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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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독립운동가 박열-일본인 가네코의 슬픈 사랑

기사입력 2012.03.04 16:52 / 기사수정 2012.03.04 16:52

방송연예팀 기자













[엑스포츠뉴스=방송연예팀 이상군 기자] 독립운동가 박열과 그의 연인 일본인 가네코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전해졌다.

4일 오전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조선인 박열과 일본인 가네코의 러브스토리가 소개돼 가슴을 울렸다.

조선인 박열과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는 감옥에서 혼인신고를 해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무엇일까?

가네코는 우연히 <조선청년> 잡지에서 박열이 쓴 시를 보고 빠져 박열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박열은 흑도회, 흑우회 등을 조직하여 가네코의 조국 일본에 대항하던 독립 운동가였다. 이에 가네코는 오직 사랑 하나로 박열과 같이 자신의 조국에 맞서게 된다.

1923년 이들은 또 다른 항일 비밀결사 불령사를 조직했으며 9월에 박열과 가네코는 일본경찰에게 체포되기에 이른다. 당시 관동 대지진으로 일본 정부는 민심을 잡기 위해 조선인에 대한 적개심을 일으켜 희생양을 찾던 중 박열과 가네코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박열이 폭탄을 구입하려는 했다는 사실을 알고 박열이 일왕을 암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뒤집어 씌었다. 이에 가네코도 함께 계획했을 거라고 경찰들은 판단하고 가네코에게도 누명을 씌었다.

박열과 가케코는 일왕 암살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고, 박열은 조선의 예복을 입고 재판 내내내 조선어를 사용했다. 이에 일본인인 가네코도 조선의 예복을 입고 등장해 박열과 함께 조선민족의 투쟁을 한단 의지를 보여줬다.

1926년 2월 26일 두 사람은 사형선고를 받고 형무소에 수감되어 무기징역 감형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감형 제안을 거부해 서로 다른 형무소로 이감됐고, 이감 후 3개월이 되지 않아 박열은 가네코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박열은 이 소식을 듣고 오열했다. 이후 가네코는 박열의 집안으로 이장됐고, 박열은 가네코의 기일이면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가네코를 기렸다. 이에 남북한은 그들의 사랑을 인정했고 훈장을 받았다.

가네코는 재판관이 "왜 일본인인 당신이 조선인 편을 드느냐?"는 질문에 "나는 박열을 사랑한다. 나는 그와 함께 죽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이 희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해 자신의 연인인 박열에 대한 절대적 사랑을 드러냈다.

방송연예팀 enter@xportsnews.com 

[사진 = 신비한TV 서프라이즈 ⓒ MBC 방송 캡처]



방송연예팀 이상군 기자 ent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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