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패한 팀에서 경기 MVP가 나오기 쉽지 않다. 황희찬이 그걸 해냈다.
황희찬은 29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크레이븐 코티지에서 열린 2023/24 프리미어리그 13라운드 풀럼과의 원정 경기에서 1-2로 뒤지고 있던 후반 30분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재동점을 만들었다. 울버햄프턴은 전반전을 한 골씩 주고받은 채 마친 뒤 후반 14분 상대 브라질 공격수 윌리안에 페널티킥 골을 내줘 1-2로 뒤진 상태였다.
홈팀의 기세가 만만치 않은 순간에 황희찬의 재기 넘치는 플레이가 울버햄프턴을 살렸다. 원정팀 골키퍼 조세 사의 롱킥 때 황희찬이 질풍처럼 드리블한 뒤 페널티지역 선상에서 상대 수비수 안토니 로빈슨의 반칙을 얻어낸 것이다.
황희찬이 반칙 당한 것이 맞는지는 물론이고, 반칙을 당한 지점이 어디인지도 논란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페널티지역에서 반칙이 이뤄졌다는 판단 아래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이후 키커로 나선 이는 황희찬이었다. 키커를 선정할 때 황희찬과 그의 전방 공격수 파트너 마테우스 쿠냐가 옥신각신하면서 서로 자신이 차겠다고 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결국 황희찬이 페널티킥 지점 앞에 섰다.
추위를 달래기 위해 검은색 장갑을 낀 황희찬은 골문 한가운데로 오른발 킥을 찼고 이를 알지 못한 상대 골키퍼는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득점이 됐다.
황희찬은 왼쪽 가슴에 있는 울버햄프턴 엠블렘을 들어올리며 런던까지 온 원정팬 앞에서 환호했다. 2경기 쉬었던 황희찬이 다시 골을 가동하는 순간이었다.
황희찬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이날 멀티골을 터트릴 수도 있었다. 전반에 마음 먹고 시도한 슛이 크로스바를 맞았기 때문이다. 전반 14분 마리오 레미나 하프라인 부근에서 내준 전진패스를 받은 뒤 상대 수비수 한 명 달고 질풍처럼 드리블했다. 이어 아크 정면에서 회심의 오른발 슛을 날렸다.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아웃되면서 땅을 쳤다.
그러나 이 슈팅은 초반 공세에 선제골을 내줬던 울버햄프턴이 반등하는 계기가 됐다.
황희찬의 '골대 강타'가 일어나고 8분 뒤인 전반 22분 울버햄프턴은 마테우스 쿠냐의 헤더골로 1-1 동점을 만들었다. 장-마르크 벨레가르드가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상대 선수를 순식간에 제치는 멋진 드리블을 펼친 뒤 골대 먼 쪽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레미나와 황희찬을 지나 뒤에 있던 쿠냐가 헤더를 시도해 골망을 출렁였다. 이 때도 황희찬이 공이 있었다. 쿠냐 앞에서 상대 수비의 시선을 분산시킨 것이다. 이날 경기 전까지 6골을 터트리며 울버햄프턴 득점 1위, 프리미어리그 득점 전체 8위에 자리잡은 황희찬을 그대로 놔둘 수비수는 없다.
황희찬은 이번 시즌 들어 볼터치가 줄어들었다. 이날도 90분을 다 뛰었는데 볼 터치가 30회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공을 잡을 때마다 뭔가 벌어질 것 같고 상대는 긴장한다.
황희찬의 플레이가 출중하다보니 울버햄프턴이 패했음에도 MVP가 그의 몫으로 돌아갔다.
황희찬은 이날 경기 뒤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이 5389명의 팬을 상대로 진행한 투표에서 41.8%의 득표율을 기록, 페널티킥만 2차례 성공해 멀티골을 넣은 상대팀 윙어 윌리안(38.5%)을 누르고 경기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윌리안이 동료가 얻어낸 페널티킥으로만 2골을 넣은 것도 황희찬에 표가 쏠리는 이유가 됐다.
축구통계매체에서도 황희찬은 울버햄프턴 선수들 중 1위를 휩쓸었다.
'풋몹'은 풀럼전이 끝난 뒤 황희찬에게 울버햄프턴 선수들 중 가장 높은 8.2점을 줬다. 울버햄프턴 선수들 중에선 미드필더 벨레가르드가 7.5점으로 황희찬 뒤를 이었으며 1-1 동점포를 터트린 쿠냐가 7.4점으로 그 뒤를 이었다.
또 다른 통계매체 소파스코어에서도 황희찬 평점이 울버햄프턴 선수들 중 가장 높았다. 황희찬은 공격 전방위를 활발히 누빈 것으로 드러났고 평점은 7.6점을 받았다. 역시 선제골 넣은 쿠냐가 7.3점으로 그 뒤를 이었고 벨레가르드가 7.2점으로 3위를 차지했다.
후스코어드닷컴 역시 황희찬에게 울버햄프턴 최고 점수인 평점 7.5를 매겼다. 황희찬과 투톱으로 출격, 전반 22분 헤딩골을 넣은 마테우스 쿠냐(7.24)가 뒤를 이었다.
황희찬은 이날 득점포를 통해 지난 2021년 프리미어리그 입성 뒤 생애 첫 두 자릿 수 공격 포인트를 세우는 기염도 토했다.
황희찬은 풀럼전까지 프리미어리그에서 총 7골을 넣었다. 또 리그 사이에 열린 리그컵 챔피언십(2부) 입스위치전에서 한 골을 터트리기도 했다. 거기에 도움에도 능해 프리미어리그에서 어시스트 2개를 기록 중이다.
이미 한시즌 최다골 기록을 경신한 상태에서 공격포인트 10개를 일찌감치 돌파한 것이다.
아직 시즌 절반이 남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자릿 수 골은 물론이고 15골, 공격포인트 20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황희찬의 득점포 행진은 강팀과의 경기에서 자주 터졌다는 것도 특징이다.
황희찬은 지난 8월20일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2라운드 브라이턴 호브 앤드 앨비언과의 홈 경기에서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린 뒤 홈팀이 0-4로 크게 뒤진 후반 10분 파비우 실바와 교체돼 그라운드를 밟아 5분 뒤 시즌 첫 골을 넣었다.
함께 교체로 들어갔던 파블로 사라비아가 오른쪽 코너킥을 올렸고 볼이 반대편에 있던 황희찬에게 배달되자 그의 헤더가 원정팀 골망을 출렁였다. VAR에 곧장 들어갔으나 황희찬의 골로 인정됐다. 당시 브라이턴은 초반에 연승 가도를 달리며 지난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티켓을 따낼 때의 기세 그대로였다.
2호골을 9월3일 4라운드 크리스털 팰리스전에서 터트린 황희찬은 같은 달 16일 열린 명문 리버풀전에서 3호골을 쏘아올렸다. 전반 7분 리버풀 공격을 차단한 울버햄프턴은 왼쪽 측면에 있던 페드루 네투가 60m를 질풍처럼 드리블한 뒤 페널티 지역 왼쪽에서 상대 수비 3명을 순식간에 뚫고 반대편으로 낮게 크로스했다. 알리송 베케르 골키퍼와 상대 수비라인 사이 공간에 볼이 절묘하게 떨어졌고, 이때 황희찬이 쏜살같이 달려들어 골지역 오른쪽에서 오른발 대각선 슛을 쐈다.
이어 리그컵에서 2부리그 입스위치를 만나 시즌 4호골을 터트린 황희찬은 지난 시즌 우승팀 맨체스터 시티 골문에 시즌 5호골이자 프리미어리그 4호골을 때려박았다.
9월30일 '지구 최강' 맨시티와의 홈 경기에서 황희찬은 계속해서 역습 때 맨시티 수비 뒷공간을 노렸는데, 결국 역전골로 성과를 만들었다. 후반 21분 역습으로 시작된 공격에서 공이 페널티박스 우측에 위치한 황희찬 쪽으로 흐르자 곧바로 슈팅을 시도했다.
첫 번째 슈팅이 수비에 걸렸지만, 황희찬은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쇄도했다. 문전 앞에서 쿠냐가 수비에 막힌 볼을 잡아 재차 내주자 황희찬은 두 번째 슈팅은 제대로 밀어 넣으며 팀에 리드를 안겼다. 이 골은 2-1 승리 결승포가 됐다.
프리미어리그 5호골은 현재 4위를 달리고 있는 역시 강팀인 애스턴 빌라전에서 나왔다. 10월 9일 열린 홈 경기에서 황희찬은 후반 8분 0-0 균형을 깨트리는 선제골을 쏘아올렸다. 이번 시즌 황희찬과 함께 측면에서 펄펄 날고 있는 네투가 상대 수비라인을 무너트리며 오른쪽 측면에서 과감하고 빠른 돌파를 시도한 뒤 크로스를 올렸고, 이 때 황희찬이 쇄도하면서 왼발로 밀어넣었다.
황희찬은 이날 득점 뒤 상대 선수와의 충돌로 코피를 막기 위해 콧 속에 집어넣었던 솜을 집어던지며 무릎 슬라이딩 세리머니로 자축했다.
이어 시즌 7호골이자 프리미어리그 6호골은 이번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 오른 뉴캐슬전에서 터졌다.
10월29일 홈 경기에서 후반 26분 황희찬이 얻어낸 프리킥이 자신의 7호골 시발점이 됐다. 박스 안으로 들어온 프리킥을 포프 골키퍼가 밖으로 쳐냈는데, 울버햄프턴이 이를 다시 박스에 다시 밀어넣었다. 이 때 황희찬이 공을 잡았다. 황희찬은 침착하게 왼발 슈팅을 날리는 모션을 치하며 상대 수비수의 슬라이딩 태클을 유도했다. 이를 통해 수비수를 한 명을 완벽하게 제친 뒤 니어 포스트를 노린 반박자 빠른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면서 스코어 2-2를 만드는 동점골을 터트렸다.
그리고 풀럼전에서 시즌 8호골을 완성했다
아울러 황희찬의 올시즌 득점포 행진 특징은 3경기를 쉰 적이 없다는 점이다. 프리미어리그 2, 4, 5라운드에 득점한 황희찬은 리그컵에서 골을 넣더니 다시 7, 8, 10라운드에 골 맛을 봤다. 그리고 두 경기 무득점에 그친 것을 만회하듯 13라운드 풀럼전에서 다시 득점했다.
사진=연합뉴스, 프리미어리그 SNS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