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인천공항, 유준상 기자) KBO리그와 국제무대에서 검증을 마친 '바람의 손자'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빅리그 진출의 꿈을 이뤘다. 이제는 빅리그 적응을 위해 '빠른 공 적응'이라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
미국 현지 언론은 지난 13일(한국시간) 이정후와 샌프란시스코가 6년 총액 1억 1300만 달러(약 1480억원) 계약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2027시즌 종료 후 옵트 아웃 조항이 포함됐다는 내용도 전해졌다.
이틀 뒤에는 구단의 공식 발표와 함께 세부 내용도 공개됐다. 이정후는 2024년 700만 달러, 2025년 1600만 달러, 2026년과 2027년에 2200만 달러, 2028년과 2029년에 2050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다. 계약금은 500만 달러다. 또한 '자이언츠 커뮤니티 펀드'를 통해 2024년 6만 달러, 2025년 8만 달러, 2026년과 2027년에 11만 달러, 2028년과 2029년에 10만 2500달러를 기부할 예정이라는 자선 기부와 관련한 부분도 계약에 포함됐다.
2017년 1차지명으로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에 입단한 이정후는 7년간 꾸준한 활약을 선보이며 눈도장을 찍었다. 올해까지 매년 3할 이상의 고타율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데뷔 첫 20홈런을 쏘아 올리며 장타력까지 뽐냈다.
KBO리그를 평정한 이정후는 국제대회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2017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을 시작으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12, 2021년 도쿄올림픽, 올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까지 주요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가장 최근 국제대회였던 WBC에서는 대표팀의 부진 속에서도 4경기 14타수 6안타 타율 0.429 5타점으로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자연스럽게 이정후는 스카우트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됐고, 구단들의 관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뜨거워졌다. 여기에 이정후가 지난해 12월 키움 구단에 2023시즌 종료 후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뒤 키움이 올해 1월 선수의 뜻을 존중하기로 결정하면서 그의 빅리그 도전이 본격화됐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포스트시즌이 끝난 지난달 초부터 연일 이정후의 이름이 거론됐다. 11월 7일과 8일 이틀에 거쳐 이정후를 언급했던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이정후는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공 이외에도 타격하기 어려운 공에도 콘택트를 하는 스타일"이라며 "그의 나이와 재능을 고려했을 때 큰 규모의 계약을 맺을 가능성이 높은데, MLB 구단들의 기대치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지난달 이정후의 샌프란시스코행을 예측한 미국 매체 'CBS스포츠'는 "이정후는 재능 있는 수비수로, 자이언츠에 필요한 선수다. 또한 그의 뛰어난 콘택트 능력이 샌프란시스코 홈구장인 오라클파크와 잘 어울릴 것"이라며 "이정후가 6년 총액 9000만 달러(약 1178억원)의 규모와 더불어 4년 차 이후 옵트아웃을 행사할 권리를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정후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MLB.com은 "KBO리그에서 뛰는 투수들의 구속이 대부분 시속 95마일(약 153km)에 미치지 못한다. 이정후가 빅리그 투수들의 구속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고, 그가 특별히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KBO리그를 경험했던 외국인 선수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지난 16일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레틱'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한 라이언 사도스키(전 롯데 자이언츠)는 "이정후는 지난해 호세 피렐라(전 삼성 라이온즈) 등 빅리그에서 성공하지 못한 선수들과 KBO MVP를 놓고 경쟁했다. 따라서 그는 더 빠른 공에도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5년부터 5년간 KBO리그 무대를 누비며 이정후를 직접 상대했던 조쉬 린드블럼(전 두산 베어스)도 이정후가 시속 90마일 후반대의 공을 때려낼 수 있는 능력을 계속해서 증명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특히 이정후는 올 시즌을 앞두고 타격폼을 변경한 바 있다. 그는 스탠스를 조금 넓히면서 팔의 높이를 낮췄다. 빅리그 진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강속구 투수들에 대비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타격폼을 바꾼 게 독이 됐다는 평가가 많았고, 이정후는 4월 한 달간 87타수 19안타 타율 0.218 3홈런 13타점으로 부진에 시달렸다.
선수 본인의 생각은 어떨까. 19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이정후는 사실 타격폼을 바꾸기도 하고 했는데, 미국에서는 그 부분을 좋게 평가해 주시는 것도 있었다. 물론 더 잘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도 있었지만, 가장 잘할 때 그런 변화를 주려고 했던 모습도 높게 평가한다고 해주셨다"고 밝혔다.
일단 이정후는 2024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타격폼에 변화를 주지 않을 계획이다. 그는 "당장 (타격폼을) 수정할 생각은 없다. 우선 부딪혀볼 생각이다. 몸이 거기에 맞게끔 변화할 것이고, 또 아직 어리기 때문에 빨리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빅리그 적응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몸 상태도 나쁘지 않다. 이정후는 "(지난해보다) 더 일찍 운동을 시작했다. 10월 20일부터 운동 중이었고, 미국에서도 계속 훈련했기 때문에 몸 상태는 좋다. 한국은 좀 춥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정이 나오는 대로 빨리 미국에 들어가 몸을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진=인천공항, 김한준 기자 / 엑스포츠뉴스 DB
유준상 기자 junsang98@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