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권동환 기자)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던 수비수 조르조 키엘리니가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지난 22년간 누빈 그라운드를 떠났다.
미국 MLS(메이저리그사커) LAFC는 13일(한국시간)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LAFC 수비수 조르지오 키엘리니는 22년 간의 놀라운 커리어를 마치고 오늘 프로 축구계에서 은퇴를 발표했다"라며 전했다.
현재 키엘리니가 몸 담고 있는 LAFC는 "이로써 축구 역사상 가장 훌륭하고 존경받는 수비수 중 한 명인 된 키엘리니는 27개의 타이틀과 함께 자신의 커리어를 마감했다"라며 키엘리니의 은퇴 소식을 알렸다.
LAFC의 공동 구단주이자 단장인 존 소링턴은 홈페이지를 통해 "먼저 우리는 키엘리니의 전설적인 경력을 축하하고 싶다"라며 "우린 키엘리니가 지난 18개월을 LAFC에서 보내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생각한다"라며 헌사를 건넸다.
이어 "키엘리니는 그의 세대에서 최고의 수비수이자 훌륭한 사람이다. 그는 경기장 안팎에서 우리가 그에 대해 가졌던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높은 기대치를 뛰어넘었다"라며 "그의 리더십, 전문성, 성격은 LAFC에 지속적인 유산을 남길 것이며 우린 키엘리니와의 관계가 계속될 거라고 믿는다"라고 덧붙였다.
키엘리니도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당신(축구)는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렬한 여행이었다"라며 "당신은 나의 전부였다. 난 너와 함께 잊을 수 없는 독특한 길을 여행했다"라며 그동안의 커리어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제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더 중요하고 흥미진진한 삶의 페이지를 쓸 때이다"라며 축구화를 벗고 제2의 삶을 살 계획임을 전했다.
1984년생 키엘리니는 현역 시절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수비수였다. 지금은 4부리그인 세리에D에 있는 AS리보르노 칼초 유스 출신인 키엘리니는 2004년 ACF피오렌티나로 이적했다. 그는 피오렌티나에서 딱 1년만 뛰고 곧바로 세리에A 명문 유벤투스로 팀을 옮겼다.
유벤투스로 이적하기 전까지 키엘리니의 주포지션은 레프트백이었다. 유벤투스도 레프트백으로서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키엘리니를 영입했는데, 종종 키엘리니를 센터백으로 출전시키면서 상황에 따라 그의 포지션을 결정했다.
키엘리니가 아예 센터백으로 전향한 건 2007/08시즌이었다. 당시 유벤투스 사령탑이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은 키엘리니의 포지션을 센터백으로 정착시켰고, 이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센터백으로 전향한 후 키엘리니는 유벤투스 수비 라인을 든든하게 책임지면서 오랜 시간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지능적이고 터프한 수비 능력으로 유벤투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수비수로 거듭났다.
뛰어난 수비력과 자기 관리에 힘입어 키엘리니는 2005년부터 2022년까지 무려 17년 동안 유벤투스에서 주축 수비수로 활약했다. 키엘리니의 유벤투스 통산 성적은 561경기 36골 26도움으로,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705경기)와 잔루이지 부폰(685경기)의 뒤를 이어 유벤투스 최다 출전 3위에 올랐다.
유벤투스에서 17년을 뛰는 동안 키엘리니는 우승컵만 무려 19개를 들어 올렸다. 세리에A에서 2012년부터 2020년까지 9회 연속 우승에 성공했고, 코파 이탈리아 우승 5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도 5번 기록했다. 칼초폴리 스캔들로 강등 당해 2006/07시즌 세리에B에서 우승한 기록까지 포함하면 트로피는 20개로 늘어난다.
유벤투스가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린 비결엔 단연 키엘리니의 존재감이 지대했다. 키엘리니는 3번(2007/08, 2008/09, 2009/10시즌)이나 세리에A 올해의 수비수로 뽑혔고, 2013년부터 2018년까지 5년 연속 세리에A 올해의 팀에 선정됐다.
키엘리니는 유벤투스를 세리에A 최고의 팀으로 만들면서 성공적인 팀으로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키엘리니는 유벤투스 시절 총 2차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라갔다. 2014/15시즌 결승전에서 루이스 엔리케 감독이 이끄는 바르셀로나를 만났는데, 당시 키엘리니는 부상으로 인해 결승전에 나오지 못했다.
바르셀로나는 '네이마르-리오넬 메시-루이스 수아레스' 삼각편대를 앞세워 유벤투스를 3-1로 꺾으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 일부 팬들과 전문가들은 키엘리니가 있었다면 경기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벤치에서 준우승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키엘리니는 2년 뒤 2016/17시즌 다시 한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오르면서 우승에 도전했다. 상대는 지네딘 지단 감독이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였다. 이때 키엘리는 선발로 출전했는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멀티골을 포함해 총 4골을 실점하면서 1-4로 완패해 다시 한번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두 번의 준우승 이후 키엘리니는 단 한 번도 결승전 문턱을 밟지 못하면서 월드 클래스 수비수임에도 챔피언스리그 우승 0회로 커리어를 마감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없지만 키엘리니는 이탈리아 축구대표팀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남겨 이를 위안으로 삼았다. 2004년에 대표팀에서 데뷔한 키엘리니는 A매치 통산 117경기를 뛰면서 이탈리아 축구대표팀 최다 출전 공동 5위에 올랐다.
키엘리니에게 절대 잊지 못할 순간은 지난 2021년에 개최된 UEFA 유로 2020 대회이다. 이탈리아 대표팀 주장으로서 대회에 참가한 키엘리니는 경기 내내 엄청난 수비력을 선보이면서 조국을 결승전으로 이끌었다.
이탈리아는 결승전에서 잉글랜드를 만났다. 당시 경기장이 잉글랜드의 홈구장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려 다소 불리한 면이 있었지만 이탈리아는 경기를 1-1로 마쳐 승부차기에서 우승팀을 가렸다. 이후 승부차기에서 3-2로 승리하면서 이탈리아는 무려 53년 만에 유로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키엘리니 역시 대표팀 데뷔 후 첫 메이저 대회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특히 지난 유로 2012 때 결승전에서 스페인한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던 키엘리니였기에 그에게 유로 우승의 의미는 남달랐다.
다만 월드컵에서 성적은 좋지 않다. 키엘리니는 월드컵을 총 2번(2010 남아공, 2014 브라질) 참가했는데,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굴욕을 맛봤다.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우루과이전에선 상대 간판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와 볼 다툼을 하다가 사고의 중심에 섰다. 수아레스가 키엘리니의 어깨를 이빨로 물어뜯은 것이다. 경기는 우루과이의 승리로 끝났으나 수아레스는 이 행위로 월드컵 무대에서 쫓겨났다.
키엘리니는 설상가상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과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선 이탈리아가 유럽지역 예선에서 탈락, 참가조차 못했다.
시간이 흘러 38세가 된 키엘리니는 2022년 여름 정든 유벤투스를 떠나 미국 LAFC로 이적하기로 결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 축구대표팀에서도 은퇴를 선언하면서 조금씩 커리어의 마지막 단계를 준비했다.
LAFC로 이적한 키엘리니는 베테랑 수비수의 면모를 과시하면서 지난 18개월 동안 45경기에 출전했다. 키엘리니의 활약과 리더십에 힘입어 LAFC는 2022 MLS컵과 서포터즈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LAFC도 "키엘리니 지휘 하에 LAFC는 2023 MLS컵 플레이오프에서 3번의 클린시트를 포함해 모든 대회에서 무실점 경기를 18번 기록했고, 2022년부터 2023년까지 MLS컵 플레이오프 7연승에 기여하면서 수비의 요새임을 입증했다"라며 키엘리니의 활약상을 소개했다.
한편, 키엘리니가 은퇴 후 향후 어떤 삶을 살 계획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면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지 아니면 코치로 전향해 지도자로 다시 현장에 복귀할지 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사진=LAFC 홈페이지, 키엘리니 SNS, 연합뉴스
권동환 기자 kkddhh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