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유준상 기자) FA(자유계약)과 트레이드로 변화를 꾀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계속 전력 보강을 이어나가려고 한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과 손을 잡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을 비롯한 미국 현지 언론은 13일(이하 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가 힉스와 4년 총액 4400만 달러(약 579억원) 규모의 계약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계약에는 투구 이닝에 따른 연간 200만 달러의 퍼포먼스 보너스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힉스는 빅리그 데뷔 첫 해였던 2018년 73경기 77⅔이닝 3승 4패 평균자책점 3.59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고, 이듬해에는 29경기 28⅔이닝 2승 2패 3홀드 14세이브 평균자책점 3.14로 데뷔 이후 첫 두 자릿수 세이브를 올렸다. 다만 그해 6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존 수술)로 인해 시즌을 일찌감치 마감했다.
2021시즌 마운드로 돌아온 힉스는 그해 10경기 10이닝 평균자책점 5.40의 성적을 남겼고, 이듬해에는 35경기 61⅓이닝 3승 6패 8홀드 평균자책점 4.84로 4년 만에 60이닝을 돌파했다. 지난해 성적은 65경기 65⅔이닝 3승 9패 13홀드 12세이브 평균자책점 3.29.
특히 힉스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공을 던지는 투수 중 한 명으로, 시속 105마일(약 169km)의 공을 두 차례나 던진 바 있다. '내구성'에만 문제가 없다면 샌프란시스코로선 힉스를 불펜에서 쏠쏠하게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힉스 영입에 앞서 샌프란시스코가 움직임을 보였던 건 총 두 차례였다. 첫 번째는 '바람의 손자' 이정후를 품은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외야 및 타선 보강을 위해 지난해 초부터 줄곧 이정후에게 관심을 보였고, 피트 푸틸라 단장은 직접 한국으로 넘어와 이정후를 면밀하게 관찰하기도 했다. 그 어느 팀보다도 이정후에 '진심'이었다.
계약 규모만 봐도 구단의 기대치가 높다는 것이 그대로 나타난다. 6년 총액 1억 1300만 달러. 빅리그에 데뷔하지 않은 선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예상을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이 시작된 이후 미국에서 오퍼를 받은 이정후도 금액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면서 기뻐했을 정도로 샌프란시스코의 제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만큼 책임감이 훨씬 커졌다. 벌써부터 팀의 주축 선수로 주목받고 있는 이정후는 "구단에서 많이 챙겨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 내게 이렇게 투자해주신 만큼 거기에 걸맞는 플레이를 보여드려야 할 것 같다"며 "단장님이 한국에 와주시고 협상하는 데 있어서도 가장 나를 원하는 기분이 들었다. 자세한 건 말씀드리지 못해도 이렇게 역사가 깊은 팀에서 뛰게 돼 너무 영광이라고 생각해서 빨리 결정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정후의 입단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파르한 자이디 샌프란시스코 사장은 "이정후가 (2024시즌) 개막전부터 매일 중견수로 뛰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라며 "우리 팀은 공격적인 부분에서 콘택트 능력을 갖춘 선수가 필요했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추구하는 야구이기도 하다. 비시즌 동안 우리가 가장 영입하고 싶었던 선수가 이정후였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지난달 22일 미국의 한 팟캐스트에 출연한 멜빈 감독은 "이정후를 영입한 뒤 몇 개의 라인업을 작성했는데, 어떤 경우에도 이정후는 1번타자였다. 이정후에게도 편안한 타순이고 이정후가 (KBO리그에서도) 쳐봤던 자리"라며 이정후를 리드오프로 기용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미국 현지 언론은 당장 이정후가 리드오프 겸 중견수를 맡아도 이상할 게 없다고 내다보고 있다. MLB.com은 "이 25세의 외야수는 KBO 선수 생활을 하며 통산 타율 0.340, 출루율 0.407, 장타율 0.491의 폭발적인 슬래시 라인을 올렸는데, 어떤 시즌에도 0.318 이하의 타율을 기록한 적이 없다"며 이정후의 리드오프 배치를 예상했다.
이정후를 품은 뒤 잠잠했던 샌프란시스코가 또 한 번 움직인 건 지난 6일이었다.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트레이드를 단행하면서 마운드를 보강했다. 외야수 미치 해니거와 우완투수 앤서니 데스클라파니가 시애틀로 향하고, 레이가 샌프란시스코로 이적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는 연봉보조를 위해 시애틀에 300만원을 지불하기로 했다.
2014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소속으로 빅리그에 데뷔한 레이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토론토 블루제이스를 거쳐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빅리그 통산 성적은 226경기 1228이닝 74승 71패 평균자책점 3.96.
레이는 애리조나 시절이었던 2015년부터 선발투수로 활약하기 시작했고, 2017년에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수(15승)를 올렸다. 2019년에도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12승을 수확했다.
2020시즌 도중 토론토로 이적한 레이는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과 함께 선발진의 한 축을 맡았다. 특히 2021년 32경기 193⅓이닝 13승 7패 평균자책점 2.84로 호투를 펼치면서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수상자가 됐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5년 총액 1억 1500만 달러에 시애틀과 손을 잡은 레이는 2022년 189이닝 12승 12패 평균자책점 3.71로 제 몫을 다했으나 지난해 단 1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했다. 사유는 팔꿈치 부상. 레이는 지난해 5월 왼쪽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으면서 일찌감치 시즌을 마감했다.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선수의 재활 기간이 일반적으로 1년 이상임을 감안할 때 아무리 빨라야 레이의 복귀 시점은 6월 전후가 될 전망이다. 다시 말해서 샌프란시스코가 레이를 시즌 개막 이후 두 달 넘게 활용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위험 부담을 떠안았다는 것이다.
엉덩이 수술을 받은 알렉스 콥도 시즌 초반 로테이션에 합류할 수 없다. 결국 레이와 콥 없이 개막전을 맞이해야 하는 샌프란시스코로선 추가적인 선발진 보강을 원할 경우 또 한 번 지갑을 열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류현진의 이름이 언급됐다. 이적시장 소식을 다루는 매체인 'MLB트레이드루머스'(MLBTR)는 "샌프란시스코가 선발진의 불안정성을 고려하면, 로테이션를 보강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콥과 레이가 회복 중이라 시즌이 진행되면서 전력에 가세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샌프란시스코는 투수진과 라인업 전반에 걸쳐 물음표를 갖고 오프시즌에 돌입했다. 그중에서 많은 부분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증된 선발투수를 추가로 영입하는 건 예산 내에서 여전히 가능하다. 마이크 클레빈저나 마이클 로렌젠, 류현진 같은 '중간 옵션'이나 블레이크 스넬, 조던 몽고메리와 같은 '톱 티어' 선발투수도 남았다"고 덧붙였다. FA 시장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게 매체의 분석이었다.
류현진은 '검증된' 선발투수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2013년 빅리그 데뷔 이후 지난해까지 통산 186경기(선발 185경기)에 등판해 1055⅓이닝 78승 48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했고, 2022년 6월 수술 이후 1년 2개월 만에 복귀전을 치른 지난 시즌에는 11경기 52이닝 3승 3패 평균자책점 3.46으로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특히 류현진과 함께 언급되던 투수들이 하나둘 행선지를 찾았고, 류현진의 계약에 '톱 티어' 투수들에 비해 많은 금액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많은 팀들이 관심을 가졌다. 샌프란시스코는 물론이고 캔자스시티 로열스, 피츠버그 파이리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이 영입 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류현진의 상황에 큰 변화가 없었다. 포스팅으로 빅리그의 문을 두드린 일본인 투수 이마나가 쇼타는 시카고 컵스와 4년 총액 53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고, 시장에 나온 블레이크 스넬과 조던 몽고메리는 FA 계약을 기다리는 중이다.
류현진은 지난해 말 거취와 관련한 질문을 받았을 당시 "충분한 이야기가 있다면 메이저리그에 잔류하고 싶은 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또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르는 것이다. 말씀드린 것처럼 시간이 좀 지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얘기한 바 있다. 빅리그 잔류를 원하면서도 구단들의 제안을 들어본 뒤 판단하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현재까지의 흐름만 놓고 보면 류현진에게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류현진과 자주 연결됐던 팀 중 하나였던 뉴욕 메츠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데이비드 스턴스 뉴욕 메츠 사장은 12일 MLB.com과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선발투수 보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고, 선발투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계속 지켜볼 것"이라면서도 로렌젠이나 류현진 같은 등급이 낮은 투수들의 경우 몸값이 떨어진다면 그들을 눈여겨볼 수도 있다고 전했다. '오버페이'는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힉스에 4400만 달러를 투자한 샌프란시스코가 적은 비용으로 영입에 나선다면 충분히 류현진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 있다. 류현진의 통산 오라클파크 성적은 11경기 66⅓이닝 6승 3패 평균자책점 2.58로 준수한 편이었다. 다저스 시절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타자들을 자주 상대해봤던 점도 류현진에게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류현진이 샌프란시스코로 향할 경우 한국인 선수 이정후와 한솥밥을 먹을 수 있는 만큼 심리적인 부담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도 있다. 선택지가 몇 개 남지 않은 가운데, 샌프란시스코와 류현진의 만남이 성사될지 주목된다.
사진=엑스포츠뉴스 DB, AFP/연합뉴스, 샌프란시스코 공식 SNS
유준상 기자 junsang98@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