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나요? 활력을 불어넣어 줄 문화생활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또 혼자 보러 가기 좋은 공연을 추천합니다. 엑스포츠뉴스의 공연 에필로그를 담은 코너 [엑필로그]를 통해 뮤지컬·연극을 소개, 리뷰하고 배우의 연기를 돌아봅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업그레이드된 무대 영상을 본 헤드윅(조정석 분)이 말한다. “요즘 AI 기술이 발달해 사진이 막 움직여요. 내가 AI 기술을 좀 알거든.”
최근 가장 핫한 AI 커버 유튜버 청계산댕이레코즈를 뽀드윅도 아는 걸까.
거미의 '날 그만 잊어요'를 커버한 뒤로 아이유가 샤라웃을 하면서 청계산댕이레코즈 정체가 조정석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오고 있는데, 조정석이 ‘헤드윅’ 무대에서 의미심장한 멘트를 던진다. 그러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2006년, 2008년, 2011년, 2016년까지 총 4번의 '헤드윅' 무대에 섰던 조정석이 2024 시즌에 돌아왔다. ‘어째 분위기가 영~’이라며 등장한 조정석은 넘치는 에너지로 오프닝부터 흥을 돋운다.
예쁜 미모가 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가발과 짙은 화장, 반짝이는 의상을 입은 트렌스젠더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객석에서는 “예뻐”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뮤지컬 '헤드윅'의 주인공 헤드윅은 성 소수자다. 하지만 어느새 소수자라는 한정된 이들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우리, 나의 이야기로 이끈다.
단언컨대 살면서 아픔이나 고뇌를 한 번도 겪지 않은 이는 없을 터다. 사회와 사람에 대한 분노와 냉소를 지닌, 타인에게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진 못한 헤드윅이 상처를 치유하고 비로소 완전한 자유를 맞을 때 관객은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뮤지컬 ‘헤드윅’이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인기를 끌 수 있는 건 소외당한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불식하는 작품이라서만은 아닐 터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들, 마음에 상처가 있거나 공허한 삶을 살아가는 다수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동독 출신 트랜스젠더이자 록 가수 헤드윅은 동독과 서독의 경계를 갈랐던 베를린 장벽처럼 남성과 여성의 경계에 서 있다. 미처 다 잘려 나가지 못한 1인치의 성기는 그에게 남겨진 숙제와도 같다.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받고 어머니에게도 무관심 속에 길러진 헤드윅은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사랑에도 실패한다. 자유의 상징 미국에 건너오기 위해 성전환수술까지 받지만 잃어버린 반쪽이라고 믿었던 루터에게 버림받는다.
이후 토미라는 소년과 사랑에 빠지지만 토미 역시 그를 배신한다. 이후 투어 중 만난 드랙퀸 이츠학과 록밴드 앵그리인치 밴드의 멤버로 활동한다.
헤드윅의 인생 여정이 록 음악과 함께 펼쳐진다. '오리진 오브 러브'(Origin of Love), '위그 인 어 박스'(Wig In A Box), '앵그리 인치(Angry Inch)', '위키드 리틀 타운(Wicked Little Town)', '티어 미 다운(Tear Me Down)', ‘더 롱 그리프트’(The Long Grift), ‘미드나잇 라디오(Midnight Radio)' 등 헤드윅의 다양한 감정을 담은 넘버들은 관객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헤드윅’은 배우의 재량이 돋보이는 뮤지컬이다. 관객의 반응에 실시간으로 리액션하고 배우의 특성에 맞는 대사를 듣는 재미가 있다. 같은 작품을 봐도 캐스트 별로 달라 매력이 있다.
조정석은 능청스럽고 잔망스러운 연기와 넘버 소화력을 자랑한다. 욕설도 거침없이 내뱉고 1인 다역도 실감나게 연기한다. 흥 속에서도 헤드윅의 슬픔과 증오, 아픔, 외로움이 녹아있다.
에너지를 쏟아낸 조정석 헤드윅은 말미 상처를 치유하고 이츠학의 본연의 모습을 존중해준다. 자신도 가발과 가짜 가슴을 벗고 자유의 세상으로 향한다. 맨몸의 자신을 마주하며 밝은 빛 속으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여운을 남긴다.
사진= 쇼노트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