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 이어 월드컵 무대에서도 사제대결이 이뤄질 수 있을까.
손흥민을 지난 2015년 현 소속팀인 프리미어리그 빅클럽 토트넘으로 데려갔던 아르헨티나 출신 감독 마우리시오 포체티노가 공석인 미국 축구대표팀에 정식 취임했다. 미국은 2026 월드컵 개최국으로 자동출전권을 갖고 있어 한국 대표팀이 아시아 예선을 통과하고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게 되면 A매치에서도 스승과 제자로 격돌할 가능성이 생긴다.
미국축구협회는 11일(이하 한국시간) 남자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포체티노 감독을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ESPN에 따르면 포체티노 감독의 임기는 미국에서 열리는 2026 북중미 월드컵까지 약 2년이다. 연봉은 600만 달러(약 80억6000만원)에 달한다. 2년 뒤 월드컵을 앞두고 휘청거리는 미국 대표팀 부활을 위해 미국축구협회에서도 많은 신경을 썼다. ESPN은 "포체티노 감독이 가장 최근 지휘한 프리미어리그 첼시에서 수령한 금액보다는 적지만, 미국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으로는 역사상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다"고 확인했다.
포체티노 감독은 이미 한 달 전부터 미국 지휘봉을 잡는 것으로 유력한 상황이었고 보도도 수 차례 나왔다. 이번 9월 A매치 기간에 벤치에 앉을 것으로 여겨졌으나 그렇지 못했다. 외신은 포체티노 감독이 전 직장이었던 첼시와의 계약 문제로 사인이 지체되면서 미국 대표팀 부임 공식발표도 9월 A매치 기간이 끝난 뒤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포체티노 감독은 내달 13일 파나마와의 친선경기, 그리고 사흘 뒤 열리는 라이벌 구단 멕시코와의 평가전에서 미국 대표팀 사령탑 데뷔전을 치른다.
포체티노은 명성 면에서는 미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도 부족함이 없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20경기를 뛰며 2002 한일 월드컵에도 나섰던 그는 은퇴 뒤 지도자로 변신, 2009년 스페인 에스파뇰을 시작으로 2013년 프리미어리그 사우샘프턴을 거쳐 이듬해 5월 토트넘 지휘봉을 잡았다.
이미 에스파뇰과 사우샘프턴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았지만 토트넘 부임 기간은 그의 감독직 명성을 드높인 기간이 됐다. 포체티노 감독은 5년 6개월 재임하면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와 프리미어리그, 리그컵 등에서 각각 토트넘을 한 번씩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비록 트로피를 들어올리진 못했으나 포체티노 감독이 오기 전 토트넘이 상위권에 안착하던 팀이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오면서 토트넘 새 전성기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2019년 11월 토트넘에서 경질된 뒤 행보는 성공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프랑스 최고 명문 파리 생제르맹(PSG)와 프리미어리그 톱 클럽 첼시에서 지휘봉을 잡았으나 장기 근속에 실패했다.
특히 지난해 여름엔 첼시에 부임하며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많은 팀을 다부지게 이끌고자 노력했으나 1년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고 지난 5월 말 쫓겨나다시피 구단을 떠났다.
어쨌든 미국축구협회는 새 사령탑 후보들 중 명성이나 지도력 등을 고려해 포체티노 감독을 낙점했다.
미국축구협회는 "노련하고 매우 존경받는 포체티노 감독은 토트넘, PSG, 첼시 등 유럽 최고의 클럽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고 설명했다.
포체티노의 연봉 600만 달러는 미국 축구대표팀 감독 급여로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미국 축구가 유럽이나 남미와 달리 인기가 떨어지고 상업성이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포체티노의 급여는 파격적인 수준이라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
미국축구협회는 이에 대해 헤지펀드 시타델의 켄 그리핀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의 기부금, 다이아미터 캐피털 파트너스의 공동창립자 스콧 굿윈의 추가 지원금에 기타 기업들의 후원으로 포체티노 감독 선임 비용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매트 크로커 미국축구협회 기술이사는 협회를 통해 "포체티노 감독은 선수 발굴에 열정이 넘친다"며 "응집력 있고 경쟁력 있는 팀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포체티노 감독은 "단지 나 자신에 대한 결정이 아닌, 미국 축구와 미국 대표팀의 여정에 관한 결정이다. 대표팀 감독직 제안을 수락한 이유는 미국 축구대표팀의 역사적인 성취를 위한 에너지와 갈망 때문"이라며 "온 국민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특별한 걸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지난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웨일스와 이란을 물리치고 잉글랜드에 이어 조별리그 2위를 차지한 뒤 16강에 올라 네덜란드에 패하고 탈락했던 미국 축구는 올해 들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7월 홈에서 열린 코파 아메리카(남미축구선수권) 2024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겼던 파나마에 패하며 8강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에 카타르 월드컵 직후 사임했다가 다시 지휘봉을 잡았던 그레그 버홀터 감독을 경질했다.
이후 2026 월드컵에서 2002년 대회 이후 24년 만에 미국 대표팀을 8강에 올려놓을 적임자를 찾고자 위르겐 클롭 전 리버풀 감독 등 거물급 인사들과 접촉하다가 포체티노 감독을 영입하게 됐다.
다만 포체티노 감독 영입에도 여전히 의문점은 남아 있다. 우선 포체티노 감독이 현역 시절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뛰기는 했지만 지도자로는 대표팀을 맡아본 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시즌 내내 선수들과 부대끼는 클럽과 달리 1년에 6~7번 남짓 만나는 대표팀에서 선수들의 컨디션을 어떻게 단기간에 끌어올려 2~3번의 경기를 치를지 검증된 것이 없다.
여기에 외국인 감독 흑역사가 미국 축구계에 상처로 남아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한국 대표팀 감독이 과거 미국 대표팀 시절 2018 러시아 월드컵 북중미 최종예선을 치르다가 최하위로 떨어져 도중 하차했고 결국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한 기억이 있다. 미국 축구계 입장에선 포체티노 감독이 클린스만 감독 아래서의 아픈 기억을 지울 수 있을지 시선을 모으고 있다.
어쨌든 포체티노 감독이 미국 지휘봉을 잡았고 향후 손흥민과의 A매치 만남도 가능하게 됐다. 포체티노 감독은 2016년 손흥민이 토트넘 생활을 1년 만에 접고 독일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려고 했을 때 강하게 만류했고 이는 지금의 프리미어리그 리빙 레전드 손흥민이 있게 한 전환점이기도 한 터라 둘의 A매치에서 어떤 운명으로 부딪힐지 기대를 모은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축구협회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