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중국 저장성, 김지수 기자) 17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야심 차게 출항했던 임도헌호가 오히려 61년 만에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다. 한국 남자배구의 기량 정체와 아시아 국가들의 큰 발전 속에 판도가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뼈저리게 느낀 한 판이었다. 사령탑인 임도헌 감독은 책임을 통감하면서도 "실력에서 졌다"며 완패를 시인했다.
임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은 22일 중국 저장성 사오싱시 중국 섬유 도시 스포츠센터 체육관(China Textile City Sports Centre Gymnasium)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배구 12강 토너먼트 51위 파키스탄과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0-3(19-25 22-25 21-25)으로 졌다.
국제배구연맹(FIVB) 랭킹 27위의 한국은 파키스탄을 상대로 경기 내내 힘을 쓰지 못했다. 1세트 초반부터 파키스탄의 힘과 높이에 고전하면서 공격이 전혀 풀리지 않았다. 1세트부터 19-25로 무너지면서 초반 주도권을 뺏겼다.
한국 벤치는 허리 부상 여파로 벤치를 지키던 에이스 정지석을 2세트 초반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195cm 이상의 장신들로 구성된 파키스탄의 미들 블로커진은 한국의 공격을 승부처 때마다 가로막기로 저지했다.
나경복, 한선수 등 잔부상을 달고 있는 베테랑들은 게임 중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카드로 활용되지 못했다. 한국은 2, 3세트에도 무기력한 경기력 끝에 파키스탄에 압도당하면서 셧아웃 패배로 무릎을 꿇었다.
한국은 파키스탄전 패배로 인해 빈손으로 귀국길에 오르는 신세가 됐다. 순위 결정전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금메달이 목표였던 대회에서 입상권 밖으로 밀려나며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아직 아시안게임 개막식도 하지 않았는데 충격 속에 갈팡질팡하는 상황을 맞았다.
지난 20일 FIVB 랭킹 73위 인도와 조별리그 C조 1차전에서 풀세트 혈투 끝 패배로 발생한 '항저우 비극'은 이번 대참사의 예고편이었다. 이튿날 아마추어 전력의 캄보디아를 3-0으로 꺾고 12강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경기력이 썩 만족스럽지 못했던 가운데 파키스탄에게 완패로 고개를 숙였다.
한국 남자배구가 하계 아시안게임 무대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한 건 1962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이후 61년 만이다. 1966 방콕 아시안게임부터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까지 14개 대회 연속 시상대에 올랐지만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이 영광스러운 기록이 중단됐다.
한국 남자 배구는 김세진, 신진식, 최태웅, 김상우, 석진욱 등이 주축으로 활약했던 2000년대 중반까지 아시아를 주름잡는 강호로 이름을 떨쳤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 도하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한국 남자 배구의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기록이었다.
하지만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동메달로 우승권에서 멀어지며 주춤했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도 12년 만에 결승 진출에 만족한 채 은메달로 마무리했다.
한국 남자 배구는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17년 전 도하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머나먼 과거가 됐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인도, 파키스탄 등 우리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국가들에게 변명의 여지 없이 '실력'으로 지면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됐음을 실감했다.
임도헌 감독은 2019년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출전한 가장 규모 있는 대회에서 노메달로 아쉬움을 남겼다. 사령탑으로서 최종 엔트리 구성과 게임 운영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임도헌 감독은 파키스탄전 종료 후 "드릴 말씀이 없다. 전광인은 발목이 좋지 않았고 정지석은 여기 중국에 와서 몸이 안 좋아졌다"며 "하지만 이런 얘기는 핑계밖에 되지 않는다. 국제 대회에서 우리 실력이 이 정도다"라고 평가했다.
또 "기본적인 디펜스 등에서 앞으로 많은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며 "이번 대회에서 좌우 밸런스가 안 맞다보니 경기를 펼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날 2세트까지 파키스탄을 상대로 단 한 개의 블로킹도 따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센터진이 취약하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의 핑계다.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한 뒤 경기장을 떠났다.
사진=중국 저장성, 김지수 기자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