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4.09.17 02:30 / 기사수정 2004.09.17 02:30
세상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동물들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과 친숙한 동물로 한정지으면 그 간격은 급격히 좁혀지며 그 중에서 딱하나만 꼽으라면 대부분은 십중팔구 이 동물을 선택할 것이다.
개, 높혀 부르면 견공(犬公), 낮춰 부르면 기사에 언급하기조차 어려운 온갖 욕설이 다 튀어나올 정도로 극과 극의 많은 호칭(?)을 가지고 있다.
인류가 존재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절친한 친구로 역사를 함께 한 동물, 그만큼 이야기거리도 많고 너무도 가까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 화포리에 위치하고 있는 '조앙사'를 찾아 그 많고 많은 사연중 한 토막을 들어보았다.
이후는 글의 성격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의인법을 사용해 보기로 한다.
불법(佛法)을 아는 개 '재롱이'
왈왈…제 이름은 재롱이입니다. 나이는 3살 정도 먹었구요 마르티스과에 속합니다. 이곳의 주지인 송헌스님께서 한때 제주도에서 사실 때 저와 같은 종의 다른 개를 키우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배를 타고 가져올 사정이 못되셔서 항상 아쉬워하시던 중 전주 쪽에서 저를 분양 받아 가져오게 되셨다고 하네요.
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행운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헥헥헥…
쉽게 말해서 저는 눈치가 빠릅니다. 좋은 말로 풀어서 돌려 얘기하면 적응의 미덕을 안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전 제 옆으로 쥐나 청솔모 같은 것들이 지나가도 절대 건들지 않습니다. 그냥 지켜만 볼뿐이지요. 그래도 명색이 절밥(?)을 먹고있는데 살생을 할 수는 없잖아요.
그것들은 그것대로, 저는 저대로 서로 떨어져 존재할 뿐이지요.
또한 저는 체통을 중시합니다.
한겨울에도 절대 집안에서 실례(?)를 하지 않습니다. 뼈대있는 종답게 밖으로 나와서 볼일을 보지요.
어때요? 이만하면 절밥 먹을만하지요?
한 살 터울 모녀(母女) '새롱이'와 '밤톨이'
멍멍…먼저 엄마인 저부터 얘기할께요. 전 나이는 4살이구요 이름은 새롱이, 종류는 슈나우저과에 속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저를 사랑해주시는 주인과 함께 아파트에서 살았었는데요 대부분의 애완동물들이 그렇듯 이웃들의 등쌀에 점점 제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 주인께서는 아픔을 머금고 절 다른 곳에 보내기로 결정하셨는데 그때 생각났던 곳이 이곳 '조앙사'라고 합니다. 괜스레 딴사람에게 줘서 또다시 다른 곳으로 가게되는 고난을 겪게하느니 사찰로 보내서 안정적으로 살게 배려를 해주신 것이죠.
우리과가 다 그렇듯 저 역시 덩치는 작지만 싸움만큼은 곧잘 한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깡이 좋은 것이지요.
상대가 누구든 다 덤빕니다. 하지만 주인에게는 절대 충성, 오직 충성뿐입니다. 그런 저를 주지스님께서는 풍산개에 비교하시더군요.
멍멍…(딸 밤톨이는 항상 엄마인 새롱이를 따라한다. 뭐든지!) 울 엄마가 '조앙사'에 와서 낳은 네명의 자녀중 막내인 밤톨이입니다. 나이는 3살이구요. 현재는 다른 형제들이 전부 분양나간 상태에서 저만 이렇게 엄마랑 단둘이 살고있답니다.
저희 형제 중에서 제가 몸이 제일 약했데요. 미모는 제일 뛰어났지만…쿨럭
어쩌면 그런 점 때문에 더 주인님들의 관심을 받고 이렇게 남아있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 항상 엄마랑 행동을 같이합니다. 외모도 비슷한데다 모든 것을 따라하니까 부부(?)로 착각하시는 분들까지 계실 정도랍니다. 그런 분들에게 다시 한번 말씀드릴께요. 저희 부부 아닙니다!
족보 있는 쌈꾼 '수정이'
월월…제 입으로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사실 자랑할 것으로 따지면 제가 제일 많답니다.
순창에 있는 '장덕사'란 절 아세요? 그렇게 많이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몇 년 전부터 각종 TV 및 신문매체를 통해서 많이 오르락 내리면서 입 소문을 타기 시작했었지요.
'장덕사'에 가면 265개의 가파른 계단이 있는데 불자들이 그곳을 방문하면 `혜정'(암컷)과 `혜수'(수컷)라는 한쌍의 진돗개가 안내를 한답니다.
생긴 것도 예쁘고 하는 짓도 예뻐서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고는 했었지요.
'조앙사'에서 갑자기 왜 '장덕사'로 넘어가냐구요? 월월…그 두 마리의 개는 다름 아닌 저의 엄마, 아빠랍니다. 전 거기에서 태어난 세 살배기 아들이지요.
아빠, 엄마 이름의 한자씩 따서 이름도 수정이랍니다.
좋은 피를 타고나서 그런지 전 용맹하기도하고 쌈도 엄청 잘해요. 여기에 있는 개들 중 단연 최고죠. 그래서 그런지 전 항상 엄청 굵은 쇠사슬에 묶여서 개집에서 살고있답니다. 물론 가끔 풀어 주시기도 하지만…
스님, 저 운동 좀 자주 시켜 주세요!
오∼필승코리아 '4강이'
오∼필승코리아, 오오∼필승코리아…
갑자기 무슨 월드컵송이냐구요? 당연하죠. 저하고 너무 깊은 관련이 있거든요.
치와와 암컷인 저는 어느 날인가 길을 잃고 식당근처를 왔다갔다하고 있는데 어떤 맘씨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식사를 하시다말고 갑자기 저를 번쩍 안아서 무릎에다 올려놓고 TV를 시청하시더군요.
한참을 그렇게 TV를 시청하시던 아저씨가 갑자기 "와! 4강이다! 4강!"하면서 펄쩍펄쩍 뛰시대요. 아저씨뿐 아니라 식당 안은 온통 축제분위기였어요.
도대체 왜 그런지 개인 제가 알게 뭡니까?
그러던 중 갑자기 아저씨가 저를 쳐다보더니 "넌 행운의 마스코트다"하시더군요.
당췌 무슨 영문인지…?
근데 저는 길을 잃은 상태였고 한참동안 사방을 돌아보시던 아저씨는 식당주인에게 5만원을 건네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임자 없는 개 같기는 하지만 혹시 주인이 나타날지 모르니 보게되면 돈을 건네주십시오"하고 말입니다.
아저씨 가족들은 저를 무척 예뻐하셨어요.
이름도 월드컵을 기념해서 4강이라고 지어 주셨구요. 근데 사는 곳이 아파트라 그런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이웃들이 눈치를 주더군요. 전 혹시나 주인님들한테 피해를 줄까봐 되도록 안 짖었어요. 벙어리같이 지냈지요.
그러던 어느날 아저씨 아이들도 학교를 다니고 그러자 절 돌볼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전 '조앙사'로 보내지게 되었어요. 그나마 다행일까요?
슬프기는 했지만 넓은 산중으로 들어온 저는 그때서야 비로소 컹컹! 하고 짖기 시작했지요.
그러자 스님이 놀라서 한마디하시더군요.
"이놈 봐라? 벙어리가 아니었잖아?"
사람들은 몰라요. 제가 얼마나 속이 깊은지.
순둥이 늑대개 '몽'
아우우우우…안능하세요. 추운 지방 북극에서 날아온 일명 '썰매 끄는 개' 알래스카 말라뮤트 (Alaskan Malamute)과의 5개월 배기 영계 몽 인사드립니다. 옛? 제가 5개월밖에 안됐다는 것이 안 믿어진다고요.
원래 저희 과는 덩치가 엄청 커요. 덕분에 이렇게 어린 나이에도 조앙사에서 제일 큰 덩치를 가지고있지요.
전 덩치가 큰 만큼 힘도 무척 세요. 스님도 가끔 저를 감당 못할 정도지요. 하지만 성격은 엄청 순해서 저의 3분의 1도 안 되는 '새롱이'와 '밤톨이' 모녀한테도 꼼짝못하고 있답니다.
최고의 싸움꾼 '수정이'요? 당연히 전 어림도 없지요. 해서 근처에 '수정이'가 있으면 전 넙죽 엎드려서 데구르르 구른답니다. 혹자는 비굴하다고도 하지만 저에게는 일종의 생존방식(?)이지요.
얼떨결에 전 주인에 의해 이곳에 맡겨지기는 했지만 나름대로는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님께서는 항상 걱정하세요. 추운 지방 품종인 제가 한국의 더운 날씨를 어떻게 견딜까하고…하지만, 뭐 우리종족은 워낙 자연에 적응을 잘하니까 충분히 자신 있습니다.
아우우우…전 왜 툭하면 늑대울음소리가 날까요? 덕분에 스님한테 자주 혼난답니다 아우우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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