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이태승 기자) 황희찬이 결승포를 넣자 경기 전 그를 "더 코리안 가이"로 부르던 적장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황"이라며 그의 성을 똑바로 불렀다.
황희찬은 1일 영국 울버햄프턴 몰리뉴 경기장에서 열린 소속팀 울버햄프턴과 프리미어리그 1위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와의 경기에서 1-1 무승부이던 후반 21분 결승포를 터트렸다. 이번 시즌 5호골이자 프리미어리그 4호골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경기 전 프리미어리그 6연승을 달린 맨시티는 적지에서도 공격을 주도했으나 홈팀 역습이 한 방을 먹었다. 전반 12분 페드루 네투가 탈압박을 통해 맨시티 페널티박스 안으로 진입했고, 곧바로 문전 앞에 공격수들에게 내준 컷백 패스가 맨시티 수비수 후벵 디아스의 발에 걸렸다. 공은 골라인 밖이 아닌 골문 안으로 향하며 자책골로 이어지고 말았다.
울버햄프턴은 선제 득점 이후 왼쪽 측면의 라얀-아이트누리와 오른쪽 측면의 네투가 번갈아 돌파를 시도하며 맨시티 양 측면을 흔들었다. 다만 맨시티도 수비수들이 집중하며 추가골 헌납할 기회를 허용하지는 않았다.
맨시티는 경기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계속해서 상대를 몰아붙였다. 전반 27분 프리킥을 얻어낸 맨시티는 올라온 공을 나단 아케가 헤더에 이어 다이나믹한 자세로 슈팅까지 시도했지만, 상대 수비에 막혔다. 전반 29분에는 주포 엘링 홀란과 2대1 패스를 통해 공격을 주도한 필 포든이 상대 수비까지 뚫어내며 슈팅을 시도했지만, 상대 골키퍼 조세 사를 뚫지는 못했다.
결국 맨시티는 이번 시즌 케빈 더 브라위너의 부상으로 공격형 미드필더 보직 변경한 아르헨티나 공격수 훌리안 알바레스가 프리킥으로 균형을 맞췄다. 후반 11분 페널티박스 밖 좌측에서 보브가 공을 잡고 돌파를 하던 과정에서 고메스가 파울을 범했고, 프리킥이 선언됐다. 키커로 나선 알바레스는 상대 가까운 쪽 골대 구석으로 제대로 슈팅을 때리며 울버햄프턴 골망을 흔들었다.
하지만 10분 뒤 울버햄프턴이 다시 한 골을 넣어 대어를 잡았고 그 주인공이 황희찬이었다.
후반 21분 역습으로 시작된 공격에서 공이 페널티박스 왼쪽으로 흐르자 앞에 있던 황희찬이 곧바로 슈팅을 시도했다. 첫 번째 슈팅이 수비에 걸렸지만, 황희찬은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쇄도했다. 문전 앞에서 마테우스 쿠냐가 수비에 막힌 볼을 잡아 재차 내주자 황희찬은 두 번째 슈팅을 제대로 밀어 넣으며 팀에 2-1 리드를 안겼다. 결승포가 됐고 맨시티는 이번 시즌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 졌다.
리그 최하위권을 달리던 울브스가 리그 6경기 전승가도를 달리던 맨시티의 행보에 제동을 건 셈이다.
최근 다섯경기 1승 1무 3패만을 거두며 부침을 겪던 울브스는 맨시티와의 경기에서 승리 후 귀중한 3점을 얻어 16위에서 13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축구 통계 전문 플랫폼 '풋몹'에 따르면 황희찬은 평점 8.1점을 받으며 해당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MOM)'에 선정됐다.
황희찬은 새 시즌 들어 자신의 단점으로 꼽히던 골결정력을 완전히 해결하는 모습이다. 맨시티전에 앞서 개막 후 리그컵 포함 7경기 4골을 뽑아낼 정도로 득점 감각에 물오른 상태였는데, 8번째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트리며 '거함' 맨시티를 잡아내는데 일등 공신이 됐다. 황희찬은 리그에서만 4골로 팀 내 최다득점자다. 또 홀란(8골)과 손흥민(6골)에 이어 득점 랭킹 공동 3위다.
황희찬은 시즌 초반 벤치에서 출발했으나 두 골을 넣으면서 실력으로 선발을 되찾은 경우다. 지난달 1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개막전 원정 경기에서 후반 18분 들어가 27분을 뛴 황희찬은 이어진 8월 19일 브라이턴전에선 0-4로 크게 뒤진 후반 10분 투입돼 5분 만에 헤더 만회골을 넣고 새 시즌 자신의 프리미어리그 마수걸이포를 터트렸다.
황희찬은 이 골을 기반 삼아 8월26일 에버턴과의 원정 경기에서 시즌 첫 선발로 나섰으나 전반 도중 고질적인 부상 부위인 햄스트링(허벅지 뒷근육)에 이상을 느껴 전반 끝나자마자 교체아웃됐다.
하지만 큰 부상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4라운드 크리스털 팰리스전에 후반 15분 교체 투입됐고 이번에도 그라운드에 들어간지 5분 뒤인 후반 20분 1-1 동점을 만드는 골을 넣어 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후 황희찬은 영국 원정 2연전을 치르는 클린스만호에 가세, 지난 8일 웨일스전에선 교체로 뛰었고 13일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선 선발로 나섰다. 두 차례 A매치에도 몸에 큰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자 오닐 감독은 2주 전 리버풀전에서 황희찬 선발 카드를 꺼내들었다.
오닐 감독의 선택을 증명하듯 황희찬은 전반 7분 네투가 상대 왼쪽 측면을 휘젓고 들어간 뒤 반대편으로 올린 낮은 크로스를 오른발로 반박자 빨리 집어넣어 리버풀 골망을 먼저 출렁였다.
리버풀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황희찬은 이번 맨시티전에서도 결승포를 넣었다. 강팀과 경기에서 상대를 때려눕히는 킬러로 변신한 셈이다.
황희찬이 맹활약하자 적장 펩 과르디올라 감독도 그를 잊지 않았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경기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Hwang(황)'이라고 분명히 발음하며 울버햄프턴 승리에 축하를 보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황과 마테우스 쿠냐 같은 선수들에게 공이 전달된 후 계속 돌파를 허용하면 위험하다"며 "충분히 선수들에게 경고한 바 있다"고 밝혔다. 또한 "(울버햄프턴 선수들은) 강하다"고 전하며 승자를 향한 박수를 보냈다.
경기 뒤 과르디올라 감독의 "황" 발음을 주목할 만하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불과 하루 전 울버햄프턴 원정 사전 기자회견에서는 "울버햄프턴에는 퀄리티가 좋은 선수들이 많다"며 "페드루 네투, 마테우스 쿠냐, 그리고 그 한국인 선수는 정말 훌륭하다"고 전했기 때문이다. "그 한국인 선수(The Korean guy)"는 울버햄프턴에서 뛰는 유일한 한국인 황희찬을 가리킨다. 경기 전 황희찬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그 한국인 선수"라고 불렀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지만, 황희찬의 놀라운 활약 이후에는 그의 성을 정확히 발음하며 그가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이 충분히 기억에 남는다는 점을 암시했다.
과르디올라 감독만이 황희찬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6일 울버햄프턴과의 리그 5라운드 경기를 앞뒀던 리버풀 사령탑 위르겐 클롭 감독 또한 "황(희찬)이나 샤샤 칼라이지치 같은 좋은 선수들은 경기에 선발로 출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위협적이다"라고 전하며 '황소' 황희찬의 아성을 간접적으로 증명한 바 있다.
손흥민 등 한국 선수와 친분이 있는 클롭 감독은 "황"이라고 정확히 발음했다.
한편, 과르디올라 감독이 황희찬에게 한 방 얻어맞자 SNS 등에서는 이를 풍자하는 글도 넘쳐나고 있다. "코리안 가이라고 부르더니 한 골 내줬다", "이제는 황을 똑바로 발음하게 될 것 같다"는 반응 등이 줄을 이었다.
황희찬은 현재 리그에서 4골을 넣으며 팀의 주포로 부상했다. 울버햄프턴이 이번 시즌 리그에서 득점한 골의 수는 8골이다. 황희찬이 팀의 득점 절반을 책임지는 '가장'을 하는 셈이다. 현재 황희찬은 리그 득점 순위에서 공동 4위에 올라 애스턴 빌라의 올리 왓킨스, 아스널의 부카요 사카, 브라이턴 앤드 호브 앨비언의 에반 퍼거슨 등과 치열한 득점 순위 경쟁을 펼치고 있다.
황희찬은 지난 두 시즌 교체 투입으로 많은 출전을 이룰 만큼 고정된 선발 멤버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프리미어리그 3경기 연속 선발로 나서면서 이제는 울버햄프턴의 공격을 책임지는 상수가 됐다. 울버햄프턴은 좌우 측면에서 네투와 황희찬의 돌격을 축으로 치고 올라갈 기회를 잡고 있다.
울버햄프턴은 오는 8일 오후 10시 애스턴 빌라와의 홈 경기를 치른 뒤 A매치 브레이크를 갖는다. 이어 21일엔 본머스와 원정 경기, 29일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홈 경기, 11월5일 셰필드 유나이티드와 홈 경기를 치른다. 그리고는 11월11일 손흥민이 뛰는 토트넘을 홈으로 불러들인다. 황희찬과 손흥민이 시즌 첫 격돌할 때까지 동반 골폭풍을 지속할지도 흥미진진하게 됐다. 프리미어리그에서 한국인 공격수들이 득점 랭킹 2위와 3위에 오르는 진풍경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코리안 가이'의 돌풍이다.
사진=연합뉴스
이태승 기자 taseau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