중이다. 그러나 이번이 마지막일 런던올림픽은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올림픽예선전을 마친 김사니는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하지 않고 재활에 들어갔다.

"어깨 부상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완전하게 회복된 건 아니에요. 그랑프리 대회 기간 동안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할 만한 편입니다. 그래도 조심은 하고 있어요." - 김사니

팀의 주장인 김사니는 팀에서 리더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군기반장은 없다고 밝혔다. 모두 친구처럼 지내면서 서로 의지하고 함께 힘을 주는 동료가 됐다고 밝혔다.

김형실 감독은 올림픽예선전에 출전한 12명 엔트리를 교체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런던에 가기 위해 마음을 합친 상태였고 팀 분위기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기 때문이다. 김사니 역시 12명 멤버에 대해 강한 신뢰감을 드러냈다.

"저도 감독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시즌이 끝난 뒤 쉬지도 못한 상태에서 우리 선수들은 반드시 런던에 가자는 신념으로 지금까지 달려왔어요. 특히 베테랑 선수들이 많이 들어온 점이 의미가 있었죠. 그랑프리 대회 결과가 안 좋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12명이 함께 가자고 마음을 모았어요." - 김사니

이 부분에 대해 정대영(31, GS칼텍스)과 이숙자(32, GS칼텍스)도 공감을 표시했다. 정대영은 "(김)사니와 같은 생각이다. 올림픽에 가기 위해 다들 고생을 했는데 지금 상황에서 멤버를 교체하면 팀 분위기가 많이 안 좋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숙자는 현 대표팀 멤버들이 '자매'같다고 밝혔다.

"정말 지금 선수들은 모두 자매 같아요. 팀에 가면 (정)대영이가 있지만 어린 선수들과 나이차가 많은데 대표팀에는 저와 비슷한 또래의 선수들이 많아서 서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 이숙자



정대영과 이숙자는 모두 기혼자이다. 코트에서 서면 여전사로 변하지만 체육관을 떠나면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있다. 대표팀에 들어오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아쉬움을 떨치기 위해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정대영은 아테네올림픽에서 21세의 어린나이에 주전 센터로 활약했다.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언니들이 주축을 이뤘지만 지금은 저희들이 이끌어나가는 입장이 됐습니다. 이점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계속 손발을 잘 맞춰나가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아요." - 정대영

김사니와 정대영은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이숙자는 이번 런던이 첫 번째 올림픽 출전이다. 늦은 나이에 올림픽 진출의 꿈을 이뤄낸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올림픽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올림픽을 눈앞에 두고 있어요. 제가 뛰든 안 뛰든 팀에 동참해서 보탬이 되면 거기에 만족합니다." - 이숙자

김사니가 어깨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이숙자는 홀로 그랑프리 대회를 이끌어나갔다. 대회 막판 실업무대에서 뛰고 있는 정지윤(양산시청)이 합류했지만 백업 세터 없이 홀로 힘겹게 팀을 이끌고 나갔다. 특히 이숙자는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들이 즐비한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외국은 어릴 때는 운동을 취미삼아 재미있게 즐기면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밟기 때문에 선수 생명이 길어요. 하지만 우리는 20대 중반만 되도 노장 선수라는 소리를 듣고 있죠. 저는 26살 때부터 노장선수란 소리를 들었어요.(웃음)" - 이숙자

이번 대표팀은 30대 선수들이 다섯 명 포함돼있다. 선임 선수들이 많아서 위계질서가 있을 것 같지만 그런 것은 없다고 밝혔다.

"대표팀에서 가장 어린 선수는 (김)희진이인데 희진이는 저를 엄마라고 불러요.(웃음) 선후배 관계를 떠나서 모두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 정대영

현 대표팀은 6라운드에 달하는 정규시즌을 모두 마친 뒤 치료와 재활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대표팀에 합류했다. 또한 12명의 선수 중 4명의 부상 선수가 나왔을 때는 8명의 선수로 그랑프리 대회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차기 올림픽에서는 선수들의 입장을 배려해줬으면 하는 뜻에 대해 입을 모았다.

"국내리그도 중요하고 국제대회도 그에 못지않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앞으로 이렇게 큰 대회가 있을 때는 협회와 연맹이 잘 조절을 해서 좋은 몸 상태로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사진 = 김사니, 정대영, 이숙자, 한국여자배구대표팀 (C)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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