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지수 기자) "신혼 여행을 다녀와서 바로 계약했다. LG에 남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LG 트윈스 좌완 함덕주는 지난달 24일 구단과 계약기간 4년, 계약금 6억원, 연봉 14억원, 인센티브 18억원 등 총액 38억원에 생애 첫 FA 계약을 체결했다. 2013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며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 뒤 10년 만에 모든 야구 선수들이 꿈꾸는 FA 대박을 터뜨리는 데 성공했다.
함덕주는 2023 시즌 LG의 통합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57경기 55⅔이닝 4승 무패 4세이브 16홀드 평균자책점 1.62의 특급 피칭을 선보이며 팀 불펜의 기둥으로 거듭났다.
정규리그 2위 KT 위즈와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도 '빅게임 피처'의 면모를 뽐냈다. 4경기 3⅓이닝 1승 무패 평균자책점 2.70으로 제 몫을 해주면서 LG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데 힘을 보탰다.
특히 LG의 우승이 확정된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1⅓이닝을 2탈삼진 무실점 퍼펙트로 막아낸 장면은 함덕주 개인으로서도 야구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함덕주는 지난 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야구단 신년인사회를 마친 뒤 "지난해는 한국시리즈 5차전 때가 내 컨디션과 구위가 가자 좋았다"며 "3차전 투구 내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화가 많이 났다. 3차전 부진이 결과적으로 5차전에서 잘 던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돌아봤다.
또 "(염경엽) 감독님이 믿고 맡겨주셨기 때문에 책임감도 느꼈다. (2023 시즌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한 타자 한 타자 세게 던졌는데 결과도 좋았다"고 웃었다.
함덕주가 LG 유니폼을 입고 웃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LG는 2021 시즌 정규리그 개막 직전 잠실 라이벌 두산 베어스와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우타 거포 양석환과 좌완 유망주 남호를 보내고 리그 최정상급 좌완 불펜 요원 함덕주와 우완 유망주 채지선을 데려왔다.
하지만 함덕주는 2021 시즌 LG 유니폼을 입고 부상과 부진, 수술이 겹치면서 16경기 등판에 그쳤다. 21이닝 1승 2패 1홀드 평균자책점 4.29로 LG가 기대했던 것과 거리가 먼 성적을 남겼다. 2022 시즌에도 13경기 12⅔이닝만 던졌고 승패, 세이브, 홀드 없이 평균자책점 2.13으로 LG 마운드 운영에 큰 힘을 보태지 못했다.
반면 양석환은 두산에서 2021 시즌 133경기 타율 0.273(488타수 133안타) 28홈런 96타점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2022 시즌 타율이 0.244(405타수 99안타)로 하락하기는 했지만 107경기에서 20홈런을 쏘아 올리며 특유의 장타 본능을 뽐냈다.
이렇게 LG의 트레이드 잔혹사가 하나 더 추가되는 듯 싶었지만 함덕주는 눈부시게 부활했다. 지난해부터 LG 지휘봉을 잡은 염경엽 감독의 배려 속에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2023 시즌을 준비했고 LG가 원했던 리그 최정상급 셋업맨으로 돌아왔다.
함덕주는 "(두산 시절) 많이 던지기도 했지만 팔꿈치 뼛조각은 신인 때부터 안고 있었다. 일주일 정도 쉬면 통증이 가라 앉아서 (참고) 계속 던졌는데 하필 수술 시기가 LG로 트레이드 된 이후 맞물렸다"며 "내 나름대로 통증이 금방 없어질 거라고 생각한 게 문제였다. 그때(수술을 늦춘 게) 가장 후회된다"고 2021 시즌을 돌아봤다.
또 "2022 시즌을 앞두고 LG에서 첫 스프링캠프를 갔을 때는 수술도 했고 잘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무리했던 부분이 정규리그에서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며 "지난해에는 스스로 불안감을 느낄 정도로 천천히 준비했는데 외려 더 좋았다. 올해도 똑같이 시즌 개막에 맞춰 몸을 만들려고 한다. 아직 공은 안 만지고 재활, 웨이트 트레이닝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FA 계약에서 총액 38억 원 중 보장 금액이 20억 원뿐인 것도 함덕주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인센티브 18억 원 달성 기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부상만 없다면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함덕주는 실제로 한국시리즈를 마친 뒤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곧바로 FA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에이전트로부터 LG의 계약 제시안을 듣고 별다른 고민 없이 LG 잔류를 결정했다.
함덕주는 "LG에 남는 게 제일 좋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했고 LG가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해 주셨다"며 "신혼여행 중에는 계약에 관한 얘기는 전혀 나누지 않았지만 하와이에서 귀국 후 바로 사인했다"고 돌아봤다.
인센티브에 대해서는 "지난해 내 개인 성적이 워낙 좋았는데 그 정도까지 하지 않더라도 받을 수 있는 내용들이다. 내가 건강만 하다면 다 달성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인센티브가 내게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내가 부상 리스크가 계속 있었기 때문에 그걸 없애야 한다. FA 계약을 했다고 안일하게 준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시즌을 치를 것 같아 좋은 마음으로 계약했다"고 강조했다.
몸 상태에 대한 자신감도 내비쳤다. 2021, 2022 시즌 풀타임을 치르지 못한 탓에 내구성이 좋지 못한 선수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함덕주는 "부상에 대한 부분은 우려하지 않는다. 프로야구에 10년 넘게 있었는데 2년 동안 부상으로 쉬었는데도 FA 자격을 채웠다"며 "내가 항상 부상 리스크를 안고 있는 투수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LG의 2024년 목표는 확고하다. 2023년에 이어 2년 연속 통합우승을 겨냥하고 있다. 마무리 고우석의 예상치 못한 메이저리그 진출로 전력 출혈이 발생했지만 LG 불펜은 여전히 10개 구단에서 가장 탄탄함을 갖춘 것으로 평가 받는다.
염경엽 감독은 일단 마무리 투수로 풀타임을 치른 경험이 있는 함덕주 대신 프로 5년차를 맞은 우완 영건 유영찬에게 클로저 역할을 맡길 생각이다.
함덕주는 2018 시즌 두산에서 27세이브를 올리며 팀의 페넌트레이스 1위를 견인한 경험이 있다. 반면 유영찬은 지난해 처음으로 1군 데뷔 시즌을 보냈다. 통산 세이브도 1개에 불과하지만 염경엽 감독의 구상 속 2024 시즌 LG의 마무리는 유영찬이다.
함덕주는 "팀의 마무리 투수는 (염경엽) 감독님께서 결정하시는 부분이다. 내가 마무리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서운한 것도 없고 서운하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다"며 "감독님이 보셨을 때 유영찬이 가장 좋아 보이셔서 마무리로 기용하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되고 열심히 하다 보면 조흔 기회도 올 수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사진=잠실, 엑스포츠뉴스/엑스포츠뉴스 DB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