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이태승 기자) 공격수 올리비에 지루가 골대 앞에 섰다. 상대팀 골대가 아니라 소속팀 골대 앞이었다.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 선방을 해낸 지루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소속팀 AC 밀란이 그의 골키퍼 유니폼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9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AC 밀란이 골키퍼 유니폼에 지루의 이름과 등번호까지 마킹, 판매를 시작했다"며 "공식 홈페이지에도 골키퍼 명단에 지루를 포함시켰다"고 전해 화제다.
지루는 지난 8일 2023/24시즌 이탈리아 세리에A 제노아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9분부터 골키퍼 장갑을 끼고 남은 5분간 골대를 지켰다. 지루는 추가시간이 15분이나 주어지는 긴 경기 속에서 제노아 조지 푸스카스와의 1대1 상황 때 용감하게 몸을 던져 선방한 뒤 2차 선방까지 해내며 공을 안정적으로 잡았다.
해당 경기는 매우 치열했다.
후반 42분 까지 0-0의 균형추를 유지하던 두 팀은 AC 밀란 크리스티안 풀리식이 득점에 성공하며 원정팀이 아슬아슬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반 정규시간이 끝나고 9분 뒤, AC 밀란 골키퍼 마이크 메냥이 공을 펀칭하기 위해 뛰어나오던 과정에서 제노아의 공격수 칼렙 에쿠반의 턱을 완전히 돌려놓는 위험한 니킥으로 퇴장당했다. 필드플레이어가 모두 교체된 터라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루는 직접 나서 메냥의 골키퍼 장갑과 유니폼을 넘겨받은 뒤 골대를 지켰다.
매서워진 제노아 공세에 AC 밀란은 최후의 수비를 시작했다. 그러다 후반 추가시간 15분 제노아의 푸스카스가 넘겨받은 공을 잡고 슈팅으로 연결하려던 찰나, 지루가 뛰어나오며 공을 쳐냈고, 다시 한 번 다가오는 공을 재빠르게 잡아내며 1-0을 지켜냈다. 만약 푸스카스 득점했다면 1-1로 경기가 끝나 밀란이 라이벌 인터 밀란과 승점이 똑같아 리그 경쟁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루 선방과 함께 경기가 종료되자 AC 밀란 팀원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두 지루를 에워싸고 환호했다. 지루의 놀라운 헌신에 AC 밀란도 감사의 의지를 표했다. 신문에 따르면 AC 밀란은 성명문에서 "올리비에 지루가 용감히 수비를 해내며 밀란의 역사에 남겨졌다"고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AC 밀란은 이어 "그의 노고를 치하하는 차원에서 지루를 골키퍼 명단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팬들도 지루의 등번호와 이름이 새겨진 골키퍼 유니폼을 구매할 수 있다"고 했다. AC 밀란 전문 언론 매체 '셈프레 밀란'은 "해당 유니폼이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 모든 사이즈가 다팔렸다"며 '진귀한' 유니폼의 절판소식을 알렸다.
골키퍼가 퇴장당한 후 필드에 있는 선수가 골키퍼로 변신하는 것은 교체카드가 없을 경우에 등장하는 흔치 않은 경우다.
골키퍼가 레드카드를 받게 되면 보통 다른 포지션의 선수를 벤치로 보내고 골키퍼로 교체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응하지만 제노아와의 경기서 AC 밀란은 이미 후반 45분 다비데 바르테사기까지 투입하며 교체카드 5장을 모두 사용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러한 경우는 토트넘 홋스퍼에게도 나타난 적이 있었다.
지난 2014/15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3차전 그리스의 아스테라스 트리폴리스와 경기를 가진 토트넘 홋스퍼는 후반 43분 팀의 골키퍼 위고 요리스가 퇴장당하며 위기에 처했다. 교체카드를 모두 사용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결국 '초강수'를 둬 해당 경기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을 골키퍼로 세웠다.
다만 케인은 지루와 같은 빛나는(?) 선방을 보여주진 못했다. 무릎 높이 정면으로 오던 프리킥을 놓치며 어이없게 실점하고만 것이다. 해당 경기는 토트넘이 5-1로 승리를 거두며 패배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Sempre Milan
이태승 기자 taseau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