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조혜진 기자)
(인터뷰②에 이어) '피라미드 게임' 최수이 작가가 원작과 달라진 부분들, 그 안에 숨어있는 여러 이유를 밝혔다.
지난달 종영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피라미드게임'(극본 최수이, 연출 박소연)은 공개기간 중 티빙 주간 유료가입기여자수 1위 기록, 영국 BBC 등 국내외 호평 속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작품은 비밀투표로 등급이 정해지고, 등급에 따라 차별이 정당화되는 게임이 펼쳐지는 백연여고 2학년 5반을 배경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로 나뉜 학생들이 점차 폭력에 빠져드는 서열 전쟁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게임 저격수' 성수지(김지연 분)와 친구들이 스스로 서열 피라미드를 깨부수는 결말을 맞이하며 울림을 안기기도 했다.
'피라미드 게임'은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만큼, 드라마 문법에 맞는 수정과 각색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고. 최근 엑스포츠뉴스와 만난 최수이 작가는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가져갈 수 없는 부분을 수정하며 적정선을 찾는 작업을 거쳤다고 했다.
작품은 원작대로 흘러가지 않는 부분도 많아 원작 팬들과 드라마 팬들 모두 흥미롭게 주인공 성수지의 시선을 따라갈 수 있었다. 이와 관련, 각색에 얽힌 여러 비화와 결말의 의도, 시즌2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들어봤다.
이하 최수이 작가와의 일문일답.
Q. 원작이 있어 더욱 어렵고 고민되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뒀나.
각색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원작에서) 뭘 취하고, 뭘 바꿀 것인가를 가장 먼저 고민했고, 끝까지 고민이었다.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부분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다. 학교폭력을 다룬 이야기니까 마침표를 찍을 때 어떤 뉘앙스,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를 중점적으로 생각했고, 그 부분이 원작과 달라진 부분이기도 하다.
Q. 주요 인물 모두가 10대 여자 고등학생이다. 원작에서 인물들을 가져오고 만들면서 특히 더 주의를 기울인 부분이 있을까?
표현 수위다. 웹툰과 영상은 분명한 차이가 있지 않나. 관계성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드라마화하면서 선을 잘 지켜야 한다 했다.
관계성에 대한 부분은, 예림(강나언 분)이와 은정(이주연)이의 관계도 웹툰에선 좀 더 친구에 가까웠다면, 드라마에선 선을 타는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너무 사랑 쪽에 치우치지 않게 하고 싶었다.
Q. 좀 더 사랑으로 간 이유가 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림적으로도 그렇고 이야기적으로도 좀 더 세게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선을 타는 묘미를 느끼려면 많은 분량을 할애해야 하는데, (10부작 특성상) 그게 불가능하니까 좀 더 직관적으로 하자 생각한 것도 있다. 이 부분은 민감할 수도 있지만, 실제 여고에서 반에 한두 명쯤은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친구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해서 이렇게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했다.
Q. 원작과 달리 예림이가 함께 다니던 무리를 벗어나 갑자기 수지네 무리에 합류하기도 하던데.
전체적으로 집약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어쩔 수 없이 생긴 것도 있지만, 제가 생각했던 대본 안에서는 (예림이가) 수지가 전학 오기 전 게임에 반대했던 유일한 인물이다. 수지라는 인물이 나타났을 때, '쟤는 게임을 부술 수 있겠다'하면 마음이 그쪽으로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반에서 아무도 하지 않은 '그럼 난 피라미드를 처 부술게'란 말을 하는 수지를 보고 '쟤 한번 믿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거다. 그 시기에 은정이랑 예림이 관계가 반에서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느낌이 확 들면서 수지 쪽으로 붙었을 때 예림이의 이야기가 훨씬 더 풍성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조연들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면 그 부분도 풀 수 있었을 텐데, 드라마화하면서 축약해야 했던 부분이었다.
Q. 각색한 부분에 여러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반 학생이 아닌 편의점 해커 승화(조동인)가 큰 도움을 주는 것에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었는데.
학교 바깥에서도 이 사건에 관심을 가져주는 인물이 있으면 좋겠다 했다. (도움을 주는) 윤나희(안소요) 선생은 학교 안의 어른인 캐릭터니까, 겹치지 않게 남성이고 또래인, 그렇지만 어른인 승화를 넣었다. 수지는 자력으로 움직이는 인물이고 워낙 똘똘하다 보니 다른 도움은 필요치 않았다.
제가 쓰는 안에서의 관심은 승화의 도움이어야 했고, 수지가 할 수 없는 분야인 해킹을 생각했다. 반 친구 중 수지가 꾀어내지 못한 예원이의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는, 캐릭터가 튀어 보이는 걸 상쇄할 수 있는 부분은 그거였다. 승화의 대본 지문에 '무심히' 이런 게 많았다(웃음). 주요 인물로 떠오르지 않는 선에서 저 친구의 매력을 보여주자 했다.
Q. 성수지의 엄마가 아빠가 된 부분은 어떤 이유?
쓰는 주체가 저이다 보니까, 개인적인 경험이나 제가 갖고 있는 부분을 가져가서 쓸 수밖에 없다. 제 기준에서 엄마라는 단어조차 울림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빠랑 딸의 관계는 친밀한 관계도 많지만, 사춘기를 겪음으로써 어느 정도 벽이 생기지 않나. 내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걸, 심지어 군인인 아빠한테 말하면 낙오자처럼 보일 수 있겠구나라는 수지의 생각을 좀 더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바꾼 게 크다.
Q. 원작 속 송재형(오세은)은 걸그룹에 빠져 있는 캐릭터였으나 드라마에선 몬스타엑스의 팬이 됐다. 또, 불법촬영을 하지도 않는 설정이었는데 왜 바뀌게 되었을까.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친구로 설정이 돼있었고, 소품이나 아이돌 영상을 보는 장면들이 어쩔 수 없이 들어가게 됐는데, 실제 아이돌이 보이면 훨씬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걸 수지, 하린(장다아)이 소속사에서 양해를 해주셨다.
불법촬영 부분은 수지가 D등급을 꼬시는 방법이 약점 잡기였기 때문이다. 자은(류다인)이는 그걸 사용하지 않고 재형이를 데려오긴 했지만. 저도 걸려서 재형이 대사에 '다시는 안 할 거야. 잘못인 거 알아'하는 부분을 넣게 됐다.
Q. 백하린과 명자은의 과거 서사도 달라졌다. 오히려 둘의 서사가 축소됐다는 반응도 있는데.
학교 폭력을 다룬 이야기에서 그들의 서사도 궤를 같이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하린이가 이해되지 않았으면 했다. 나름의 계기와 사연은 있었지만 '넌 가해를 선택한 거잖아'를 쾅 박아주고 끝냈으면 했다. 굳이 '그 부분을 반드시 이렇게 바꾸고 싶어'라기보다는, 원작에선 하린이가 좀 더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어서 그런 의도였다.
Q. '죄수의 딜레마'를 활용한 수학여행 서바이벌 장면은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표지애(김세희)가 다시 수지네 무리로 합류하게 되는 이 장면이 원작에선 잔반처리를 하는 에피소드였는데, 어떻게 서바이벌로 탄생하게 됐을까.
시놉시스 단계부터 정해놓은 이야기였다. 선후를 따지자면 수학여행이 먼저였다. 일반 학생들과 떨어져 별관에 고립돼 있던 친구들이 야외에 나갔을 때, 게임으로 인해서 얼마나 이 친구들이 불행하고 기괴하고 고립돼 보이는지 표현하고 싶어서 수학여행을 넣었다. 가서 할 수 있는 활동으로 서바이벌을 생각했고, 마침 지애가 친구들에게 돌아와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총을 가지고 극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해서 쓰게 된 거다.
Q. 다른 반 친구가 와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도 비슷한 맥락일까?
교실을 벗어났을 때 그게 훨씬 더 잘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2학년 5반 아이들이 배치된 상태에서 다른 반 친구들 포즈 잡고 사진 찍고 이런 걸 보면서 '부럽다'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수지는 친구들이 생겼으니까, 생일파티 하는 장면에서도 이들은 이미 친구가 돼있었고, 나머지 5반 친구들은 조금씩 불안에 떨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때도 (반 친구들이) 생일파티 보면서 '부럽다', '나도 껴볼까?', '박수를 한번 쳐볼까' 생각했던 부분들이 지문에는 있었다.
Q. 유독 호평을 많이 받은 서바이벌신은 어떻게 봤는지.
그때만큼은 배우로 보인 게 아니라 그 역할로 보였다. 그 모든 대사나 지문을 몸에 입은 것처럼 그대로 하셨다. 진짜처럼 보였다. 저건 수지고, 자은이고, 재형이고, 지애네 생각했다. 후기로 듣기로는 (배우들의) 감정이 많이 올라온 상태라고 했는데, 어떻게 오차 없이 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대본보다 영상이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Q. 결말에 있어 호불호가 갈린 부분도 있다. 가해자이긴 하지만 백하린은 파양 당하고, 김다연(황현정)은 여전히 가정폭력을 당하는 채로 끝이 난다. 쌍둥이가 전학 와 게임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보여 시즌2 암시냐는 의견도 있는데, 결말의 의도 궁금하다.
원작을 검토하고 가장 먼저 생각난 문장이 '폭력은 어디에서 오는가'였다. 마지막 부분에서도 다연이는 여전히 물리적인 폭력을 당하고, 수지네는 무관심이라는 폭력이 있었고, 도아네는 그게 통제로 나타났고, 하린이는 정서적인 학대가 있었다. 해갈되지 않은 상태로 끝을 맺었는데 의도적인 게 컸다.
이런 폭력들이 여전히 만연해 있다. 해결이 되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이런 폭력은 언제든 다시 교실로 옮을 수 있다를 쌍둥이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표현이 안 된 것 같다. 아쉬운 부분이다.
Q. '피라미드 게임'이 종료되고, 백연여고는 아직 다 끝내지 못함이라는 뜻을 가진 미료(未了) 여자고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된다. 팬들은 새 시즌을 암시한 것이냐는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는데, 시즌2에 대한 생각은?
새 시즌을 생각하신 분들이 많더라. 그것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아닌데 (위에서 언급한) 그런 정도의 생각을 갖고 했다. 표현이 안 됐다면 스스로 안타까운 부분이다. 시즌2 부분은 저 혼자 단언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사실 이야기를 나눠본 부분이 없다. 지금으로선 개인적으로는 유념을 하고 있지 않다.
사진=티빙
조혜진 기자 jinhyej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