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배우 송승환이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웃음의 대학’을 통해 오랜만에 코미디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연극열전의 20주년 기념 시즌 ‘연극열전10’ 두 번째 작품 ‘웃음의 대학’이 9년 만에 돌아왔다. 일본 극작가 미타니 코키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웃음의 대학’은 1940년 전시 상황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희극을 없애려는 냉정한 검열관(송승환, 서현철)과 웃음에 사활을 건 극단 ‘웃음의 대학’ 전속 작가(주민진, 신주협)가 벌이는 7일간의 해프닝을 담는다.
연기 59년 경력의 송승환은 웃음은 불필요하다 여기며 희극을 없애려고 하는 검열관을 연기하고 있다.
“‘더 드레서’를 2020년에 시작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도중에 막을 내렸어요. 2022년에 재공연할 때까지도 코로나가 끝나지 않아 한자리 띄어 앉기를 하면서 가까스로 공연을 마쳤죠. 또 다른 작품으로 뭘 할까 고민하던 차에 ‘웃음의 대학’ 대본을 읽게 됐고 마음에 들었어요. 더 늙으면 검열관 역할을 못 할 것 같아 출연하게 됐어요.”
극 중 작가가 공연 허가를 받기 위해 검열관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여 대본을 수정하는 과정이 더해질수록 재미를 더해간다는 설정이다. 예상할 수 없는 서사 전개로 희곡 자체가 가진 가장 순수한 ‘웃음’을 선사한다.
“코미디임에도 테마가 강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이끌어요. 억지로 뭘 만들어서 웃기는 대사가 없어 자연스럽고요. 코미디 연기는 20년 전에 연극 ‘아트’를 했고 TV로는 김수현 선생님의 드라마를 많이 했는데 홈드라마면서도 코믹하거든요. 1996년도에 한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코믹한 연기를 많이 했어요. 그 후에는 코믹한 연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어요.
‘웃음의 대학’은 검열관이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 장면이나 대사가 없어요. 자기가 맡은 일에 집중하고 나중에 검열관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관객이 보기에 웃긴 것이지, 제가 스스로 코믹한 연기를 만들 필요는 없었어요. 그만큼 억지스럽지 않고 흐름이 자연스러워 좋았죠.”
단 두 명의 배우가 활약하는 2인극의 특성상 등, 퇴장이 거의 없다.
“무대에 계속 있는 게 쉽지는 않죠. 긴장의 텐션을 길게 가져가야 하거든요. 연극을 좋아하는 이유는 캐릭터에 길게 몰입할 수 있는 거예요. 드라마나 영화는 2, 3분 집중하면 카메라와 조명의 위치를 바꾸는데 연극은 한 번 오르면 그 캐릭터를 길게 가져갈 수 있어요. 단둘이 퇴장 없이 하니 집중도가 더 큰 거죠. 어떻게 보면 스트레스지만 연기를 즐길 수 있어요.”
물론 힘들지만, 망막색소변성증을 앓는 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연기하기 용이했단다.
“솔직히 퇴장이 있으면 암전 때 캄캄해 힘들어요. 퇴장이 한 번 있는데 작가 역을 하는 배우가 퇴장했다가 무대 위로 올라가서 날 데리고 나오거든요. 원래는 한 번 더 있었어요. 암전 후 의자에 부딪히고 단에서 떨어질뻔 해서 연출님이 무대 위에 있는 거로 수정해 줬죠. 연출의 배려와 후배 배우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는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원인을 알 수 없는 시력 저하로 실명 위기에 놓였다. 알고 보니 망막색소변성증이었다. 과거 다수의 방송에서 해당 사실을 털어놓았다.
“핸디캡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 배우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귀로 집중해요. 눈이 어떻게 나쁜지 설명하기 힘든데 이 방에 안개가 가득 끼어있는 것 같아요. 귀가 굉장히 예민해져야 해요. 상대의 대사, 감정, 느낌 등을 교감해야 하거든요.
대본을 눈으로는 못 보니까 대사를 들으면서 암기해요. 더 좋은 거 같아요. 암기 속도도 더 빨라지고 리허설 때 작은 소품의 위치까지 꼼꼼하게 챙기죠. 상대방의 표정이 정말 궁금하면 정말 가까이 가서 봐요. 여기서 이런 표정을 짓는다는 걸 기억하고 연기해요. 리허설 과정이 있어서 극복할 수 있는데 다만 챙길게 많아졌고 시간이 많이 걸려요.”
이날 송승환은 라이트를 직접 달아 유용한 자신만의 지팡이를 취재진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시각장애 4급 판정이어서 운전면허증을 반납했고 골프는 뒤늦게 배웠는데 좋아하거든요. 어렴풋하게 흰 공이 보여요 하얀 솜뭉치처럼 보이는데 골프 헤드에 더 잘 맞아요. (웃음) 운이지만 그전까지는 못 하다가 시각장애 판정을 받고 바로 홀인원했어요. (지팡이를) 내가 개발했는데 라이트를 사서 붙여 밝은 빛으로 볼 수 있게 했어요. 손숙 선생님에게도 선물을 줬고 이순재 선생님도 눈이 불편하다고 하셔서 만들어서 선물 드렸죠.”
모두에게 그렇겠지만 배우, 또 프로듀서에게 망막색소변성증이란 굉장한 핸디캡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원동력은 뭘까.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서 어떨 때는 집보다 무대, 방송국 스튜디오가 편해요. 일을 그만둔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어요. 처음에는 눈이 나빠지면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는데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대본을 보지 못하면 들을 수 있고 드라마든 연극이든 리허설을 통해 미리 인지하면 시각으로 못 봐도 기억력으로 알 수 있거든요. 이런저런 방법을 찾았더니 가능하더라고요.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다 끝났구나 생각했죠. 배우로서 연출가, 기획자로서 조기은퇴를 해야 하나 했는데 그러기엔 하고 싶은 게 있고 좋아하는 일들이 있어서 생각을 바꿨죠. 방법을 하나씩 알 때마다 재밌더라고요.
그는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안 하고 자포자기하는 게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영화를 좋아하는데 자막은 도저히 볼 수 없어 넷플릭스를 찾아가기도 했죠. 자막을 한국어로 읽어줄 방법이 없냐고 했더니 본사에 확인해보겠다고 했고 넷플릭스 본사에서 이메일이 왔어요 아이폰에서 보이스 오버라는 기능을 쓰면 한국어로 자막을 읽어준대요. 외국 영화를 다 볼 수 있게 됐어요. 완전히 실명한 게 아니라 형체는 보이니까 나머지는 방법을 찾으면 가능하다고 봐요.”
사진= 고아라 기자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