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0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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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의 200S에 숨어있는 세 가지 비밀

기사입력 2011.08.13 09:03 / 기사수정 2011.08.13 09:03

김준영 기자

[엑스포츠뉴스=김준영 기자] 12일 대구 KIA전서 나온 '끝판 대장' 삼성 오승환(29)의 개인 통산 최연소(29세 28일) 및 최소경기(334경기) 200세이브 돌파는 그냥 나온 대기록이 아니다. 13일 현재 통산 세이브 기록 1,2위를 달리고 있는 김용수(227세이브) 구대성(214세이브)이 200세이브를 달성했을 때의 시기 및 나이가 각각 1999년(38세), 2007년(37세)였다는걸 감안하면 오승환의 세이브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다. 그런 오승환의 200세이브 속 숨겨둔 이면에는 깜짝 놀랄 비밀이 세 가지 있다.

▲ 단국대 시절 첫 번째 시련

잘 알려졌다시피 오승환은 두 차례나 팔꿈치 수술을 받은 경력이 있다. 첫 팔꿈치 수술은 단국대 1학년 겨울이었던 2001년 말이었다. 흔히 말하는 토미 존 서저리였다. 수술 후 무려 2년간 재활에 매달렸다. 4학년이었던 2004년 본격적으로 실전에 나서며 프로 입단을 타진했으나 삼성에 앞서 오승환을 1차 지명할 수 있었던 LG와 두산은 당시 박병호(넥센) 김명제(임의탈퇴)를 택했고 2차 지명 때도 그에 앞서 조정훈(공익근무) 서동환(두산) 정의윤(LG) 양훈(한화)이 지명됐다. 오승환은 당시 부상 재발의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각 구단 스카우트들에게 외면받았다. 당시 1차 지명은 고사하고 2차 지명에서도 차가운 시선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그의 가능성을 주목했다. 당시 스카우트 팀이 직접 오승환의 투구를 본 선동열 수석코치(현 운영위원)와 뜻을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삼성이 2003년 종합 4위였기 때문에 2차 전체 5순위로 오승환을 지명할 수 있었다. 그렇게 2005년 당시 마무리 권오준에 앞서서 중간 계투로 나선 오승환이 연일 무실점 행진을 펼치자 당시 선동열 감독은 둘의 보직을 맞바꿨다. 그리고 오승환은 2008년까지 승승장구했다.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재활에 임했고, 철저한 자기 관리 속에 국내 대표 마무리 투수로 거듭난 것이었다. 첫 번째 수술, 그리고 첫 번째 인내 끝 일궈낸 결과였다. 

▲ 2009~2010년, 두 번째 시련

2006년 47세이브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는 등 숱한 화제를 낳으며 승승장구하던 오승환이 두 번째 시련을 맞이한 시기는 2009년이었다. 2005~2006년 삼성의 한국시리즈 2연패와 각종 국제대회에 불려다니느라 무리를 했던 오승환의 공은 이미 2008년 무렵 서서히 타자들에게 공략을 당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물론 오승환은 2008년에도 39세이브를 수확했다. 

그러나 2009시즌 초반 어깨 통증을 호소해 재활군에 다녀왔고, 7월 16일 대구 두산전 투구 도중 어깨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어 시즌 아웃됐다. 2010년 야심 차게 돌아왔으나 개막전부터 블론세이브를 기록한 데 이어 6월 1일 대전 한화전 투구 도중 이번에는 오른쪽 허벅지 부상을 입어 자진 강판했다. 여기에 6월 하순 1군에 복귀하자마자 이번에는 팔꿈치에 통증을 호소해 급기야 7월 12일 수술대에 올랐다.

당시 수술은 팔꿈치 인대 주위에 퍼져 있는 뼛조각을 제거하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었기에 SK와의 한국시리즈 때 전격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차전 때 결정적인 상황서 적시타를 맞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2009~2010년 그가 쌓은 세이브는 겨우 23개였고 사람들은 그의 전성기가 끝났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오승환은 또 다시 오뚝이 기질을 발휘했고 올 시즌 끝판대장이라는 새로운 별명과 함께 최고 마무리 지위를 되찾았다. 스스로 숱한 위기를 넘어서고 당당히 최연소 및 최소경기 200세이브 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 그리고

오승환이 지금의 성과를 거둔 건 1차적으로 본인의 엄청난 노력과 성실성이 어울린 결과다. 수술 후 재활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오승환은 한번도 아니라 무려 두 차례나 자신과의 싸움서 이겨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오늘날 오승환이 만들어졌다고 보면 곤란하다. 숨은 조력자도 있다. 주인공은 강문길 전 단국대 감독, 삼성 선동열 운영위원과 류중일 감독이다. 강 전 감독은 한서고 1학년 시절부터 팔꿈치가 아파 경기 전학 후 외야수로 전업했으나 끝내 프로에 직행하지 못한 오승환을 단국대로 따뜻이 맞이했다. 첫 번째 토미존 서저리 이후 재활 과정 속에서도 강 전 감독은 오승환을 기다려줬다.

오승환은 프로에서도 사령탑을 잘 만났다. 일각에서는 선 위원이 오승환을 무리하게 활용해 두 번째 팔꿈치 수술을 받게 됐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오승환은 2005~2006년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을 오가며 분명 많이 던졌다. 하지만, 당시 2년 내내 1위를 달린 팀의 사령탑이 그렇게 좋은 구위의 마무리 투수를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것이다. 그리고 선 위원은 오승환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오승환은 데뷔 후 3일 이상 연투한 경험이 거의 없으며, 1⅓이닝 이상도 잘 던지지 않았다. 또한, 오승환은 2009년 어깨 통증으로 이탈한 뒤 그해 8~9월 충분히 복귀할 수 있었다. 당시 삼성은 롯데, 히어로즈(넥센)와 치열한 4위 다툼 중이었다. 그러나 선 위원은 끝내 오승환을 아꼈고, 2010년을 내다봤다. 2010년에도 다시 시즌 아웃됐고 수술을 받았지만 시즌 막판 SK와의 선두 다툼 속에서도 끝내 그를 아꼈다.

사실 작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등록은 승부수라기보다 일종의 깜짝카드였을 뿐이었다. 그러한 영향에 따라 류 감독도 오승환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아낀다. 지난주 4일 연투했으나 주말 경기서 세이브를 올릴 기회가 있었음에도 끝내 오승환을 아꼈다. 오늘날 오승환이 있게 한 강 전 감독과 두 전, 현직 삼성 사령탑의 배려 및 관리도 오늘날 오승환의 대기록 달성에 결코 무시하지 못할 역할을 했다.  

[사진=오승환 ⓒ 엑스포츠뉴스 DB]



김준영 기자 kjy@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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