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서울월드컵경기장, 김환 기자) 현역 은퇴를 사실상 공식화한 한국 축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레전드 공격수 '주멘' 박주영이 오랜만에 상암벌을 밟았다.
홈 팀 팬들이 상대팀의 교체 선수를 박수로 맞이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구단도 상대 선수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은 이미지를 전광판에 띄웠다. FC서울 내 박주영의 위상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울산HD에서 플레잉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박주영은 10일 오후 2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울산의 '하나은행 K리그1 2024' 37라운드에서 전반 33분경 강윤구와 교체되어 약 2년 만에 경기에 출전했다.
박주영 투입은 전술적인 교체가 아니었다. 이날 울산은 프로 은퇴를 결심한 박주영이 자신이 오랜 기간 몸담았던 구단인 서울을 상대하는 경기에서 서울 팬들에게 인사를 하도록 시간을 마련해줬다. 서울 구단과 취재진도 경기 당일에 이 소식을 접했다.
울산 관계자는 경기 전 "구단에서 박주영이 서울 팬들에게 인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판단했다. 교체 명단에 포함된 박주영은 테이핑을 하면서 경기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며 "은퇴 직전에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맞다고 선수 본인은 물론 다른 선수들도 그렇게 생각했고, 김판곤 감독님도 받아들였다. 구단과도 이야기가 했다"고 밝혔다.
김판곤 감독은 사전 인터뷰에서 "나도 놀랐다. 선수들이 갑자기 요청을 했다. 우승을 하고 박주영 선수가 이제 공식적으로 은퇴하고 싶다는 말을 해서 홈에서 열리는 수원FC전을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었다"면서 "선수들이 박주영 선수가 홈 팬들에게 인사할 기회를 주는 게 어떠냐고 하길래 선수단 전체의 생각이라는 걸 확인하고 코칭 스태프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팀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좋은 계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이야기를 듣고 구단에도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어제 저녁까지 바빴다"며 "오늘 취재진에게 불편을 드려서 미안하다. 조금 더 빨리 결정을 해야 했는데 정말 바빴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만큼 박주영의 출전은 급하게 결정된 일이었다. 노장들을 주축으로 한 울산 선수단이 뜻을 모아 박주영이 서울전에 나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자고 했고, 김판곤 감독과 울산 구단도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당사자인 박주영은 이를 부담스럽게 생각했지만, 워낙 좋은 선배였기 때문에 후배들이 마음을 모았다는 후문이다.
2005년 서울에서 데뷔한 박주영은 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었다. 그는 2005시즌 리그 12골 3도움을 포함해 30경기에서 18골 4도움을 기록하며 만장일치로 신인상을 받으며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2008시즌까지 서울에서 활약한 박주영은 이후 해외 무대에 도전했다. AS모나코(프랑스), 아스널(잉글랜드) 등 각국 명문 구단에서 뛰다 지난 2015년 친정팀 서울을 통해 K리그로 돌아왔다. 이후 2021시즌까지 서울에서 뛰다 2022시즌을 앞두고 울산으로 이적했다.
한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플레잉 코치 역할에 집중하던 박주영은 서울전을 통해 약 2년 만에 축구화 끈을 동여맸다. 박주영의 마지막 출전은 지난 2022년 10월23일 울산의 우승이 확정된 뒤 홈에서 치른 제주 유나이티드전이었다.
서울과 울산 팬들은 모두 뜨거운 박수로 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주영을 맞이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내는 팬들도 있었다. 서울 구단도 전광판에 박주영에게 감사를 전하는 이미지를 띄워 박주영을 환영했다.
하프타임까지 출전하는 것으로 약속됐던 박주영이 무언가를 보여주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기회도 많지 않았다. 박주영은 몇 차례 공격과 수비에 가담했지만 서울을 위협하지는 못한 채 전반전을 마치고 터널로 들어갔다.
사진=서울월드컵경기장, 김환 기자
김환 기자 hwankim14@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