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신채점제 도입 후, 국내 대회에서 열린 여자 싱글 경기 중, 김연아(22, 고려대) 이후로 160점을 넘어선 선수가 마침내 등장했다. 국내 최고 권위의 피겨 대회인 'KB금융그룹 코리아 피겨스케이팅챔피언십 2012(66회 전국종합선수권)' 여자 싱글 시니어부에 출전한 김해진(15, 과천중)은 167.73점의 높은 점수를 받으며 정상에 등극했다.
김해진의 이번 우승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김연아 이후 3년 연속 한국 피겨챔피언에 등극했다는 점이다. 김연아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전국종합선수권대회 4연패를 달성했다. 이후 김나영(22, 인하대)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2년 연속 한국챔피언에 올랐다.
그러나 2009년부터 한국 피겨의 세대교체가 진행됐다. 김연아와 함께 동시대를 활약한 김나영, 최지은(24), 신예지(23), 신나희(22, 계명대) 등이 정상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97년 동갑내기 유망주'들이 그 빈자리를 치고 올라왔다.
김해진은 2010년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동갑내기 라이벌'인 박소연(15, 강일중)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면서 이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그리고 김해진은 이번 대회에서 2연패를 달성한 김나영을 넘어섰다. 김연아 이후, 처음으로 3년 연속 한국 챔피언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김해진은 부상에서 완벽하게 회복하지 않은 상태로 이 대회에 출전했다. 당시 김해진은 우승을 차지했지만 경기력 자체는 깨끗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흠잡을 때 없는 연기를 펼치며 170점대에 가까운 고득점을 받았다. 이 정도의 점수면 김연아 이후 '최강 스케이터'란 칭호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다.
3+3 콤비네이션 점프를 비롯한 7개의 점프를 모두 성공시킨 저력
이번 대회를 지켜본 대한빙상경기연맹 고성희(39) 경기이사는 "지난번 랭킹전보다 (김)해진이의 점프가 매우 안정되고 여유가 생겼다. 또래 선수들끼리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해진은 지난해 11월에 열린 '2011 전국피겨랭킹전'에 출전해 우승을 놓쳤다. 점프에서 잦은 실수를 범하며 한 단계 진일보한 박소연에 패했다.
이번 대회에서 김해진은 트리플 플립 + 트리플 룹 구성대신, 트리플 플립 + 트리플 토룹 콤비네이션 점프를 시도했다. 또한, 쇼트프로그램에서는 트리플 토룹 + 트리플 토룹 점프를 구사했다.
점프의 난이도를 낮추는 대신 퀼리티를 살리는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경기를 마친 김해진은 "트리플 플립 + 트리플 룹 점프의 성공률이 좋았고 기초 점수도 높기 때문에 이 점프를 구사해왔다. 하지만, 대회를 앞두고 안정적으로 가자는 쪽을 선택해 이 점프 구성을 들고 나왔다"고 밝혔다.
프리스케이팅에서 김해진은 기술 난이도를 상당 부분 높였다. 트리플 + 트리플은 물론, 트리플 러츠 + 더블 토룹 콤비네이션 점프도 시도했다. 트리플 러츠, 트리플 살코, 트리플 룹 등을 단독 점프로 구사했고 트리플 플립에 이은 더블 토룹 + 더블 룹 점프까지 소화했다.
세계 여자 싱글 상위권 선수들의 기술 구성과 비교할 때, 전혀 밀리지 않는 구성이다. 상당히 어려운 프로그램이었지만 김해진은 이 요소들을 큰 실수 없이 소화하며 167.73점을 점수를 받았다. 2위에 오른 박소연(144.59점)과의 점수 차는 무려 23.14점이었다.
김해진의 장점은 높은 점프 성공률이다. 그동안 점프의 성공률이 높은 대신, 스케일과 스피드에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랭킹전에서 1위를 내준 점도 성장하는데 큰 자극을 줬다. 김해진은 "잘하는 또래 선수들이 많은 점이 큰 도움이 된다. 서로가 상대방이 스케이트 타는 것을 보고 많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스피드와 스케일 갖춘 점이 이번 대회 최고 수확, 박소연과의 경쟁도 성장에 탄력
김해진은 '97년 피겨 유망주'들 중 트리플 점프 5개(토룹, 살코, 룹, 플립, 러츠)를 가장 먼저 완성시켰다. 하지만, 점프의 스케일이 작았고 착지가 흔들리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번 대회에서 김해진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해냈다. 빙판을 질주하는 속도에 탄력이 불으면서 점프의 스케일이 예전과 비교해 커졌다. 또한, 기술과 안무를 이어주는 부분도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졌다.
김해진은 이 부분에 대해 "스케이팅 지도자인 세르게이 아르타셰프 코치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전체적인 스케이팅과 스텝이 좋아졌다. 앞으로 더욱 이 부분을 보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라이벌인 박소연과의 경쟁도 김해진의 성장에 탄력을 줬다. 랭킹전에서 박소연에 패한 김해진은 "(박)소연이는 나보다 안무도 예쁘게 하고 점프를 비롯한 기술도 깨끗하게 한다"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했다. 상대방을 높이고 자신의 문제점을 올바르게 인식한 성숙한 자세는 이번 대회를 통해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김해진이 김연아 이후 한국 피겨가 얻은 수확인 만큼, 박소연도 빼놓을 수 없는 인재다. 이번 대회에서 비록, 몇몇 실수로 인해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스피드와 점프의 비거리, 토털패키지로서의 잠재력 등은 여전히 국내 최고 수준이다.
김해진과 박소연의 경쟁 구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라이벌인 최다빈(11, 방배초)과 변지현(12, 연광초)이 새롭게 부각됐다. 최다빈과 변지현은 이번 대회에서 나란히 3위와 4위에 올랐다.
다음달 27일, 밸라루스 민스크에서 열리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 출전할 김해진은 "이 대회에 출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다하고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사진 = 김해진, 박소연, 최다빈 (C) 엑스포츠뉴스DB]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