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권동환 기자) 작년에 고교 무대를 휩쓸었는데 올해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뭐 무슨 이런 만화 같은 캐릭터가 있나 싶다.
한국 사격이 8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주인공이 흥미롭다. 지난 2월 고교를 졸업한 제주도 출신 19세 총잡이 오예진(IBK 기업은행)이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사격 첫 금메달을 안겼다. 올림픽 앞두고 복병으로 여겨지긴 했지만 금메달까지 예상되진 않았는데 사고를 쳤다.
오예진은 28일(한국시간) 프랑스 샤토루 국립사격장에서 열린 2024 파리 하계올림픽 사격 여자 10m 공기권총 결승에서 243.2점의 올림픽 신기록을 찍으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예진이 금메달 결정전에서 마지막으로 겨룬 총잡이는 같은 한국의 김예진이었다. 김예진은 241.3점을 기록하면서 은메달을 따냈다.
3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17년 만에 '노골드' 수모를 겪었던 한국 사격이 간절히 기다렸던 금메달을 사실상 무명인 오예진이 해냈다.
오예진은 지난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여자 25m 권총 김장미에 이어 한국 여자 사수로는 12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일궈냈다. 여자 공기권총으로 한정하면 한국 사격 역대 첫 금메달 주인공이 됐다.
한국 사격이 올림픽 같은 종목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나눠 갖기는 이번이 두 번째다. 레전드 총잡이 진종오가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땄고 당시 각축을 벌이며 은메달을 차지한 사수가 최영래였다.
이어 오예진과 김예지가 역시 권총 종목에서 12년 만에 똑같은 장면을 연출하며 샤토루 국립사격장에 태극기 두 개를 한꺼번에 올리고 애국가를 울려퍼지게 했다.
둘의 동반 메달 획득은 예선이 끝난 전날 어느 정도 예상됐다. 특히 오예진은 파리에서 쾌조의 컨디션을 드러내며 금메달 예감까지 들게 했다.
오예진은 전날 열린 예선에서 582점을 기록하며 2위를 차지했다. 1위 베로니카 마조르(헝가리)와 점수가 같았으나 10점을 적게 쏴서 2위였다. 사실상 공동 1위였다.
권총 종목 예선은 한 발 만점이 10점인데 예선에선 선수마다 총 60발을 쏘기 때문에 만점이 600점이다. 오예진은 10발 단위 시리즈마다 95점 이상의 최고 수준 기록을 내면서 최고의 컨디션을 과시했다.
결승에서 한국 선수들은 더 힘을 냈고 특히 오예진이 강했다. 결승에선 우선 8명의 사수가 10발씩 똑같이 쏜다. 결승에서의 한 발 만점은 10.9점으로 10발을 합치면 만점이 109점이다.
여기서 오예진이 101.7점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이후부턴 사수마다 2발씩 쏴 한 명씩 탈락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마조르가 8명 중 가장 먼저 탈락하면서 이번 10m 공기권총 종목의 난이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알렸다.
오예진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표적만 바라보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는 사이 경쟁자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3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이 종목 동메달, 10m 공기권총 혼성에서 금메달을 따낸 사격 강국 중국의 장량신이 6위로 탈락하는 일도 일어났다.
결국 오예진이 선두권에서 밀리지 않은 가운데 김예지도 마누 바케르를 제압하면서 한국 선수 둘이 금메달을 놓고 마지막 두 발을 쏘게 됐다. 오예진이 이겼다.
오예진은 0.8점 앞선 상황에서 마지막 두 발을 10.0점, 10.6점에 꽂아넣었다. 김예진은 9.7점. 9.8점을 쐈다. 오예진은 우승 직후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금메달 기쁨을 자축했다. 손가락 세리머니까지 펼쳤다. MZ세대 답게 과감하고 호쾌한 세리머니를 샤토루 국립사격장에서 펼쳐보였다.
오예진은 마인드도 달랐다. 2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오예진은 금메달을 따낸 뒤 한국 취재진과의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여기 오기 전부터 결승 마지막 발을 쏘고, 금메달 들고 환호하는 걸 계속 상상했다. 그게 실제로 이뤄지니까 정말 기쁘다"며 웃은 뒤 "굉장히 메달이 무겁지만, 뿌듯하다. 엄마와 통화할 때 실감 날 것 같다"고 감동을 전했다.
오예진은 김예지와의 마지막 승부를 두고는 "딱 마지막 발에 확신이 있었다. '이건 들어갔다' 싶더라. 그래서 쏘고 안전기 끼우고 돌아서서 진짜 크게 소리 질렀다"고 금메달의 순간을 떠올렸다. 오예진은 경기 중반 연달아 9점대를 쏘면서 잠시 1위 자리를 김예지에게 넘겨주기도 했지만, 이내 선두를 탈환한 뒤 그대로 우승했다.
오예진은 "평소라면 안 풀리면 '왜 이러지' 했을 텐데, 오늘은 유독 그런 생각보다는 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입 밖으로 '할 수 있다', '그냥 즐겨' 이렇게 내뱉었다. 덕분에 편하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오예진은 지난해 두각을 나타냈지만 파리 올림픽보다는 4년 뒤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나 활약할 것으로 여겨졌다.
지난해 고교 9관왕을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지만, 세계 무대에서 싸우려면 경험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국제사격연맹(ISSF) 세계랭킹도 35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무서운 상승세 앞에 세게랭킹은 숫자에 불과했다.
오예진은 6년 전인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들을 따라 테스트를 봤고 이 때 재능을 알아차려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걸었다. 제주 표선중을 졸업한 오예진은 이번 올림픽에 함께 간 홍영옥 코치의 권유로 제주여상에 진학하면서 실력이 급성장했다. 고교 9관왕은 결코 예사로운 재능이 아니었다.
사격의 경우 올림픽 쿼터를 획득해도 국내 선발전을 거쳐서 이겨야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다. 오예진은 지난해 열린 창원 아시아선수권에서 자신이 따낸 쿼터를 지난 4월 대표 선발전에서 1위로 지켜냈다. 그런 자신감을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도 여지 없이 발휘했다.
오예진은 "내가 메달 유력 후보는 아니라고 해도, 그런 건 신경 안 썼다. 내 것만 하면 다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평소처럼 하면 다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예진의 파리 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금메달 감격이 가시기도 전인 29일 남자 권총 간판 이원호와 함께 10m 공기권총 혼성 단체 예선에 출전하며 여기서 상위 8명 안에 들면 30일 결승에 진출한다. 이원호도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4위로 아깝게 메달을 놓쳤기 때문에 둘이 합치면 또 하나의 금메달도 충분히 가능하다.
오예진은 "(이)원호 오빠와 함께 경기하며 내가 동생 노릇 하겠다. 동생이 오빠를 이렇게 떠받치겠다"며 여동생 역할을 자신했다.
사진=연합뉴스
권동환 기자 kkddhh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