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서울월드컵경기장, 김정현 기자) 조규성이 클린스만호를 최악의 전반전 직전에 구해냈다.
이재성의 멀쩡한 골이 오심으로 취소되고, 조규성의 강슛이 골대를 맞고 나오는 등 불운이 겹치긴 했지만 누가 봐도 졸전이었다. 다만 전반전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 조규성의 골이 터지면서 클린스만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후반전을 맞이하게 됐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동남아 싱가포르와의 경기 전반전을 1-0으로 앞선 채 마쳤다.
한국은 16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시작된 2026 월드컵(캐나다·멕시코·미국 공동개최) 아시아 2차예선 C조 첫 경기 싱가포르와의 홈 경기에서 전반 44분 터진 원톱 조규성이 골에 힘입어 전반전을 1-0으로 리드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2~3수 위인 한국은 홈에서 상대를 맞아 초반부터 골 폭풍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됐으나 뚜껑을 열고보니 아니었다. 상대의 밀집수비와 골키퍼 선방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최상의 컨디션으로 날카로운 볼 배급을 계속 이어가던 이강인이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고 이를 조규성이 꽂아넣어 0-0으로 비기는 충격은 면했다.
싱가포르전에 앞서 클린스만은 상대가 약체라고 하더라도 월드컵 예선이라는 중요한 타이틀이 걸린 경기인 만큼 방심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한국은 10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4위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이후 가장 높은 FIFA 랭킹을 찍었다. 반면 싱가포르는 FIFA 랭킹 155위에 그치면서 중국 (79위), 싱가포르(112위)에도 뒤지는 등 C조에서 가장 낮은 전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클린스만은 싱가포르전 전날 기자회견에서 "상대를 약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싱가포르에서 라이언 시티와 전북 현대의 경기를 봤다"며 "팀으로 경기하면 강팀이어도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싱가포르가)역습이나 세트피스에서 득점할 수 있다. 우리는 잘 준비했고 싱가포르 선수들을 잘 파악했다. 코칭스태프가 할 수 있는 숙제를 다 마쳤다. 내일 싱가포르 팀을 환영하지만 좋은 경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주장 손흥민도 클린스만 의견에 동감하며 "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시작이 제일 중요하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듯 첫 경기를 잘 준비해서 승리하고 싶다. 축구에서 쉬운 경기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항상 이변이 있고 이런 걸 좋아해서 축구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선 그런 이변이 절대로 일어나질 않길 바라고 이변이 안 나오도록 잘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니시가야 다카유키 싱가포르 대표팀 감독은 "많은 한국 선수가 높은 수준의 대회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 그래서 내일 정말 어려운 경기가 예상된다. 우리는 원팀으로 뛰어야 하고 모든 걸 쏟아서 뛰어야 한다"라고 했다.
클린스만은 이날 최정예 선발 라인업을 꺼내들었다.
김승규(알 샤바브) 골키퍼가 골문 앞에 선 가운데 이기제(수원 삼성),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정승현, 설영우(이상 울산 현대)가 백4를 구축했다. 중원엔 황인범(츠르베나 즈베즈다)이 혼자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아 클린스만호가 이날 공격적으로 나설 것임을 알렸다. 이재성(마인츠), 황희찬(울버햄프턴), 이강인(PSG), 손흥민(토트넘)이 2선에 포진한다. 머리에 검은색 두건을 쓴 조규성(미트윌란)이 전방 원톱으로 출격했다.
원정팀 싱가포르는 하산 수니 골키퍼를 비롯해 무하마드 나즈룰, 라이한 스튜어트, 리오넬 탄, 사푸완 바하루딘, 제이콥 매흘러가 백5를 구축한다. 이르한 판디와 송의영, 샤흐 샤히란, 하리스 하룬이 미드필더진을 지키고 샤왈 아누아르가 홀로 공격 진영에 포진한다.
싱가포르에선 1993년생으로 한국에서 건너가 현지 프로팀에서 뛰다가 지난 2021년 귀화한 송의영이 눈에 띈다. 한국 선수가 상대팀 국가대표로 뛰는 이례적인 경우가 일어났다. 송의영은 전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 대표팀을 상대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며 감동했다.
경기는 예상대로 한국이 싱가포르 선수들을 페널티지역 안에 가둬놓고 일방적인 공격을 펼치는 형태로 전개됐다. 그러나 FIFA 랭킹 155위에 불과하더라도 막상 붙어보니 손쉽게 공략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한국은 전반 6분 황희찬이 돌파를 시도하가 페널티지역 오른쪽 외곽에서 얻어낸 프리킥을 손흥민이 찼으나 상대가 걷어내 첫 골 기회를 날렸다. 전반 9분엔 이날 한 칸 내려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은 황인범이 기습 오른발 중거리슛을 시도했다.
전반 12분엔 황희찬의 페널티지역 왼쪽 크로스를 조규성이 머리에 맞히지 못해 아까운 찬스가 날아갔다. 전반 17분 손흥민의 왼쪽 코너킥 역시 싱가포르가 걷어냈다. 전반 18분엔 상대 수비라인을 단박에 깨트리는 긴 패스가 후방에서 날아왔으나 상대 문지기 수니가 아크 정면까지 나와 다이빙 헤더로 걷어내는 이례적인 플레이로 태극전사들의 첫 골 의지를 차단했다.
전반 21분에도 이강인이 뒤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상대 수비 무너트리는 중거리 패스를 내질렀으나 상대 수비가 간파하고 이를 차단했다.
한국은 전반 23분엔 상대 골망을 흔들었으나 심판의 오심으로 오프사이드 선언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강인이 후방에서 찔러넣은 것을 조규성이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헤더로 연결했고 이를 이재성이 달려들어 오른발로 차 넣었다. 부심이 깃발을 들어 오프사이드 처리됐는데 중계로 확인한 결과 아무 문제 없는 골인 것으로 드러났다. 2026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에선 비디오판독(VAR)을 시행하지 않기로 해 심판이 오심을 해도 바로잡을 방법이 없다.
한국은 전반 29분에도 상대 골키퍼의 기가 막힌 선방에 땅을 쳤다. 이강인이 오른쪽 측면을 휘젓다가 자신이 주로 쓰는 발이 아닌 오른발로 크로스를 올렸고 이를 이재성이 골지역 왼쪽에서 다이빙 헤더슛으로 연결했는데 수니가 반사적인 신경으로 걷어낸 것이다. 이강인이 왼발, 오른발을 가리지 않고 환상적인 패스와 크로스를 계속 올렸으나 상대 골키퍼의 맹활약과 심판의 오심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는 장면이 속출했다.
전반 33분엔 오심도 부족해 골대 불운까지 일어났다. 이강인의 오른쪽 측면 크로스를 손흥민과 공중볼 경쟁하던 싱가포르 선수 몸 맞고 볼이 앞에 떨어졌다. 이를 조규성이 강력한 오른발 발리슛으로 쐈는데 크로스바를 강타하고 그라운드에 떨어졌다. 클린스만호가 다시 한 번 불운에 고개를 숙였다. 전반 37분 손흥민의 페널티지역 왼쪽 외곽 프리킥은 역시 수니가 뛰어나와 강력한 펀칭으로 멀리 걷어냈다.
싱가포르는 전반 막판엔 10명의 필드플레이어로 두 줄 수비를 만들어 전반전을 0-0으로 끝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 때 한국의 번뜩이는 콤비플레이가 위력을 발휘했다. 오른쪽 뒤에서 이강인이 상대 두줄 수비를 와르르 무너트리는 왼발 크로스를 올렸고 이를 조규성이 번개처럼 뛰어나와 왼발 다이렉트 슛으로 집어넣은 것이다.
싱가포르의 육탄 수비가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조규성의 골 이후 전반전이 종료 됐다.
사진=서울월드컵경기장, 김한준 기자
김정현 기자 sbjhk8031@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