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4 06:38
자유주제

기타를 메고 돌아오는 야생마 '이상훈'

기사입력 2004.12.10 04:22 / 기사수정 2004.12.10 04:22

김동식 기자



김용수, 정삼흠, 김태원, 김동수, 유지현, 박종호, 서용빈, 노찬엽, 김재현, 심재학 등으로 대표되던 호화군단 'LG트윈스'의 90년대 중반 화려했던 모습들을 기억하는가?

'LG트윈스'의 팬들이라면 그 시절이 눈에 아른거릴지도 모른다. 위에 언급한 이들중 얼마전 공익근무에서 소집해제된 서용빈을 제외하면 지금은 한명도 'LG트윈스' 엔트리에 들어있지 없다. 은퇴했거나 아니면 이적했다. 그래도 위에 언급된 선수들은 아마도 'LG트윈스'의 팬들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었던 맴버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선수들은 'LG트윈스'팬들의 기억속에 영원한 '트윈스의 나인(nine of twins)'으로 기억될런지도 모른다.

그 중 'LG트윈스'의 팬들이라면 아마 가장 인상깊었고 죽을때까지 절대 잊지못할 영웅이라면 갈기갈기 긴머리를 휘날리고 상대타선을 압도했던 좌완강속구의 카리스마 이상훈을 떠올리게 될것이다. 비록 그가 은퇴직전에는 'SK와이번스'의 소속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는 얼마전 '제일화재 프로야구 대상' 시상식에 야구인들과 야구팬들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기타를 메고 식장의 축하무대에 서있었다. 더이상 '투수' 이상훈이 아닌 '가수' 이상훈이었다.



그는 과연 왜 잔여연봉인 3억6천여만원을 포기하고 중도은퇴하여 글러브 대신 기타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사실 이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상훈은 이미 대학시절부터 기타를 잡아와서 프로급의 연주능력을 갖추었으며 몇해전부터 야구가 벌어지지 않는 비시즌에 틈틈이 짬을내어 신촌과 홍대앞 등지에서 언더그라운드 밴드들과 '조인트 콘서트'형식의 공연을 꾸준히 벌여왔기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의 경우 야구선수를 은퇴하게되면 코치나 감독등의 지도자의 길을 꿈꾸는것과는 달리 이상훈은 밴드를 꿈꿔왔었다는것은 눈치빠르신 분들은 이미 예측했으리라.

'LG트윈스'에 1993년에 데뷔한 이상훈은 1994년 'LG트윈스'의 우승과 함께 최고의 스타 반열에 올랐다. 1995년에는 20승을 올리며 박철순, 장명부, 선동열등과 함께 '20승투수'의 반열에 오르기도했다. 그뒤 척추부상으로 인하여 마무리투수로 전환해서 1997년엔 구원왕에 오른뒤 1998년에는 일본의 '주니치드래곤즈'에 입단해 '제리' 이종범 '나고야의 태양' 선동열과 함께 야구계의 한류열풍을 일으키며 '삼손'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고 이듬해는 메이져리그 '보스턴레드삭스'에 입단하는 등, 비록 마이너리그로 떨어졌다가 2002년 다시 'LG트윈스'로 컴백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한·미·일 프로야구를 두루 거쳤다.

이렇듯 이상훈이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운동선수 치고 머리를 길게 기르는 개성을 표출하는것이 보기 안좋게 보인다기보단 '개성을 표현할줄 아는 젊은이'로 평가받았던것은 그의 실력이 충분히 뒷받침 해주었었기 때문이다.

이상훈은 좀더 야구를 할수도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2004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기전 'LG트윈스'에 새로 취임하게된 신임감독 이순철과의 갈등으로 전국을 뒤집어 놓는 뉴스거리를 양산해낸다. '라커룸에서 기타를 치지말라'와 '개성을 제한받느니 차라리 트레이드를 시켜달라'는 둘 사이의 의견다툼은 각종 스포츠지들의 1면을 장식했었고 사상 초유의 '기타파동'을 일으키며 그에게는 '기타맨'이라는 새로운 닉네임이 붙기도했다.

결국 그는 'SK와이번스'의 애정공세로 그곳에 새로이 둥지를 틀었으나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탓인지 2군으로 추락. 결국은 아직은 좀더 공을 던질 힘이 남아있어보였지만 자신의 선수생명보다는 좀더 일찍 '녹색그라운드'를 서둘러 빠져나왔다. 그는 이제 너무나도 자신을 억누르는것이 많은 야구계에 조금은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새롭게 던져진 소식은 어떤 이색적인 인디밴드 'what!'의 데뷔이다. 어느 클럽가의 밴드가 그러하듯 세션맨출신의 맴버들이 어떤사건을 계기로 의기투합을하여 밴드가 결성되기도 한다. 그런 세션맨들이 사회인 야구단을 통해서 가까워진것이 계기가 되어 맴버를 구성했지만 여기에는 시나위의 드러머를 경험해보았던 신동현씨보다도 주목되는 포지션이 있었으니... 위에서 언급했듯 정말 화려하고 험난한 여정을 거쳤던 야구인 이상훈이 그 밴드 'what!'의 보컬로써 참여한다는소식 때문이었다.

기존의 '크래쉬'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 혹은 '스키조' '레이지본'등이 언더그라운드 클럽가에서 혹독한 세월을 거쳐서 자신들만의 영역을 형성하여 네임벨류를 높였지만 'what!'은 밴드의 결성과 동시에 '전국구스타'인 이상훈을 끼고 가면서 최대의 홍보효과를 보게되었다. 마치 '뜨거운감자'가 스타성을 가진 리드보컬 '김C'덕분에 세상에 그 존재를 좀더 쉽게 알린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이상훈은 워낙에 탁월한 음악적소질을 그동안 자신의 힘으로 입증해보였기때문에 더더욱 그러할것이다.

'LG트윈스'의 리전드(LEGEND)'에서 이제는 ROCK계의 리전드로...

이상훈은 'SK와이번스'에서의 잔여연봉을 포기하면서까지 더이상 음악을 시작하게되는날을 지루하게 기다리지 않았다. 아무 구속도 제한도 없는 곳에서 이제는 자신이 모든것을 책임지고 자신이 직접 인생의 붓을 잡고 그려나갈 그만의 '시간'이 드디어 찾아오게 된것이다. 이제 '야구선수' 이상훈의 팬들은 이상훈의 다른모습을 지켜보며 ROCK밴드 'what!'의 지지자의 역할을 맡아야 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훈이 그동안 '영광의 마운드'에서 뿌린 주옥같은 투구들... 그리고 앞으로 펼치게된 현란한 전자기타의 선율도 이상훈을 사랑하는 모든이들에게는 자랑스럽게 느껴지게 될것이다.

이제는 이 신인밴드(?) 'what!'이 일본에서 음반을 발매한다고 한다. 이상훈은 야구인으로써 또한 음악인으로써 한일양국에서 모두 도전하게되는것이다. 혹은 잘되어서 빌보드챠트에라도 진입하게되면 한·미·일 3국에서 야구와 음악으로 모두 족적을 남기게되는 기록적인 일을 해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이상훈의 새로운 도전을 격려하고 지켜보는 일만이 남았다.



김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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