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정현 기자) 지난 2014년 박지성이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을 떠나고 10년 만에 같은 리그에 입성하는 한국인 선수가 탄생했다.
해당 선수는 국가대표팀 핵심 미드필더 황인범이다. 황인범이 PSV 라이벌이자 네덜란드 명문 구단인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으로 이적한다. 다만 네덜란드 한 축구사이트가 황인범, 그리고 황인범과 한솥밥을 먹은 전 소속팀 동료 설영우를 헷갈려 설영우 사진을 페예노르트 이적생이라고 걸어놓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페예노르트 구단은 3일(한국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황인범과 2028년까지 4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황인범은 붉은색과 흰색을 반씩 가르는 페예노르트 유니폼에 등번호 4번을 달고 뛰게 된다. 페예노르트는 과거 송종국과 이천수 등 2002 한일 월드컵 주역 두 명이 뛰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송종국은 2002 한일 월드컵 직후 네덜란드로 건너가 오른쪽 수비수로 뛰었다.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에 입단했다가 부진 끝에 돌아왔던 이천수는 2005년 K리그 MVP를 거머쥔 상승세를 발판 삼아 2007년 페예노르트를 통해 생애 두 번째 유럽 진출을 이뤘다.
둘에 이어 황인범이 페예노르트 한국인 3호로 입단하게 됐다.
이로써 황인범은 지난 2년간 그리스 올림피아코스, 세르비아 츠르베나 즈베즈다 등을 통해 동유럽에서 뛰었으나 생애 처음으로 서유럽 구단 입단 기쁨을 누리게 됐다.
유럽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황인범을 데려간 페예노르트가 즈베즈다에 수백만 유로의 이적료를 지불한다. 네덜란드 유력지 '더 텔레그라흐'에 따르면 즈베즈다는 황인범의 바이아웃(이적 보장 최소 금액)을 800만 유로(약 118억원)로 책정한 걸로 알려졌다. 즈베즈다는 1년 사이 250만 유로, 약 43억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황인범은 입단 직후 페예노르트의 홈구장으로 5만명 수용 규모인 데카입 경기장에서 뛰게 되는 것에 대한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동료 우로 스파이치는 내가 페예노르트로 가는 게 맞는 결정이라고 했다. 내 경력 중 페예노르트가 가장 큰 클럽"이라며 "페예노르트는 홈경기마다 스타디움이 꽉 차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유럽에서도 빅클럽이고 여기 오래 머무르고 싶다. 기쁘고 팬들에게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황인범은 즈베즈다 팬들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황인범은 이미 즈베즈다 마지막 경기를 뛴 다음 운동장을 한바퀴 돌며 작별 인사를 하고 눈물까지 흘렸다.
황인범은 "즈베즈다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1년 전에 내가 제일 힘들 때 계약해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황인범은 당시 전전 소속팀인 그리스 올림피아코스와 갈등을 빚으면서 경기에 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황인범은 이어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제 생애 첫 번째이자 두 번째 트로피인 2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지난 시즌 나에게 '올해의 선수'를 선물해 준 것도 감사하다"고 했다.
이어 "행운이 있길 바라며 한국 선수인 설영우을 잘 보살펴달라"고 했다. 지난 7월 울산에서 이적해 이제 즈베즈다에서 한창 활약하고 있는 대표팀 후배 설영우에 대한 응원도 잊지 않았다.
사실 황인범의 다음 행선지로 거론된 팀은 페예노르트가 아니라 라이벌 구단인 네덜란드 최고 명문 아약스였다. 아약스가 바이아웃 금액을 지불할 의사를 보였다고 세르비아 매체들이 최근 보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약스 러브콜이 온 뒤 페예노르트도 참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결국 황인범은 행선지를 페예노르트로 최종 결정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어약스가 명문인 것은 맞지만 지난해 정규리그 준우승을 차지해 올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내는 등 최근 상승세는 페예노르트가 더 가파른 것이 황인범을 로테르담이라는 도시로 이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한 매체가 황인범 대신 설영우 사진을 집어넣는 촌극을 빚었다.
'433네덜란드(433.nl)'은 설영우가 즈베즈다 유니폼 입고 환하게 웃는 사진을 게재한 뒤 "황인범이 페예노르트로 간다"고 알렸다.
이에 팬들은 댓글로 "선수가 틀렸다", "이런 짓도 인종차별"이라며 항의하는 중이다.
황인범은 올림피아코스에서 활약할 땐 사우디아리비아 구단들의 거액 제안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황인범 입장에서도 우여곡절 끝에 올림피아코스에 둥지를 틀고 선수 생활을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거액의 오퍼에 흔들릴 법도 했지만 눈길 한 번 돌리지 않았다. 결국 페예노르트 입단이라는 결실로 돌아왔다. 그런 노력을 매체는 모르는지 황인범이 누군지도 모르는 기초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네덜란드 굵직한 항구 도시 로테르담을 연고지로 둔 페예노르트는 아약스(36회), PSV 에인트호번(25회)에 이어 리그 우승 3위(16회)에 자리한 명문 구단이다.
지난 시즌에는 26승 6무 2패로 승점 84를 쌓아 에인트호번(승점 91)에 이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최근 우승은 25승 7무 2패로 승점 82를 쌓았던 2022-2023시즌이다. 이 때 우승을 일궈낸 아르네 슬롯 감독이 이번 시즌부터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지휘봉을 잡고 있다. 현재 사령탑은 브리앙 프리스케 감독으로 덴마크 출신이다.
페예노르트는 이번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싸워야 하다보니 경쟁력 차원에서도 그리스, 세르비아와 A매치에 검증된 황인범을 데려오게 됐다. 페예노르트는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 마치 비페르를 프리미어리그 브라이턴으로 보내면서 이 자리를 메울 중앙 미드필더가 필요하게 됐다.
네덜란드 유력지인 부트발 인터내셔날은 페예노르트의 황인범 영입 이유를 소개하면서 "황인범은 역동적인 미드필더로 이름을 알린 28살 한국인 선수다. 페예노르트는 이미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험을 갖고 있는 선수에게 투자하기로 했다"고 했다. 황인범의 다양한 경험, 특히 지난 시즌 즈베즈다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를 뛰며 맨시티전에서 골까지 넣었던 경험을 높이 산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페예노르트 구단 입장에선 한국 등 아시아 마케팅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도 보인다. 페예노르트는 오래 전부터 아시아 마케팅 담당을 두는 등 아시아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 물론 일본에도 오노 신지라는 레전드급 미드필더를 보유한 적이 있고, 지금은 일본 대표팀 원톱 주전인 우에다 아야세를 쓰고 있다.
국내 축구팬들에게 좋은 이미지로도 유명한 황인범이 오면서 마케팅 활동에도 힘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황인범 입장에서도 좀 더 수준 높은 리그에서 뛰며 매 시즌 유럽 무대를 밟을 수 있다는 장점을 획득했다. 즈베즈다는 지난 시즌과 올시즌 챔피언스리그 예선을 통과하긴 했지만 매 시즌 유럽 무대로 나간다는 보장은 없다. 다른 나라 리그 상위권 팀들과 항상 경쟁해야 한다. 페예노르트는 챔피언스리그든 유로파리그든 UEFA 클럽대항전 상위 레벨에서 꾸준히 뛸 수 있다.
황인범은 플레이스타일 면에서 박지성과 비슷한 점이 있다. 지난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최강 맨시티와 격돌이 성사되자 황인범은 "개처럼 뛰겠다"고 각오를 밝힌 적이 있는데, '개처럼 뛴다'는 유럽 언론이 상대 선수를 쉴 새 없이 괴롭히는 PSV 시절 박지성에 대해 했던 극찬이었다. 박지성은 이런 움직임으로 안드레아 피를로, 리오넬 메시 등 당대 최고의 공격수들을 꽁꽁 묶고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으로부터 "가장 저평가된 선수"라는 극찬을 받았다.
황인범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비를 하는 능력이 빼어나 많은 감독들이 중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제 황인범이 박지성의 뒤를 이어 '개처럼' 뛰는 한국인 미드필더가 될지 흥미롭게 됐다.
한편, 유럽 매체가 한국 선수 얼굴을 헷갈리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얼마전엔 독일 최고 축구지 키커가 홍현석의 마인츠 이적을 소개하면서 사진엔 이강인을 싣는 일이 있었다. 홍현석이 튀르키예 트라브존스포르 대신 독일 분데스리가 마인츠 이적을 전격 선택했는데 이 과정에서 매체가 선수 얼굴도 구분하지 못한 셈이었다. 이어 며칠 뒤 황인범과 설영우를 놓고 네덜란드 매체가 다시 헷갈리는 일이 일어났다.
사진=페예노르트, 연합뉴스, 442 SNS, 키커 SNS
김정현 기자 sbjhk8031@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