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윤현지 기자) 방송인 안선영이 빚을 갚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를 이야기했다.
3일 방송된 채널A '4인용식탁'에는 CEO 겸 방송인 안선영이 출연했다. 이날 게스트로는 변호사 양소영, 방송인 정가은과 배우 송진우가 초대됐다.
이날 게스트들은 안선영에게 받은 고마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송진우는 아기를 낳았을 때 안선영이 살뜰히 챙겨줬다며 "반면에 누나는 부탁을 안 한다. 부담을 전혀 주지를 않더라"라고 말했다.
그에 대해 안선영은 "부탁을 하면 마음에 빚이 생긴다"며 과거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했다.
그는 "어느 정도로 가난했냐면 공중화장실을 쓰는 집이 다닥다닥 붙은 부산에서 제일 바닷가 종점 쪽에 빈촌에서 살았다. 늘 단수가 돼서 물통에 물 받아먹었다"고 말했다.
이어 "봉지 쌀을 사 먹었다"며 "엄마가 봉지 쌀 못 사 오는 날은 쌀을 불려서 먹으면서 컸다"고 덧붙였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안선영은 "어머니가 일을 한 번도 안 하셨다. 첫 직장이 화장품 방문 판매였다. 주말에는 엄마가 나를 맡길 데가 없으니까 나를 리어카에 태우고 방판을 갔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내가 눈치가 빠르니까 손님 집 아이 데리고 나가서 놀고, 짖궂은 장난을 쳐도 참았다. 그럼 어머니는 한 개 팔 거 다섯 개 팔았다"고 말했다.
또한 햇빛이 안드는 집에서 살았다는 안선영. 어머니의 노력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좋은 동네로 이주, 고등학교 2학년 때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밝혔다.
안선영은 "빈민층에 리어카로 방판하며 자식 겨우겨우 하나 키운 여자의 딸인데, 내가 대한민국에서 화장품을 제일 많이 판 여자이지 않나. 화장품 1조 이상 판 여자"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당시 연기자의 꿈을 꾸고 뮤지컬의 본고장인 영국에 가고 싶었다는 안선영은 "차량 광택제와 오렌지를 팔았다. 전국 최우수 사원을 찍었다. 당시 시급이 1200원이었는데 한 달 반 일해서 500만 원을 벌었다"고 설명했다.
영국 3개월 어학연수를 떠났다는 안선영은 "친구들은 금수저였다. 당시에 한식이 먹고 싶어서 짜장면이 만 몇천 원인데 그런 걸 막 사 먹더라. 내가 만들어줄까 했다. 차이나타운 가서 춘장사고 요리를 해보니 되더라. 그렇게 3명이 친해졌는데, 방에 사람이 남는다고 들어오라더라. 그렇게 생활비를 아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돈을 벌고 싶어서 깍두기를 만들었다는 안선영은 점점 제조 규모가 커졌다며 "나중에는 깍두기를 욕조에 담갔다. 열 손가락에 습진이 다 걸렸다"고 덧붙였다.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모셔 오고 싶었지만 IMF가 터졌다고. 그는 "(어머니) 가게가 망하면서 빚만 쌓이게 됐다. 어머니가 웬만하면 아쉬운 소리를 안하는데 한국에 들어오라고 하더라. 급하게 짐을 챙겨서 한국에 왔는데 자가용도 없고, 집도 이사를 갔더라"라고 설명했다.
억 단위 빚이 생긴 것을 본 안선영은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다가 어머니가 고생해서 나를 키웠는데, 이제 내가 이 사람을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 괜찮아. 내가 해볼게'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뮤지컬 배우의 꿈을 접은 안선영은 방송일을 시작하며 서울에 오게 됐고, 개그맨 시험을 쳐 합격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사실 300만 원의 상금 때문이었고, 공채가 되더라도 방송을 안 할 생각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빚을 갚기 위해 홈쇼핑을 시작하면서 "연예인이 물건 판다"며 혼이 났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혼나서 펑펑 울기도 했는데 꿋꿋이 생방송에 나간 이유는 난 너무 절실했다. 빚쟁이들에게 맨날 전화 왔다. 이걸 갚아야 했다. 출연료 10만 원 더 주면 그걸 했다"며 바삐 살았던 과거를 회상했다.
안선영은 결국 4년 만에 엄마 빚 1억 4천을 갚았다고. 양소영 변호사는 "당시 잠실 아파트가 2~3천만 원이면 살 수 있었다"라며 물가를 비교해 어마어마한 벌이를 실감케 했다.
사진=채널A
윤현지 기자 yhj@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