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2일 오후 6시 30분 포항야구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정규시즌 경기가 폭염으로 인해 취소됐다. 올해 리그 4번째 폭염 취소다. 이날 포항구장 그라운드에 비치된 온도계가 50도를 가리키고 있다. 포항, 최원영 기자
(엑스포츠뉴스 잠실, 김지수 기자)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까지 이어진 폭염에 심판들도 수난을 겪었다. 다행히 승부는 별 탈 없이 끝났지만 현장에서는 향후 리그 운영 과정에서 경기 개시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두산 베어스는 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의 팀 간 16차전에서 5-4로 이겼다. 지난 14일 KT 위즈를 2-1로 꺾은 기세를 이어갔다.
두산은 이날 승리로 선두 KIA 타이거즈에게 패한 KT를 제치고 5위에서 4위로 도약했다. 보다 높은 위치에서 가을야구를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두산이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3-2로 앞선 9회초 마무리 김택연이 수비 실책 여파 속에 동점을 허용, 예상치 못했던 9회말 공격이 진행됐다. 1사 2·3루 끝내기 안타 찬스에서 김기연이 내야 뜬공, 김재환이 삼진으로 물러나 승부는 연장까지 이어졌다.
두산은 연장 10회초 이닝 시작과 함께 마운드에 오른 우완 정철원이 김혜성, 최주환에게 연속 볼넷을 내줘 무사 1·2루 위기에 몰렸다. 벤치에서는 곧바로 투수를 우완 최종인으로 교체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8월 4일 두산 베어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정규시즌 맞대결이 예정됐던 서울 잠실야구장. 두 팀의 경기는 폭염으로 인해 취소됐다. 엑스포츠뉴스 DB
하지만 최종인의 첫 투구 전 변수가 발생했다. 주심을 맡았던 문동균 심판위원이 갑작스럽게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심판진은 잠시 경기를 중단시켰다. 두산, 키움 벤치에 상황을 설명하고 대기심이던 정종수 심판위원이 문동균 심판위원을 대신해 주심으로 투입됐다.
이날 경기는 오후 2시에 개시됐다. 문동균 심판위원은 30도가 넘는 더위와 강하게 내리쬐는 뙤약볕에 4시간 가까이 그라운드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었던 상태였다. 심판진 교체로 경기는 약 5분 동안 지연된 뒤 재개됐다.
KBO리그는 올해 한반도를 뒤덮은 뜨거운 폭염 속에서도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로 1000만 관중을 동원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하지만 7~8월 혹서기를 지나 9월부터 일요일, 공휴일에 오후 2시 낮 경기가 진행되면서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지난 13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는 관중 23명이 어지러움 등 온열질환을 호소했다. 2명은 구급차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6명은 병원 진료 후 귀가, 15명은 야구장에 마련된 의무실에서 진료를 받고 휴식을 취했다.
지난달 3일에도 잠실에서 열린 두산과 키움의 경기에서 관중 4명이 온열질환을 호소, 구급차로 이송되기도 했다. KBO는 고온 현상으로 관중들이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자 8월 공휴일 경기 시간을 오후 5시에서 6시로 조정했다.
문제는 9월에도 폭염이 물러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지상파 중계를 이유로 일부 토요일 경기가 오후 5시에서 2시로 변경됐다. 추석 연휴인 15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총 14경기가 낮 2시에 시작해 관중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컸다.
이숭용 SSG 랜더스 감독은 지난 15일 삼성 라이온즈와 인천 홈 경기에 앞서 "9월이지만 아직 여름 날씨다. 오후 2시 경기를 하기에는 너무 힘들다. 선수들끼리는 쓰러질 것 같은 농담도 한다"며 "지금 상황에서 오후 2시 경기가 좋은 건지 모르겠다. 올해만 날씨가 이렇다면 다행이지만 내년 여름에도 폭염이 지속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경기 시간을 유연하게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승엽 두산 감독도 17일 경기에 앞서 "폭염이 9월까지 이어질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내년 여름에도 이런 날씨가 지속된다면 경기 개시 시간을 조금 더 유연하게 조정해 줬으면 좋겠다"며 "선수들이 정말 힘들다. 경기력도 오후와 저녁 경기는 차이가 크다"고 강조했다.
A 구단 베테랑 선수는 "야간 경기를 마치고 이튿날 오후 2시 경기를 치르는 자체도 선수들에게는 피로도가 크다. 올해는 폭염 때문에 체력 소모도 심하고 힘들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지상파 중계 때문에 오후 5시 경기가 2시로 앞당겨지는 경우가 최근 많았는데 현장의 의견도 들어주셨으면 한다. 선수들도 선수들이지만 이런 날씨에 야구장을 찾아주시는 팬들의 안전과 건강도 걱정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선수, 심판진뿐 아니라 안전 요원, 진행 요원들도 폭염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대부분의 구장들이 근무자를 대폭 늘리고 휴게 시간도 이전보다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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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