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0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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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WWE를 만드는 사람들 (1) KBS SKY의 WWE팀을 만나다

기사입력 2004.06.05 03:33 / 기사수정 2004.06.05 03:33

박지훈 기자


“한국의 WWE를 만드는 사람들”
KBS SKY의 WWE팀을 만나다.


헐크호건을 기억하는가? 얼티밋 워리어는? 80년대 후반 학생이었던 사람들은 친구들끼리 둘러앉아 AFKN의 알아듣지도 못하는 해설을 들으며 헐크호건의 빅풋(Big Foot)과 레그드랍(Leg Drop)을 따라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당시 엄청난 인기를 몰고 다니던 미 프로레슬링 단체 WWF(World Wrestlig Federation)는 실제 경기가 아닌 엔터테인먼트라는 사실을 알려지면서 외면을 받게 되었다. 그 WWF가 최근 WWE(World Wrestlig Entertainment)로 이름을 바꾼 뒤 본격적인 엔터테인먼트의 길을 가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의 외면받던 ‘쇼’적인 요소를 오히려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팬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지금의 인기가 그냥 생긴 것은 아니다. 처음 그 시작은 인터넷이었다. 90년대 후반 PC통신에서 하나둘씩 WWF 동호회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작지만 꾸준히 정보교환을 하다가 인터넷의 발달로 두터운 매니아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매니아들의 관심이 무시못할 정도로 커지자 공중파들과 케이블TV들은 앞다퉈 WWE프로그램을 수입하고 방송사들은 전문 해설자와 캐스터를 찾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올드팬들을 과거 AFKN과 홍콩스타TV의 외국어 해설이 아닌 한국어로 된 해설을 통해 완벽하게 WWE를 즐길 수 있게 했다. 이는 외면했던 WWE팬들을 다시 TV앞에 앉혀 놓는 힘이 되었다. 또한 방송을 통해 몰랐던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새로운 매니아층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 WWE 엄청난 인기를 몰고 온 원동력이 된 것이다. 현재 SBS스포츠채널, 경인방송 iTV, KBS 스카이스포츠 채널에서 방송되고 있는 WWE 프로레슬링은 케이블TV 내에서만 대략 25%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고 공중파인 경인방송(iTV) 내에서는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방송의 시작도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처음의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모습까지 과연 어떤 사연들이 있었을까? 작년 2월 첫 방송을 하고 현재 57회(3월 29일)를 맞는 KBS SKY의 WWE팀의 얘기를 들어보자.

KBS SKY ‘WWE팀’의 탄생

애프터번(After burn) 촬영현장
WWE는 드라마같은 스토리중심의 ‘RAW’와 경기 중심의 ‘SMACKDOWN’. 이렇게 두 개의 브랜드로 나눠져 있다. 예를 들어 ‘RAW’는 굵직한 스토리가 길게는 한 달까지 이어지는 등 스토리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SMACKDOWN'은 스토리는 있지만 경기를 하기 위한 짧은 스토리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KBS SKY의 이재호 해설위원에 따르면 원래 스맥다운은 여자 레슬러를 위주로 하는 경기만 하는 브랜드였단다. 근데 그게 힘든 상황이 되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외에 등장하는 선수들도 다르고 방영시간도 다르다. 현재 한국에서는 2개의 케이블 방송과 하나의 공중파 방송에서 WWE를 중계하고 있다. 그 중에서 KBS SKY는 각 브랜드의 하이라이트만 모아서 버텀라인(RAW)과 애프터번(SMACKDOWN)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되고 있다. 겨울시즌에는 방송국내에서 시청률 1위라고 김용민 담당PD가 살짝 귀뜸한다. 그러나, 사실 시작할 때는 어려웠던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프로레슬링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 가지고 있는 건 달랑 테잎 하나. 해설자도 구해야지 캐스터도 구해야지. 주위에 WWE를 아는 사람은 집에서 즐겨보시는 어머님밖에 없는데 어머님을 해설자로 모실 수는 없지 않는가. 앞이 캄캄했다. 그러다가 이기호 캐스터를 섭외하면서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기호 캐스터는 웬만한 매니아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국내 최초의 WWE 전문 아나운서이다. 바로 SBS Sports채널에서 성민수 해설위원과 찰떡콤비로 이름을 날리다가 잠시 쉬고 있던 그를 담당PD가 극적으로 스카웃해 온 것이다. 한시름던 PD는 캐스터도 구했겠다 이제는 해설자만 구하면 되는데 내심 성민수 씨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여건상 어렵다며 대신 이재호 씨를 적극 추천해주면서 오늘의 팀이 구성된 것이다. 이재호 해설위원은 국내 최고의 레슬링 커뮤니티인 레슬뱅크닷컴에서 Rattlesnake라는 닉네임으로 많은 우수한 칼럼을 쓰며 입지를 굳힌 매니아중의 매니아였다. 그런데 막상 매니아에게 해설하라고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회상한다. “원래 해설자가 되려고 몇 년 전부터 준비한게 아니라 머릿속에는 아는 건 많은데 이걸 말로 하려니까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담당 PD가 이재호 씨를 들어 해설자로서 만들어진 다음에 시작한 게 아니라 하면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말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고생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법하다.

국내 최초의 WWE 프로그램, 그 시작은?

앞서 언급한 대로 이기호 캐스터는 국내 최초의 WWE 아나운서이다. 지금은 6년차 베테랑이지만 처음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는 “멍했다”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이기호 캐스터는 당시 처음 방송을 시작한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국내 최초의 WWE 캐스터인 이기호 아나운서
“SBS에서 당시 ‘선데이나이트히트’로 처음 프로레슬링 방송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기술 이름도 모른 상태라서 화면을 보면서 바로바로 기술 이름을 말하기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보기에는 다 똑같아 보였다. 초창기에는 스플랙스와 스플래쉬의 차이점을 몰라서 애를 많이 먹었다. 주위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그러다보니 내키는 대로 했다. 어떤 때는 스플랙스라 그러고 어떤 때는 스플래쉬 쓰고. 특히 기술이름 긴거는 더 힘들었다. 물론 기술 이름을 써 놓고 보면서 하면 될 것 같지만 그게 또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바로바로 입에서 튀어나와야 하는데 안 되니까. 또 힘든게 선수들 얼굴과 기술이름과 피니쉬 기술이름을 접목시키는 것도 가장 어려웠다. 똑같은 기술도 선수마다 틀리다 보니 초창기 때는 소위 ‘뻥’을 많이 쳤다. 그때 성민수씨가 해설위원으로 오게 되었다. 그 뒤 민수씨에게도 물어보고 방송나간 것을 맞게 썼나 모니터하면서 눈에 익히고 공부도 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지금은 자타공인 최고의 WWE 전문가인 성민수 해설위원도 처음에는 이재호 해설위원처럼 똑같이 힘든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성민수씨가 매니아 출신이라 아는건 많은 데 얘길 잘 못했다. 말도 버벅거리고... 그래서 진짜 레슬러를 해설자로 앉혔다. 그런데 프로레슬링 중계라는게 일반 중계로 가면 안 된다. 일반중계로 가더라도 뒷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트리플H와 숀마이클이 경기를 할 때 경기 자체의 중계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과거의 친분과 현재의 상황을 적절히 들어주면서 중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니까 결국 PD와 상의해서 차라리 제대로 된 해설자 만들어보자 하고 그 다음부터 성민수씨로 다시 가게 된거다.”

WWE 중계는 생중계이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WWE 중계는 대본이 없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어차피 외국에서 미리 녹화된 경기 테잎(대략 미국 방영시간과 한국 방영 시간은 3주 정도 차이가 난다)도 있겠다 미리 상황에 맞게 대본을 써놓고 그걸 읽으면 편할 것 같은데 절대 아니다. 방송에는 오로지 'Cue Sheet'라고 해서 경기 일정만 보면서 하는 것이다.

촬영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하지만 진행은 정확하다.

“사실 처음 할 때는 보고 했다. 원래 ‘선데이나이트히트’같은 프로그램은 어차피 스토리가 없기 때문에 성민수씨한테 최근의 엑기스를 뽑아 오라고 주문했다. 최근 소식이나 팬들이 원하는 뉴스를 미리 준비해서 연습하고 방송에 들어갔다. 사실 해설자도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힘드니까 캐스터인 나도 잘 모르는 거고. 그러나 그게 안 좋더라. 우선 말을 맞추고 들어가면 그것만 하려고 하니까. 또 미리 보고 연습하니까 다음에 뭐가 일어날지 예측을 하기 때문에 자기가 미리 이야기를 해버린다. 하지만 스포츠 중계는 상황에 맞게 딱딱치고 들어가야 하거든. 순발력있게. 그걸 하려면 연습을 하면 안 된다.”

지금 이기호씨같은 경우에는 다음 주 경기 녹화 테잎이 와도 녹화 전에는 절대 보지 않는다. 대신 이재호 해설위원은 해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본다.

“거의 안보고 꼭 봐야할 때는 다음 주 경기를 빨리 돌려본다. 왜냐하면 다음 주 상황을 봐서 이번 주의 어느 부분을 중점적으로 얘기해야 하나 알기 위해서 주로 본다. 처음에는 혼동했다. 미리 보다 보니까 이 선수들이 저번에 시합했었는데 지금하는게 저번에 했던건가 아닌가하고 많이 헷갈렸었다. 그러나 요즘은 워낙 인터넷에 오픈되어 있어서 굵직굵직한 사건은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블락이 WWE를 떠났다던지 레슬매니아에서 베노아가 챔피언을 먹었다던지 그런 어쩔 수 없이 알게 되는 것만 알고 있다.”

혹 방송 도중 다음 주 상황을 얘기하고 싶은 경우도 있을 법한데 그건 서로 묵인된 상태다. 일부러 방송 전에 서로 예측하는 것도 재밌다.

“스토리니까 나도 예측을 해보거든. 그걸 또 이재호씨한테 물어보고 맞을 때는 그게 또 재밌다. 캐스터기 때문에 분석을 하면서 리드를 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보고 하면 나부터가 우선 재미가 없으니 방송도 재미없어질지도 모른다.“

방송을 보면서 다음 주 상황을 알고 있을 텐데 왜 이런 말을 할까, 연기 아닐까하는 시청자가 있다면 설명이 되었을 것 같다.

(2)부에서 계속...



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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