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리드오프 겸 주전 중견수 이정후가 시범경기에서 타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엑스포츠뉴스 최원영 기자) 천재가 노력까지 하면 더 무섭다.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그렇다.
이정후는 1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솔트리버 필즈 앳 토킹스틱에서 열린 2024 미국 메이저리그(MLB) 시범경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원정경기에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전해 3타수 2안타(1홈런) 1타점 1득점을 뽐냈다.
놀라운 적응력이다. 이정후는 올해 빅리그에 입성했다. 지난달 28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서 시범경기 첫 출전에 나섰다. 3타수 1안타 1득점으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이어 이날 두 번째 경기만에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멀티 히트를 자랑했다. 벌써 메이저리그에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단순히 재능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결과는 아니다. 이정후의 인터뷰에 답이 있다. 이정후는 애리조나전을 마친 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등 미국 현지 매체들과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구속도 빠르지만, 대부분 키가 크고 (손에서 공을 놓는) 릴리스 포인트가 다 높다"며 "그래서 공이 더 빠르게 보인다. 여러 변화구도 다 다르게 움직인다. 겨우내 이에 대비한 훈련을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기쁘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정직하게 '노력'했다는 의미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매체 '머큐리 뉴스'에 따르면 이정후는 지난겨울 피칭머신의 릴리스 포인트를 조정해 집중적으로 타격 훈련에 임했다. 타격에만 시간을 할애한 것은 아니다. 지난달 초 샌프란시스코의 스프링 트레이닝에 합류한 뒤 끊임없이 투수들의 공을 지켜봤다. 눈에 공이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리드오프 겸 주전 중견수 이정후가 시범경기에서 주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정후답다. KBO리그에서도 그랬다. 2017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의 1차 지명을 받고 데뷔한 이정후는 그해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매년 3할을 훌쩍 넘는 타율을 유지했음에도 안주하지 않았다. 더 잘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스스로 채찍질했다. 결국 2022년 타율(0.349), 안타(193개), 타점(113개), 장타율(0.575), 출루율(0.421) 등 타격 부문 5관왕에 오르며 영예의 정규시즌 MVP를 차지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연속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지난해까지 이정후는 KBO리그에서 7시즌을 소화하며 통산 884경기에 출전해 타율 0.340, 1181안타, 65홈런, 515타점, 장타율 0.491, 출루율 0.407 등을 뽐냈다. 역대 KBO리그 전체 타자(3000타석 이상 기준)를 통틀어 타율 1위를 기록 중이다. KBO리그를 휩쓸었지만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며 다시 한번 초심을 되새겼다. 언제나 그랬듯 부단한 노력을 쏟았다.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정후 영입 후 꾸준히 신뢰를 보이며 힘을 실어줬던 멜빈 감독은 이정후의 응답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애리조나전 종료 후 "이정후는 속구, 변화구 등 모든 공을 잘 치고 있다. 좋은 출발을 한 것 같지 않나?"라며 취재진에게 되물었다. 애정이 묻어났다.
이정후는 상대팀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애리조나 선발투수였던 라인 넬슨은 '경기 전 (처음 만나는) 이정후의 어떤 점을 분석했나'라는 질문에 "따로 분석하지는 못했으나 지금은 그가 좋은 타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답했다.
미국 언론들도 호평 일색이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이날 홈런은 이정후가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정후의 타격 실력이 기대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암시한 경기이기도 했다"고 치켜세웠다. '머큐리 뉴스'는 "이정후는 첫 시범경기에 이어 두 번째 경기에서도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쳤다"고 조명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이정후의 홈런을 소개하면서 샌프란시스코의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미국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리드오프 겸 주전 중견수 이정후가 시범경기에서 수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날 이정후는 1회초 선두타자로 첫 타석을 맞이했다. 상대 선발 넬슨을 상대로 2루타를 쳐냈다. 시범경기 2게임 연속 안타를 신고했다.
이정후는 초구, 시속 152km의 패스트볼을 흘려보냈다. 이어 넬슨의 2구째 시속 143km의 커터를 공략했으나 파울이 됐다. 볼카운트 0-2에 몰린 불리한 상황에서 반격에 성공했다. 시속 131km의 커브를 받아쳐 우익수 키를 넘기는 2루타로 연결했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크게 벗어난 몸쪽 낮은 코스의 공이었지만 특유의 테크닉으로 안타를 만들어냈다.
두 번째 타석은 3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이었다. 넬슨의 초구, 시속 151km의 패스트볼에 방망이를 돌렸고 파울로 이어졌다. 이후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난 체인지업 2개를 침착하게 골라내며 볼카운트 2-1을 이뤘다. 이후 넬슨의 4구째, 스트라이크존 한복판으로 몰린 시속 152km의 패스트볼을 그대로 잡아당겼다. 우중간 펜스를 넘기며 아치를 그렸다. 솔로포로 기세를 높였다.
'MLB닷컴'의 스탯캐스트에 따르면 이정후의 홈런 타구 속도는 시속 176.5km, 발사 각도는 18도, 비거리는 127.4m였다. 발사각은 낮은 편이었지만 빨랫줄처럼 날아가는 타구로 배트에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하게 했다.
이정후를 향한 기대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리드오프 겸 주전 중견수 이정후가 시범경기를 앞두고 더그아웃에 앉아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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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 기자 yeo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