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매거진] 100년이 훌쩍 넘긴 거리감 깊은 역사보다는 공소시효를 넘긴 미제사건처럼 느껴진다. 우리에게 남은 건 아픔과 숙제 때문이 아닐까.
아관파천, 을미사변 이후 일본을 피해 거처를 옮긴 고종의 은신처 러시아 공사관. 그곳에서 고종이 커피를 즐겼다는 일화 그리고 고종독살음모설을 커피라는 소재를 통해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어 냈다.
대한민국 전체를 묶는 대중적인 소재 커피 그리고 그 기원이었을 이 땅의 첫 잔의 주인공 고종, 그가 마셨을 커피를 통해 오가는 국운을 건 암투와 음모. 매력적인 단서들은 영화 가비의 향을 궁금하게 만든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커피지만 단어와 맛에서 오는 정서의 이질감은 아직 지울 수 없다. 더군다나 1800년대 말에 등장하는 커피라면 지금보다 더 큰 정서적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지점에서 영화 가비 속에서 등장하는 신선한 공간, 의상, 소품은 관객들로 하여금 보는 즐거움을 충분히 전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의 이야기는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는 커피를 통한 고종독살이라는 엄청난 음모를 중심으로 두 남녀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독살이라는 단선의 명확함 보다는 조선의 정복과 이를 막기 위한 일본과 조선의 암투라는 큰 의미가 도드라진다. 그러나 그 암투는 고종독살의 무게감을 뛰어넘지 못한다. 많은 관객은 커피를 통한 독살의 과정에서 오는 스릴과 반전을 기대할 것 같다. 고종독살은 여러 수 싸움 중 하나처럼 보인다.
가비는 따냐와 일리치의 사랑이 큰 줄기를 이룬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조국, 조선의 상징인 고종과 연인에서 애국으로 묘한 삼각관계에 빠진다. 그리고 두 주인공의 난제와 결말은 과정 속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예상을 잊게 해줄 연인의 짙은 애절함이 부족하다.
영화 곳곳에 치열한 고민과 선택을 느낄 수 있었지만 매력적인 소재에 좀 더 큰 할애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원두와 로스팅은 좋았지만 그 향과 맛은 충분하지 못했다. 적절하지 못했던 물의 양이 원인이었을까? 가비, 매력적이었지만 치명적이 못한 향과 맛이 아쉽다.
[글] 황하민 (영화 감독)
황하민 ent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