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영국 원정 뒤 선수단과 떨어져 유럽파 태극전사를 관찰하기로 해 또 다시 논란을 자초하고 거센 비판을 받았던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이 계획을 바꿔 한국에 오기로 했다.
재택 근무와 연이은 돌출행동 등으로 이미 축구팬과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가운데, 다시 외유에 나서기로 한 클린스만의 방침에 축구계가 들끓자 클린스만이 이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축구협회(KFA)는 13일 "국가대표팀은 9월 14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할 예정이다. 출국장에서 클린스만 감독의 귀국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당초 클린스만은 9월 A매치 일정을 마치고 유럽에 머물면서 유럽파 선수들을 점검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클린스만호는 지난 8일 영국 카디프시티에서 웨일스와 이달 첫 A매치를 치러 0-0으로 비겼다. 이어 13일엔 영국 북동부 뉴캐슬에 위치한 세인트 제임스 파크로 옮겨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와 격돌했고 스트라이커 조규성의 결승포를 잘 지켜 1-0으로 이기고 클린스만의 사령탑 취임 뒤 3무 2패 끝에 첫 승을 챙겼다.
클린스만호가 천신만고 끝에 데뷔승을 거두기는 했으나 곧장 논란에 휩싸였다. 선장인 클린스만이 태극전사들과 함께 한국으로 오지 않고 유럽에 남아 오는 16일 오전 3시45분 열리는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바이엘 레버쿠젠 맞대결을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유럽파 점검이라는 이유를 들 수 있지만 불과 며칠 전 자신이 두 차례 A매치에서 선발로 썼던 대표팀 붙박이 수비수를 다시 관찰한다는 방침에 팬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김민재 역할이 대표팀과 다른 것도 아니고, 아울러 벤치 멤버로 전락한 것도 아니며 이적 직후부터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는데 무슨 점검이 또 필요하냐며 축구팬들이 강력 반발한 것이다.
KFA 역시 클린스만이 이번 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 경기를 직접 관람하고 유럽 구단을 방문, 관계자들과 미팅을 할 예정이었다고 알렸다. 클린스만이 10월 A매치를 앞두고 유럽에서 체류하는 코칭스태프와 현지에서 분석을 진행한 뒤 한국으로 귀국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클린스만은 갑작스럽게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KFA는 "10월 명단 발표 전 K리그 선수를 먼저 확인하는 업무를 시작하는 것으로, 금일 코칭스태프 회의에서 일정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클린스만은 지난 3월 취임 때 약속했던 국내 상주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것은 물론, 자택이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원격 근무를 하고 미국 스포츠채널 ESPN에 정기적으로 출연 프리미어리그 승·무·패 찍기까지 예측하는 등 대표팀 사령탑의 위신에 전혀 걸맞지 않는 행보를 드러내고 있다.
이번 A매치 영국 원정 기간에도 친정팀인 바이에른 뮌헨 레전드 팀 일원으로 첼시 홈구장에서 열리는 자선 경기에 참가하겠다고 하다가 KFA의 강력 반대에 부딪히자 어쩔 수 없이 포기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웨일스전 직후엔 미국 프로축구 LA 갤럭시에서 골키퍼로 활동하는 아들의 부탁이라며 웨일스 스타플레이어 애런 램지의 유니폼을 얻으려고 선수에게 다가간 것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런 와중에 한국 대표팀을 맡은 역대 외국인 감독 데뷔 후 최다 연속 무승 신기록(2무 2패)에 1992년 국가대표팀 전임감독제 시행 이후 최다 연속 무승 신기록(3무 2패)까지 수립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전을 거의 '단두대 매치' 수준으로 치렀으나 간신히 1-0으로 이겨 여론의 빗발치는 비난에서 한 숨 돌렸는데 클린스만이 김민재 소속팀 경기를 보겠다며 스스로 화근을 키운 상황이었다.
클린스만은 지난 6월 A매치 뒤 휴가를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가 7월 말 팀K리그-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친선 경기를 보기 위해 잠깐 귀국하더니 다시 8월1일 출국했다.
이후 미국에서 일하다가 자신의 자선 사업 및 유럽파 점검 차원에서 아일랜드와 영국을 방문했고, 이달 초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조추첨을 보기 위해 모나코를 찾았다가 바로 웨일스전이 치러지는 영국으로 와서 대표팀을 지휘했다.
결국 14일 귀국은 45일 만에 한국 땅을 밟는 셈이다.지난 3월 한국에 온 뒤 6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클린스만이 한국에 체류한 기간은 67일에 불과하다. 이는 영국 공영방송인 BBC에까지 퍼져 조롱거리가 된 상태다.
그의 유럽파 점검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상당하다. 클린스만 감독의 외유 논란에 대해선 한준희 쿠팡플레이 해설위원 겸 대한축구협회(KFA) 부회장도 한 방송을 통해 “클린스만 감독이 유럽까지 가서 한 경기 보고 선수를 뽑는다는 게 대표팀 구성에 얼마나 영향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며 "선수가 결장하거나 부진하더라도 이 선수들을 안 뽑겠는가. 이미 경기장에서 굵직한 선수들에게 격려 한 마디를 하는 게 실효성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직격탄을 날린 적이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승승장구도 클린스만을 부담스럽게 하는 이유다.
일본은 지난 10일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열린 평가전에서 전차군단 독일을 4-2로 대파, 세계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울러 독일축구협회가 한스 디터 플릭 감독을 전격 경질하는 사태까지 만들어냈다. 이어 12일엔 벨기에 헹크 체게카 아레나에서 유럽의 복병 튀르키예를 4-2로 눌러 A매치 원정 2연전을 모두 이겼다.
승리도 그냥 승리가 아니라 유럽 최강팀과 중상위권팀을 상대로 연달아 4골을 넣은 것이어서 이를 지켜보는 한국 축구팬들이 부러움을 감출 수 없도록 했다. 일본은 지난 6퉐 홈 평가전 2경기를 합치면 최근 A매치 4연승 및 18득점의 엄청난 화력을 선보이는 중이다. 일본은 2026 월드컵 8강 목표를 향해 다시 나아가는데 한국은 클린스만이 온 뒤 오히려 퇴화하고 있는 셈이다.
클린스만도 이런 한국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듯 계획을 변경해 한국 땅을 밟게 됐다. 하지만 이미 팬들은 '만시지탄'이라며 그의 귀국에 진정성이 얼마나 되는지 의심하고 있다. 14일 입국장에서 그가 어떤 태도를 드러낼지 궁금하게 됐다.
사우디전을 마친 클린스만호는 이제 본격적인 2026 월드컵 아시아 예선 및 2023 아시안컵 본선 준비에 돌입한다.
대표팀은 내달 두 차례 친선 경기를 치르며 모의고사를 벌이게 된다. 우선 10월13일 북아프리카 강호로 카타르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프랑스를 이겼던 튀니지와 첫 경기를 하게 되며 17일에는 베트남을 상대한다. 킥오프 시간은 두 경기 모두 오후 8시다. 장소는 튀니지전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이고 베트남전은 수원월드컵경기장이다.
튀니지는 1998 프랑스 월드컵부터 지난 7차례 월드컵 중 5차례 본선에 오르는 등 아프리카에서 꾸준한 전력을 과시하고 있다. 비록 5번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으나 2018 러시아 월드컵과 지난 카타르 월드컵에선 1승씩 챙기며 자존심을 세웠다. 카타르 대회에선 프랑스를 조별리그에서 눌러 작은 이변을 일으켰다.
튀니지전이 끝나면 베트남전이 열린다. 한국 축구가 동남아 팀과 홈에서 A매치를 치르기는 지난 1991년 대통령배에서 인도네시아를 초청한 이후 32년 만이다.
베트남전 초청 이유에 대해 대한축구협회는 내년 아시안컵에서 상대 밀집 수비에 대비하기 위한 클린스만의 요청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클린스만은 "나도 강팀과 하고 싶었으나 유럽선수권 예선이 벌어지는 등 여의치 않았다"며 어쩔 수 없이 베트남과 경기하는 상황이라고 사실상 반박했다.
대표팀은 10월 A매치 뒤엔 2026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에 돌입한다. 우선 11월16일엔 홈에서 2차예선 C조 1차전을 치르는데 아직 상대국이 결정되지 않았다.
오는 10월12일과 17일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열리는 괌-싱가포르 승자와 붙는다. 싱가포르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58위, 괌이 204위여서 싱가포르 전력이 객관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어 11월21일엔 C조 2차전 중국 원정을 한다.
사우디전이라는 고비를 넘긴 클린스만이 오는 10월 A매치를 앞두고 대표팀과 자신에 대한 여론을 바꿀 수 있는 행보를 보여줄지, 이후 경기에서 연승 행진을 기록할 수 있을지에도 큰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사진=대한축구협회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