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5-02-01 18:25
스포츠

'자만과 노력' 오세아니아 축구 지각 변동

기사입력 2012.06.15 16:52 / 기사수정 2012.06.15 16:52

서영원 기자
[엑스포츠뉴스=서영원 기자] 유럽의 축구 시즌 종료 후 유로 2012가 한창이다. 유럽 축구 팬들의 갈증을 풀어 줄 유로는 ‘노장’ 안드레이 셰브첸코의 활약, 우승후보 독일의 쾌속행진, 네덜란드의 팀 분열 등 다양한 이슈들과 함께 축구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유럽 대륙의 열기에 사로잡힌 가운데 축구 약소 대륙 오세아니아에선 작은 이변이 발생했다. 4년 주기로 열리는 OFC 네이션스컵에서 타히티라는 생소한 나라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것도 호주가 빠진 오세아니아에 만년 우승 후보로 등극한 뉴질랜드가 결승 진출도 하지 못하며 마이너들의 축제로 마무리 됐다.

타히티는 결승전서 뉴 칼레도니아를 1-0으로 꺽고 국가 역사상 첫 우승을 달성하며 내년 열릴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진출권을 확보했다. 네이션스컵은 그동안 호주, 뉴질랜드가 양분해오던 패턴에 벗어남은 물론, 이들이 빠진 결승전을 치러내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냈다. 지구에서 축구를 가장 못하는 대륙으로 분류받는 오세아니아를 울고 울린 작은 기적은 무엇일까.



- 호주 없는 ‘동네대장’ 뉴질랜드의 자만

지난 2005년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아시아로 편입한 호주의 빈자리는 지금껏 뉴질랜드의 몫이었다. 주로 유럽 하부리그와 호주 A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뉴질랜드는 그간 호주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0.5장이 주어진 월드컵 플레이오프 출전권은 언제나 호주의 것이었다. 이들은 럭비와 크리켓이 인기가 많아 우수 운동 인재들이 축구로 오는 일은 거의 없다.

호주는 해리 큐얼(영국 이중국적), 마크 비두카(크로아티아 이중국적) 등 이민자 출신으로 유럽에서 활약하는 선수를 꾸준히 보유했지만 뉴질랜드는 약소한 선수층에 해외파는 가뭄에 콩나듯 있었다. 회원국 10여개 밖에 안된 작은 대륙에서 2인자의 길은 비참할 따름이었다. 이런 뉴질랜드에게 호주의 ‘전학’ 소식은 희소식일 수밖에 없었다. 네이션스컵은 물론 월드컵 진출 가능성도 한층 높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주가 떠난 후 오세아니아는 뉴질랜드 세상이 됐다. 이들은 2008 네이션스컵 우승은 물론, 2009 컨페더레이션스컵 참가, 2010 월드컵에 출전하며 자신들의 성공 스토리를 써갔다. 하지만 이게 독이 될지는 몰랐다.

뉴질랜드는 대표팀이 2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월드컵 예선, 컨페더레이션스컵 등 세계 대회에 나갈, 자칭 최정예 대표팀이 있고 나머지는 국내 세미프로리그와 호주 리그서 뛰는 어린 선수들을 중심으로 나서는 대표팀이다. 특히, 후자의 대표팀은 비중 없는 경기나 올림픽 예선 등을 겸하는 대표팀으로 출전해왔다.

뉴질랜드는 2010 월드컵 참가 이후 그나마 정예로 출전해 온 네이션스컵 마저 아마추어에 가까운 선수단을 꾸릴 계획을 세웠다. 굳이 동네 대회에 유럽 선수들까지 부를 필요는 없고, 어리고 프로를 지향하는 선수들을 데리고 경험을 쌓게 한다는 명분이었다. 뉴질랜드는 이번 네이션스컵 23명의 멤버 중 2010 월드컵을 경험한 선수는 단 3명 뿐이었다. 나머지는 올림픽 상비군과 와일드카드 후보, 청소년 대표, 대학 선수까지 구성된 선발팀을 보냈다.

훈련도 컨디션 조절에만 치우친 뉴질랜드는 대회 개막일에서야 개최지 미국령 사모아에 입국하며 별 다른 준비 없이 경기에 나섰다. 파퓨아뉴기니, 피지, 미국령 사모아를 상대한 뉴질랜드는 2승 1무를 기록하며 4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내용은 좋지 않았다. 피파랭킹 150위권 밖인 팀을 상대로 4득점 2실점을 했다. 상대팀은 축구를 직업으로 삼지 않는 아마추어들이었다. 이들은 유럽축구연맹의 파견 지도자들에게 축구를 급히 배웠으며 이들을 제외하면 호주, 뉴질랜드 유학파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뉴질랜드는 조 1위로 조별예선을 통과했고 누구도 그들의 우승을 의심하진 않았다. 오세아니아 축구연맹 홈페이지는 “뉴질랜드는 많은 골을 넣진 못했지만 결국 대회 승자가 될 것”이라며 우승후보가 아닌 우승자 취급을 했다.

문제는 4강에서 발생했다. 뉴칼레도니아를 만난 그들은 슈팅수 34-3의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고도 뉴칼레도니아의 카운터 어택 한방에 무너졌다. 마치, 유로에서 네덜란드가 덴마크를 상대로 맹공을 퍼붓고도 골을 넣지 못한 채 진 것과 같았다. 뉴질랜드는 수비수 2명만 남기고 전원 자기 진영으로 내려오지 않는 동네축구 강자 스타일의 경기를 펼쳤지만 뉴칼레도니아의 수비를 뚫진 못했다.

이렇게 뉴질랜드는 네이션스컵 참가 역사상 두 번째로 결승 진출에 실패(1996년 호주에 패해 결승진출 실패)하며 종이호랑이로 몰락했다. 무엇보다 호주가 없고 사실상 상대가 없다고 생각한 상황이라 충격이 더했다. 2010 월드컵에 참가한 바 있는 미드필더 팀 마이어는 “우리는 관광객 같았다. 월드컵 출전 팀의 위용은 없었다”라며 몰락한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했다.

졸전은 3,4위전 까지도 이어졌다. 미국령 사모아를 만난 뉴질랜드는 후반 추가 시간까지 가는 장군 멍군을 통해 4-3으로 간신히 승리를 거뒀다. 전 대회서 16-0의 낙승을 거둔 점을 고려하면 만족할 만한 결과는 아니었다. 뉴질랜드는 다가올 2012 런던 올림픽 전망도 어둡다는 예상을 하는 가운데 대표팀 선수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 뉴칼레도니아, 타히티의 노력

호주의 아시아 편입은 뉴질랜드뿐 아니라 기존의 '승점 자판기' 취급을 받던 국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1인자의 자리를 뉴질랜드가 차지하고 2인자 자리를 위한 치열한 다툼이 시작됐다. 적어도 운과 실력이 따를 때 네이션스컵 결승에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가장 적극적인 것은 타히티와 뉴칼레도니아였다.

이들 국가는 자체 리그 형태를 보유하지만 사실상 조기축구, 동네 대항전과 다를게 없어 선수 발굴이 쉽지 않다. 인구 13만, 24만의 소국인 이들은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점이 축구 발전을 꽤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들은 자국 출신 이민자, 호주, 뉴질랜드 유학생들을 꼼꼼히 점검했고 대표팀 구성에 비중을 뒀다.

특히, 뉴칼레도니아의 도미니크 와칼리는 프랑스 3부리그에서 뛴 경력이 있었다. 타국에선 대표팀은 꿈도 못 꾸지만 오세아니아이기에 가능했다. 와칼리는 이번 대회 4골 3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다운 활약을 펼쳤다.

타히티와 뉴칼레도니아가 축구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는 유럽의 제 3세계 축구 지원을 통해서였다. 유럽축구연맹과 잉글랜드 축구협회, 프랑스 축구협회는 과거 식민지 국가 지원책으로 코치 파견, 훈련을 지원하고 있다.

우승팀 타히티의 감독 에디 에타에타는 프랑스에서 파견된 지도자다. 그는 우승 소감에서 타히티의 가능성에 대해 밝혔다. “이들의 축구실력은 좋지 못했다. 하지만 비치 사커에서 굉장한 능력을 보였다. 비치 사커와 연계할 고민을 했다”며 가능성을 시사했다. (1-2년 간격으로 열리는 비치사커 월드컵에 타히티는 솔로몬제도와 번갈아가며 출전했다. 토너먼트전 진출에 성공한 적은 없지만 일반 축구 보다 실력 차를 보이지 않으며 승리도 따내고 있다. 타히티는 2013 비치사커 월드컵 개최국으로 비치사커 인기가 높다.)

타히티는 미드필더와 공격진에 비치사커 출신 선수를 다수 배치해 드리블과 개인기량을 극복해갔다. 비치사커와 이민자, 유학생 등으로 구성된 타히티는 결승전서 뉴질랜드와 혈투를 거친 뉴칼레도니아를 꺽고 사상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타히티는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옆집 볼 잘 차는 형, 호주로 유학간 엘리트 들이 모여 이룬 우승에 '우리 팀, 우리 나라'의 감정을 느낀 것이다.

화교 출신 스티비 청희는 “원주민, 이민자 모두가 하나가 돼 한 나라를 느낀 것은 처음이다”라며 우승 소감을 밝혔다. 비록 피파랭킹 하위권 국가간 대회의 우승팀이지만 엄연히 대륙 대표로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참가하게 됐고 타히티 축구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프랑스 축구협회는 오세아니아 축구연맹 홈페이지를 통해 타히티의 우승을 축하했고 계속된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7년 전 발전을 꿈꾸고 ‘출가’한 호주의 나비효과는 오세아니아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누군가는 월드컵을 밟았고, 누군가는 우승을 겪었다. 오세아니아 축구팬들이 원하는 것은 특정 국가의 독주가 아닌,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는 것이다.

오세아니아 축구 매체들은 타히티의 비상에 주목하고 있다. 타히티는 2007 17세 이하 월드컵 출전, 2009 20세 이하 월드컵 출전 등으로 피파랭킹에 비해 높은 저력을 보이고 있다. 작은 가능성을 봤다고 갑자기 강팀으로 도약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능성을 봤고, 축구로 하나 되는 모습을 확인했다는 건 세계 오지 축구 지원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 



서영원 기자 schneider1904@hanmail.net

ⓒ 엑스포츠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

주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