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02.10 19:22 / 기사수정 2007.02.10 19:22
"심판과 선수는 적이 아니라 서로의 일을 다른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일 뿐이다. 그라운드에서는 서로 신뢰해야 한다." 대머리, 툭 튀어나온 눈, 밀어버린 눈썹,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출신의 피에르 루이지 콜리나(47) 전 주심(2005년 8월 은퇴)이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결승전 주심으로 확정되고 난 뒤 내뱉은 말이다. 그의 언행은 전 세계 많은 축구팬의 동의를 얻었다. 언행에 맞는 판정을 내리면서 선수들은 그의 권위에 함부로 도전할 수 없었다. 감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콜리나는 은퇴 후에도 심판 세계의 모범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심판,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프로축구연맹은 2006년 FIFA가 새로 도입한 체력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 지난 7일 서울 목동운동장에서 실전 테스트를 했다. 34명이 참가한 테스트는 단 한 명의 탈락자 없이 무사히 끝났다. 드디어 K-리그 전임심판이 된 것이다. 2005년 K-리그 전임심판으로 1년을 뛰고 다음해 체력 테스트에서 떨어져 이번에 재도전한 이민후(29) 주심은 "많이 부끄러웠죠"라며 "국제심판인데도 체력 테스트에서 떨어진 것은 잊고 싶은 기억입니다"라고 말했다. 프로연맹의 심판 양성이 까다롭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2:8 가르마로 유명한 권종철(46) FIFA 공인 국제심판은 "한 명이라도 떨어져야 뉴스거리가 되는 것 아닙니까?"하며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그는 이내 K-리그 전임심판들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모두가 매일 운동하고 등산과 조깅으로 체력이 다졌기 때문에 이날 혹독한 시험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체력을 바탕으로 K-리그 전임심판들은 시즌 개막 2주 전 1주일간의 이론교육을 받은 뒤 1년을 준비한다. 시즌 중에는 수시교육을 받으며 공부를 거듭하고 선진리그 연수를 다녀오기도 한다. 김용대 프로축구연맹 심판위원장은 "새로 도입한 테스트는 상당히 힘든 것"이라며 "운동을 꾸준히 안 하면 통과하기 힘들다"고 강하고 우수한 심판을 양성하려는 프로연맹의 노력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화를 나누는 뒤로 테스트를 받고 있는 심판들이 헉헉거리며 지친 표정으로 트랙을 돌고 있었다. 고독한 직업,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그러나 준비된 체력과 학습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1년은 너무나 외롭고 고달프다. 경기장에서는 공정성을 위해 철저히 분리돼 고독한 동선으로 움직인다. 좋은 판정을 해도 조연이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하다가도 중요한 경기에서 오심을 하면 관련 팀의 팬과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주연으로 떠오른다. 특히 서포터 문화가 발달하면서 심판에 대한 압박은 이전보다 더욱 강해졌다. 조금이라도 묘한 판정을 내리면 서포터의 야유가 터져 나오고 경기장을 찾은 다른 관중도 같이 동요한다. 2005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K-리그 대상 최우수 주심으로 선정됐던 이영철(39) 주심은 "처음 K-리그에 투입됐던 신인 시절에는 야유를 들으면 감정이 요동쳤다"며 "어떤 상황에서는 깃발을 던지고 관중석으로 올라가고 싶은 충동이 일 때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적응이 돼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는 것의 그의 설명이다. 교사로 재직 중인 몇몇 심판은 수업시간에 제자들로부터 곤혹스러운 질문을 받기도 한다. '왜 그런 판정을 했냐'는 것이 주된 질문이다. 만약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에게 경고나 퇴장이라도 주면 한동안 제자와 조심스럽게 지내야 할 정도. 김용대 위원장은 "심판들은 친구가 거의 없다"며 "대부분 운동을 하다가 심판을 시작했고 각 구단의 코치, 선수들이 친구라 서로 잘 알기 때문에 만날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는 "가족들도 경기장에 와본 적이 없다"며 "오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어 집중력이 흐려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외로운 직업임을 강조한 것이다. 모든 심판들의 꿈, '프로축구 판관'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선수들의 버릇에 대해 지적한다. 심판이 판정하기 전에 먼저 손을 올려 '파울 당했다', 혹은 '이거 오프사이드다'하고 먼저 판단을 한다는 것. 이러한 행동은 1차적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심판을 믿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벤치와 팬들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 유리한 분위기로 끌고 가 심판의 판정을 위축 시키고 싶어 하는 심리도 숨어있다는 것이 축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론 오심이나 보상판정 등은 분명하게 지적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판정은 심판이 내리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심판 판정은 존중받아야 하며 경기 전체를 조율하는 것은 심판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이날 체력테스트를 통과, 전임심판으로 거듭난 새내기 임원택(34) 부심은 "가장 중요한 것을 통과하니 홀가분하다"며 "이제 경기장에서 잘 해내야 할 텐데 떨린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난해까지 내셔널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심판이었지만 이제 K-리거의 꿈을 이룬 것이다. 올 시즌 많은 화제를 뿌리며 개막을 한 달여 앞둔 K-리그. 선수들은 동계 훈련을 통해 조직력을 다지고 있고 심판들도 체력을 만들며 경기가 시작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과연 새내기 임 부심에게 올 시즌 K-리그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은 어떠한 인상을 남겨줄지 궁금하다. 그 인상이 신뢰로 뭉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모든 심판들의 꿈은 '프로축구 판관'이 되어 경기에 나서는 것이 아닐까요?" 임 부심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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