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무협소설] 해동전설(海東傳說) 3(3) 격돌! 중화국
두 소년이 농구연습을 하는 공터의 위쪽 언덕으로 두 명의 중년사내가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었다.
정차룡의 부친인 전주현령 정일기와 그의 오른팔인 행정부관 박동일(朴東一)이었다.
“조수철이라는 저 아이 말입니다. 대단하군요. 농구실력도 실력이려니와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상대를 다독이는 태도가 웬만한 어른 뺨칩니다.”
조수철에게 감탄한 박동일은 자신도 모르게 칭찬을 마구 뱉어내다가 정일기를 의식하고는 황급히 말끝을 흐렸다.
“날 신경쓸 것은 없네. 사람이 칭찬받을 짓을 하면 응당 칭찬을 받아야지. 나 역시도 조수철이라는 저 아이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네.”
“도련님도 대단하십니다. 비록 아직은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고 계시지만 저리도 열심히 노력을 하시는 것을 보니까 언젠가는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할 실력자로 발돋움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냐.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되네. 사람에게는 타고난 천성(天性)이라는 게 있어. 그릇된 욕심이나 기대는 당사자를 힘들게 할뿐이지.”
말을 하는 정일기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쳤다.
“아…아닙니다. 도련님은 이제 겨우 열살이신데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실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저리도 열심히 노력하시는데…”
손사래를 치며 박동일이 말했다.
“노력이라…? 노력이라도 안 하면 농구공을 잡을 자격이라도 있나? 노력이라도 해야지, 그럼.”
정일기의 입가로 씁쓸한 웃음기가 그려졌다.
정읍현…
연무관의 농구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백재승은 어디론가 허겁지겁 뛰어가고 있었다. “헉헉…”숨이 턱까지 차올 정도로 호흡이 가빠왔지만 백재승은 조금도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조금만 있으면 하나밖에 없는 형인 백동호의 농구시합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늦지 않게 와서 이 형의 경기모습을 꼭 봐라.)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백동호가 했던 말이 백재승의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뛰고 또 뛴 끝에 백재승은 경기가 열리는 시합장에 간신히 시간 맞춰서 도착할 수가 있었다.
“안돼, 이 녀석아. 곧 경기가 시작하는데 어디를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야?”
형의 얼굴을 보려고 대기실에 들어가려는 백재승을 커다란 체구의 털보사내가 막아섰다.
“아저씨. 비켜요. 우리형이 백동호란말이에요. 청소년국가대표 격발수(擊發手) 백동호요.”
“시끄러워. 이 녀석아. 네 형이 백동호면 해동국 최고의 농구영웅 허신은 내 동생이다.”
털보사내는 백재승의 말을 도통 믿으려 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아이 참…아저씨. 비켜요. 형한테 힘내라는 말을 전해야 한단 말이에요.”
“이 녀석아. 농구선수를 좋아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면 되겠냐? 어서 위로 올라가 구경이나 해라.”
털보사내는 아예 백재승을 번쩍 안아들어 계단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이었다. 백재승이 발버둥을 쳤지만 이제 열살 난 소년이 건장한 장한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덜컹.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해동국 청소년 대표선수들이 복도로 걸어 나왔다.
“형!”
백동호를 발견한 백재승은 목이 터져라 고함을 내질렀다.
“아니! 이 녀석이 정말 혼나고 싶어서…”
털보사내가 인상을 구기며 백재승을 향해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아! 재승이구나.”
막 복도를 나가려던 백동호가 백재승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응? 동호야. 내 동생 맞니?”
그제서야 털보사내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백동호와 백재승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백동호가 미소 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봐요? 맞잖아요. 아저씨는 왜 사람 말을 안 믿는 거예요?”
신경질적으로 털보사내의 손을 뿌리치며 백재승이 소리를 빽 질렀다.
“형, 오늘 경기 잘해야해.”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백재승이 말했다.
“당연하지. 이 녀석아. 이 형을 믿으라고.”
“헤헤헤…그럼. 누구형인데…”
백재승은 형의 이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항상 형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고 또 자신감을 현실로 실현시켜 백재승을 기쁘게 해주고는 했었다.
“어머니는…?”
백재승의 뒤쪽을 힐끗 살피며 백동호가 물었다.
“어…엄마 말이야. 안 오셨어. 그냥 나 혼자 같다 오라고 하던데, 형도 참…언제 엄마가 경기장에 오시는 것 봤어?”
사실이 그랬다. 모친인 임재령(林載令)은 아들이 농구를 한다는 사실을 무척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걱정이 지나쳐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한다. 그저 백동호가 시합을 하는 내내 집 근처의 암자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것으로 정성을 대신한다.
“그래. 이제 시간 되었으니 올라가서 보도록 해라. 이 형도 열심히 시합에 임할 테니.”
“응. 알았어. 형.”
정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백동호를 향해 백재승이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백재승은 그제서야 손을 흔들며 이층의 관람석 쪽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형. 잘해. 이번에야말로 꼭 콧대높은 중화국(中和國)놈들을 꺾어 버리라고.)
관람석의 구석에 위치한 의자에 걸터앉은 백재승은 벌써부터 손바닥으로 땀이 흥건하게 배여 나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와와…”
“선수들이 나온다.”
관중석은 사람들의 함성으로 시작 전부터 후끈 달아오르는 모습이었다.해동국과 중화국의 국가(國歌)가 연주된 다음 차례로 선수들이 소개되었다. 백의(白衣)로 복장을 통일한 해동국 청소년 대표와는 달리 중화국 청소년 대표는 각자 개성적인 옷차림들을 하고 있었다.
워낙 나라가 넓고 지역색이 강해 곳곳의 최고선수들로 구성된 탓이었다.
“소림관(少林館)의 혜월.”
한 올의 머리카락도 없이 싹 밀어버린 승려복장의 청년이 천천히 걸어나와 관중들에게 합장(合掌)을 했다. 짙은 눈썹에 무표정한 얼굴이 무척이나 침착해 보이는 인상이었고 전체적으로 장신인 다른 중화국 선수들에 비해 키나 체구는 상당히 작은 편이었다.
“화산관(華山館)의 원불악.”
뒤로 넘겨 질끈 묶은 머리칼에 흰색과 검은색이 잘 조화된 도포(道袍)차림의 청년이 날카롭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작은 눈에 길다란 턱 선은 상당히 날렵할 것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모산관(茅山館)의 영환사.”
작은 방울이 주렁주렁 달린 목걸이를 걸쳤고 옷의 여기저기로 붉은 색의 한문이 빼곡이 적혀있었다. 무엇이라 중얼중얼거리는 모습이 무슨 주문 같은 것을 외우는 것 같았다.
“청성관(靑城館)의 우호.”
관중들이 일제히 술렁거릴 정도로 거대한 체구의 청년이었다. 근육질의 몸에 호피(虎皮:호랑이가죽)조끼를 걸친 모습이 무척이나 위압감을 주는 인상이었다.
“궁가관(窮家館)의 취걸개.”
다 떨어진 누더기에 허리춤에는 호리병이 하나 차져있었고 나이답지 않게 얼굴에는 듬성듬성 지저분한 수염이 돋아나 있었다. 코끝이 유달리 빨간 게 흡사 술이라도 한잔 걸친 것 같은 인상이었다. 취걸개의 행색을 보고 관중들이 웃음을 터트렸지만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아니 턱을 꼿꼿이 치켜세운 모습이 누구보다도 당당해 보였다.
삐익!
뿔피리소리와 함께 해동국과 중화국의 청소년대표 친선시합이 시작됐다.
(형, 잘해야돼.)
백재승은 무릎 위로 양손을 단정하게 모은 모습으로 경기장에 시선을 가져갔다.
(계속)
김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