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08.12 05:22 / 기사수정 2007.08.12 05:22
[中]이장수감독으로 보는 한중 축구의 차이점
이장수감독, 한중축구의 차이를 말하다.
8월 10일 중국의 CCTV의 축구 프로그램인 '축구의 밤'에서는 '축구삼국'이라는 코너를 통해 한중일 축구의 차이점을 방영했다. 그 중 한국에 대한 이야기는 이장수감독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중국에서도 '충칭의 별'이란 칭호까지 얻을 정도로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두었었고, 한국에 돌아온 후 전남드래곤즈와 FC서울에서 감독직을 맡은 후, 이번 시즌에는 또 다시 중국에서 베이징구어안팀의 감독직을 맡은 인물이기에, 중국에서는 한국축구를 말할 때면 늘 이장수감독을 거론하곤 한다. 다음은 CCTV에서 방영한 이장수감독에 관한 내용들이다.
(해설)2006년 12월 26일, 한국의 이장수감독이 베이징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베이징구어안팀의 감독직을 맡으러 온 것이다. 3년만에 그는 또 다시 중국에서 감독직을 하게 된 것이다.
(기자)현재 기분은 어떠한가?
(이장수)일찍이 나는 중국을 떠날 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처음 충칭(중경)에 온것은 1985년 5월 말인가 6월 초였다. 당시 충칭은 40도 정도의 기온으로 그렇게 더운 줄 몰랐다. 선수들은 저녁이면 야식을 먹거나 맥주를 마셨다. 그런 훈련조건, 40도의 날씨에서의 훈련을 하면 목표했던 훈련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해설)처음 그는 충칭에서 환다오팀을 맡았는데 선수들은 자립심이 없었고 경기 전에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곤 하는 모습은 그를 놀라게 했다. 그것은 한국선수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장수)한국선수들도 친구들이 있지만 꼭 만나야 될 친구가 아니라면 한국선수들은 경기 3~4일 전, 즉 경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시간 내에 일을 처리한다. 경기 하루이틀 전에는 모든 집중력을 경기에 둔다. 중국선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경기 전날에도 술을 마시러 친구들과 나간다.
(해설)팀의 성적과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이장수감독은 우선 팀의 규율을 정돈했다. 선수들의 심야외출을 막아서 훈련의 질을 높이는 것이 처음으로 한 일이다.
(해설) 중국선수들의 흡연, 음주 문제에 대해 이장수감독은 이해할 수 없다고 보았다. 특히 그가 잘 아는, 한국선수들과는 다르다고 여겼다.
(이장수)한국선수들도 흡연자가 있지만 그들은 그렇게 많이 피우지 않는다. 10명 중 한두명밖에 피우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선수들은 경기의 하프타임 때에도 락커룸에 담배를 갖고 들어온다.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선수들의 흡연문제는 정말 익숙하지 않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담배나 라이터가 보이면 곧바로 압수했었다.
(해설)여러차례 이장수감독과 마찰을 빚었던 선수인 까오펑은 이렇게 말한다.
(까오펑, 1998년 이장수감독이 지휘하던 환다오팀의 선수)한국에서라면 그는 그런 권력이 있겠지만 중국에서는 그렇게 심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는 이장수감독도 어쨌든 그는 중국에 있다는 점을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장수)처음 팀에 왔을 때는 80%의 선수들이 흡연을 했다. 그 때부터 그들에게 금연을 요구했다. 금연이 안되면 줄여서 피우라고 했고 그것도 안된다면 정말 방법이 없었다.
(해설)이장수감독은 훈련에 대해서는 어떠한 느슨한 면도 없었다.
(쟝펑, 전 환다오 팀의 선수)1998년 이장수감독이 왔을 대 그는 내가 뚱뚱하다고 그 즉시 살을 빼라고 했다. 보름 정도만에 거의 30kg을 뺐다.
(해설)경기에서 이장수감독은 한국 특유의 태도와 스타일, 적극성을 중시했다.
(이장수)2:0으로 앞섰더라도 서있으면 안된다. 뛰어야 한다. 한 골이라도 더 넣어야 좋은 경기를 하는 것이다. 2:0이라는 스코어도 뒤집힐 수 있고 질 수도 있다. 3:0은 질 수 없다. 그러니 후반전에는 더 많이 뛰어야 한다. 많은 중국 선수들이 한국과 경기하기 싫어한다. 유럽이나 남미팀들이 한국과 경기하기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국팀은 상대를 정말 신경쓰이도록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아시아 선수들은 유럽, 남미선수들보다 신체적으로 뒤쳐지기에 그 점을 보충하기 위해서 한국선수들은 더 많이 뛰는 것이다.
(해설)충칭리판(전 환다오팀)의 지나친 요구 등으로 이장수감독은 리판팀에서 3시즌 반 후에 더 젊고 잠재력있는 칭다오팀으로 갔다. 팀을 최대한 빨리 성장시키기 위해 그는 선수들을 꾸짖고 때리고 욕도 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었다.
(까오밍, 전 칭다오팀 선수)우리선수 대부분은 모두 맞았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처럼 진짜로 맞은 것은 아니다. 이장수감독은 선수들이 잘 되기를 바래서 그런 방식을 썼던 것이다.
(해설)새로운 훈련방식은 단기간 내에 효력을 발휘했다. 칭다오팀은 한 시즌 후 축협컵 우승을 차지했다.이는 칭다오 팀 역사상 첫 전국대회 우승이었다.
(이장수) 짜고하는 경기, 도박이 걸린 경기 등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나는 줄곧 회피해왔었다. 지금은 그런 소문들에 대해서 결코 모두가 근거없는 것은 아니라고 여긴다. 칭다오에서, 시안팀과 경기할 때, 전반전 30분 만에 우리는 벌써 4:0으로 앞섰다. 우리는 당시 어웨이팀이었기에 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어웨이팀이 전반에만 4:0으로 앞선다는 것은 때려죽어도 믿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우리는 5:4로 이겼다. 후반전에 몇 분만 더 있어도 분명 스코어는 5:5가 되었을 것이다. 4:3이었을 때 우리는 선수를 모두 교체했었다. 5:4라는 스코어는 정상적인 결과가 아니었다.
(해설)그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선수들은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았다. 도박관련 문제를 없애기 위해 그는 경기 시작 한시간 전에야 선발명단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도 칭다오의 축구환경을 진정 바꿀 수 없었다. 칭다오팀은 여전히 문제가 많은 팀이었고, 팬들은 이장수감독에게 사퇴하라고 외쳤으며 결국 2003년 그는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하면서 팀을 떠났다. 팀은 그를 만류했지만 그는 한국으로 귀국했다. 한국에 온 후 그는 전남드래곤즈와 FC서울팀을 맡았다. FC서울의 쿤밍에서의 동계훈련 당시 2년만에 만난 이장수감독은 오히려 더 젊어보였다.
(이장수) 젊어보인다고 해 줬을 때는 기분좋았었다. 부담이 없는 곳은 없겠지만, 선수관리, 훈련일정 안배 등의 측면에서 한국측이 다소 격식을 더 갖추었다.
(이장수)중국은 문화와 현실의 차이가 있다. 현재 중국은 한 자녀만을 가지라는 가족계획이 있다. 그런 아이들은 집에서는 모두 '소황제'이다. 어릴 때 부모에게 많이 의지하니 성장한 후에는 자립능력이 떨어진다. 중국은 광활하고 문물이 많아서 그렇게 아둥바둥거리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국토는 좁고 인구는 밀집되어서 경쟁에서 낙오되면 사회적인 차별을 받는다. 실패감을 절실히 느낀다는 것이다.
(해설) 올해 1월 12일 베이징팀의 동계 체력테스트에서 선수들은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지 못했고 주전선수인 양푸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장수)이런 테스트도 통과하지 못한다면 경기에 적응할 수 없다.
(해설)8월 8일, 샨동루넝과의 경기까지 합해 이장수감독은 이미 중국리그 161경기에서 감독직을 맡았다. 그는 중국 프로리그에서 가장 많은 출장횟수를 기록한 감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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