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쇼트트랙 간판 스타 박지원이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엑스포츠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앞두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역삼동, 고아라 기자
(엑스포츠뉴스 역삼동, 최원영 기자) 모두의 따듯한 마음이 박지원(28·서울시청)을 일으켰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 에이스 박지원은 이번 시즌 유난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대표팀 동료 황대헌(강원도청)과의 '팀킬(Team kill) 논란' 때문이다. 불운에 엮여 수차례 넘어진 박지원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엑스포츠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박지원은 "모든 분들이 도와주셔서 세계선수권을 잊고 국내 선발전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열린 2023-2024 국제빙상연맹(ISU) 월드컵 1차 대회 1000m 2차 레이스 결승서 악연이 시작됐다. 황대헌이 앞서 달리던 박지원을 뒤에서 밀치는 심한 반칙을 저질렀다. 당시 황대헌은 단순 실격이 아닌 '옐로카드(YC)'를 부여받고 모든 포인트를 몰수당했다.
지난 3월 16일 펼쳐진 2024 ISU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1500m 결승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결승선을 세 바퀴 남긴 곡선 주로에서 황대헌이 무리하게 인코스를 파고들어 박지원을 몸으로 밀어냈다. 균형을 잃은 박지원은 최하위로 처졌다. 황대헌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페널티를 받아 메달을 손에 넣지 못했다.
이튿날인 17일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1000m 결승서도 박지원은 황대헌의 반칙으로 넘어졌다. 황대헌에 이어 2위로 달리던 박지원은 세 번째 곡선 주로에서 인코스를 공략했다. 선두 자리를 내준 황대헌은 대뜸 손을 이용해 박지원을 밀쳤다. 박지원은 넘어지며 대열에서 이탈했고 경기를 포기했다. 이번에도 심판은 황대헌에게 페널티를 부여했다.
결국 박지원은 세계선수권서 남자 계주 은메달 1개에 그쳤다. 2024-2025시즌 국가대표 자동 선발 기회를 놓쳤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규정에 따르면 차기 시즌 국가대표는 세계선수권 국내 남녀 선수 중 종합 순위 각 1명이 자동 선발되는데, 해당 선수는 개인전 1개 이상의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내야 한다. 2022-2023시즌, 2023-2024시즌 ISU 월드컵 시리즈서 2년 연속 세계랭킹 1위로 크리스털 글로브를 품었던 박지원은 억울함과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 간판 스타 박지원이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엑스포츠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앞두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역삼동, 고아라 기자
벼랑 끝에서 국내 선발전을 준비했다. 차기 시즌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하면 선수 생활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었다. 아직 군대에 다녀오지 않아 태극마크를 달지 못할 경우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수 없으며, 병역 의무로 인해 2026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동계올림픽 출전도 불투명해지는 상황이었다.
심리적으로 흔들릴 무렵 소속팀 서울시청 윤재명 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박지원은 "감독님께서 세계선수권 끝나자마자 내게 전화해 아무렇지 않게 '빨리 와서 국내 선발전 준비하자'고 하셨다. 거기서 모든 게 깔끔하게 정리됐다. 빠르게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됐다"고 돌아봤다.
이어 "세계선수권에서 실패 아닌 실패를 했다. 감사하게도 주위에서 세계선수권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분은 한 분도 없었다. 다들 선발전 준비 잘하자고 말씀해 주셨다"며 "팬분들의 메시지도 일일이 다 확인하진 못했지만, 혹시나 내가 너무 슬퍼하거나 힘들어하진 않을까 많이 걱정해 주셨다"고 전했다.
박지원은 "주위의 도움 덕에 자연스럽게 세계선수권은 뒤로 하고 선발전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은 어떤 경기보다 어렵다"며 "그걸 이겨내지 못하면 하얼빈 아시안게임에 나간다고 한들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선발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고 힘줘 말했다.
국내 선발전을 멋지게 끝마쳤다. 사실 여기서도 고비가 있었다. 1차 선발전 남자 500m 준결승 2조에서 다시 황대헌과 만났다. 첫 바퀴 세 번째 곡선 주로에서 황대헌은 인코스를 비집고 들어가 박지원을 추월했고, 이 과정에서 박지원이 휘청이며 뒤로 밀려났다. 펜스에 부딪힌 박지원은 일어나 레이스를 재개했지만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심판은 황대헌에게 페널티를 부여하지 않았고 박지원은 조 최하위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왼쪽부터 한국 남자 쇼트트랙 박지원과 황대헌. 경기 중 충돌이 반복돼 논란이 일었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을 마치고 대화로 잘 풀었다. 넥스트크리에이티브 제공
대신 박지원은 1차 선발전 남자 1000m 1위, 1500m 2위, 2차 선발전 1500m 1위로 주 종목에서 실력을 뽐냈다. 랭킹 포인트 총점 92점으로 남자부 종합 1위를 거머쥐었다. 황대헌은 종합 순위 8위 안에 들지 못해 태극마크를 놓쳤다. 쇼트트랙 차기 시즌 국가대표는 1, 2차 선발전 랭킹 포인트를 합산해 최종 순위를 결정한다. 1~3위가 차기 시즌 국제대회 개인전 우선 출전 자격을 얻고, 4~5위는 단체전 우선 출전 자격을 획득한다. 6~8위는 국가대표 후보가 된다.
박지원과 황대헌은 선발전을 모두 마친 뒤 지난달 22일 대화를 나눴다. 당시 상황에 관해 물었다. 박지원은 "황대헌 선수가 먼저 사과하고 싶다고 내게 연락을 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만나게 됐다"며 "내게 진심으로 사과를 전했다. 나 역시 안 받을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 쇼트트랙의 방향에 관해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를 보며 운동하는 후배 선수들이 무척 많다. 그런 점을 생각하며 더 잘하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덧붙였다.
박지원은 "많은 팬분들의 응원과 지지가 엄청난 힘이 됐다. 심리적으로 무너지거나 지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덕분에 선발전이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며 "항상 그 마음을 잊지 않고 간직하겠다.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유의 긍정 마인드로 다시 무장했다. 박지원은 "'무조건 된다'는 생각을 최대한 많이 한다. 지금 잘하고 있더라도 더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잘했고, 앞으로도 분명 잘할 거야'라는 마음가짐을 유지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 간판 스타 박지원이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엑스포츠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앞두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역삼동, 고아라 기자
사진=역삼동, 고아라 기자 / 넥스트크리에이티브
최원영 기자 yeo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