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이현석 기자) 스페인축구협회 회장 루이스 루비알레스와 스페인축구협회가 기습 입맞춤 논란에 오히려 적반하장식의 태도로 나오고 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26일(한국시간) 스페인축구협회의 성명을 보도했다. 보도에서 스페인축구협회는 현지 선수노조인 풋프로를 통해 '키스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한 에르모소의 발언이 거짓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갖고 있다며 "에르모소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다"라며 에르모소에 대한 법적 고발을 예고했다.
스페인축구협회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 루비알레스 회장은 거짓말하지 않았다"며 "협회와 회장은 에르모소 혹은 에르모소를 대신한 누군가가 퍼뜨린 이야기가 허위라는 점을 입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루비알레스 회장은 지난 2023 여자 월드컵 결승전 시상식에서 벌어진 강제 키스 논란으로 스페인 여자 대표팀의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의 기쁨을 퇴색시켰다. 당시 루비알레스 회장은 우승의 기쁨을 즐기는 시상식에서 에르모소와 포옹하더니 곧바로 입을 맞추는 행동이 포착되며 논란을 만들었다. 당시 그의 행동은 상대 선수였던 에르모소의 동의가 없었다면 성추행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시상식 이후 논란에도 불구하고 루비알레스 회장은 뻔뻔한 태도를 먼저 내비쳤다. 그는 라디오 마르카와 인터뷰를 통해 "에르모소와 키스? 다들 바보 같은 소리를 한다"라며 별다른 뜻이 없었다며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에 비난과 사퇴 요구가 더욱 폭주했다. 미켈 이세타 스페인 문화체육부 장관도 "내겐 받아들일 수 없는 거 같다. 우린 평등, 권리, 여성 존중의 시대에서 살고 있다"라며 "우리 모두 태도와 행동에 조심해야 한다. 선수를 축하하기 위해 입술에 입을 맞추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루비알레스의 회장을 비난했다.
스페인 대표 일간지 엘파이스는 '에르모소는 루비알레스의 키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도 그렇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엘파이스는 "스페인축구협회 회장은 오해였다고 할 수 있지만, 갑자기 (타인의) 입에다가 키스하는 건 '공격'"이라며 "'도둑 키스'가 항상 놀랍고 유쾌하게 다가오는 건 아니다. 반대로 그건 침해"라고 지적했다.
스페인의 이레네 몬테로 평등부 장관도 개인 SNS를 통해 "동의 없는 키스를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지 말라"며 "이는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폭력의 일환"이라고 비판했다.
루비알레스는 이후 "확실히 내가 실수를 했다. 순간적인 감정으로 어떠한 악의도 없이 즉흥적으로 일어났다. 당연한 일이라고 봤지만, 밖에선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상처받은 사람이 있기에 사과해야 한다"라며 사과 의사를 전했지만, 여론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사건이 점점 커지면서 FIFA도 해당 사건에 대해 조사하기로 나서자 루비알레스 회장은 곧 회장직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보도도 잇달았다.
FIFA는 "FIFA 징계위원회는 여자 월드컵 결승전에서 발생한 사건을 근거로 스페인왕립축구연맹 회장 루이스 루비알레스에게 사건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개시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해당 사건은 FIFA 징계 규정 13조 1, 2항을 위반하는 행위일 수 있다"라며 "FIFA 징계위원회는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진 후에 징계 절차에 대한 추가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라고 루비알레스 조사에 들어간다고 전했다.
FIFA까지 조사에 나서면서 사건이 커지가 스페인 '카데나 세르'는 "8월 24일부터 FIFA의 조사가 시작된 후 루비알레스 회장은 25일에 사임을 발표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루비알레스 회장은 사퇴 압박이 심해지자 태도를 바꾸며 선수를 공격하고, 적반하장의 태도로 나서기로 입장을 전환했다.
보도에 따르면 루비알레스는 자신의 행동이 에르모소를 위로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것은 자발적인 키스였다. 상호적이고 행복하며 합의된 키스였다. 그것이 핵심이다. 합의된 사실만으로 내가 이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며 사과를 번복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스페인축구협회가 에르모소를 조사하겠다고 나서며, 이번 논란은 루비알레스로 인해 더욱 큰 문제로 번지게 됐다. 이미 스페인 현지 팬들은 스페인왕립축구협회 본부 앞에서 루비알레스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까지 진행하는 상황에서 에르모소에 대한 협회의 조사는 팬들의 부정적인 감정만을 야기시킬 것으로 보인다.
일부 매체에 따르면 스페인축구협회는 성명과 함께 에르모소가 루비알레스 회장을 안아 공중으로 들어 올리려는 장면이 담긴 사진 4장을 첨부했는데, 에르모소가 루비알레스 회장을 들어 올리는 장면이 입맞춤에 합의했다고 보기에도 어려운 상황이다.
스페인축구협회는 최근 협회에 소속된 선수들이 루비알레스 회장에 반발해 대표팀 선발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에도 반박했다.
독일 매체 빌트는 "스페인축구선수협회에 따르면 협회 소속 선수 81명이 현 지도부 하에서 더 이상 대표팀 일원으로 뛰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23명의 여자 월드컵 챔피언들도 모두 포함됐다"라며 여자월드컵에 참여한 대표팀 선수들 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루비알레스 회장의 발언과 그의 행동에 사퇴를 요구 중이라고 밝혔다.
매체는 "레알 베티스의 공격수 보르헤 이글레시아스도 이에 대해 반발했다"라며 남자 선수들도 이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이글레시아스는 베티스 소속의 공격수로 비야레알, 셀타 비고, 에스파뇰 등 라리가 무대에서 오랜 기간 활약했으며, 지난 2022년 스페인 대표팀에도 차출된 경험이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글레시아스는 자신의 SNS를 통해 "슬프고 실망스럽다. 축구선수로서, 한 사람으로서 나는 스페인축구협회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 대표팀에 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동료인 루비알레스에게 집중을 가하는 것이 안타깝다"라며 이번 상황에 대한 협회의 대처에 대해 비판했다.
이어 "스페인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 것은 내 선수 경력에서 가장 큰 일 중 하나였다. 어느 시점에서 다시 선택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상황이 바뀔 때까지 대표팀에 복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런 종류의 행동은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더 공정하고, 인도적이며, 품위 있는 축구를 위해"라며 이번 스페인 대표팀 차출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글레시아스는 당초 루이스 데 라 푸엔테 스페인 대표팀 감독의 명단에 올랐었다.
이외에도 이케르 카시야스, 이스코 등 남자 선수들도 루비알레스의 행위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세르지 로베르토는 바르셀로나 여자팀 동료인 푸테야스의 성명에 동참한다고 밝혔으며, 바르셀로나 구단도 직접 성명을 발표해 루비알레스 회장의 행동을 비판했다.
협회는 이에 대해 에르모소와 23명의 여자대표팀 선수들을 포함한 80명이 넘는 스페인 여자 선수들이 루비알레스 회장이 사임하지 않는 한 대표팀 경기를 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 대표팀에 선발된다면 경기에 출전할 의무가 있다고 맞받았다.
법적 조치 이외에도 이번 사안이 계속해서 논쟁으로 이어지며,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서 관련 사안에 대한 결판이 날 가능성이 커졌다. 스페인왕립축구협회 내 상급스포츠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사건을 CAS로 올릴 것이다. CAS가 내 의견과는 관계 없이 사건을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적반하장의 태도로 스페인축구협회가 일관하며, 루비알레스 회장과 협회에 대한 논란이 더욱 증폭된 가운데, 축구계에서 계속된 비판을 받는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될지에도 많은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사진=AFP, EPA, 로이터/연합뉴스
이현석 기자 digh1229@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