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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최초 30-30, 적토마의 쾌속질주

기사입력 2006.05.14 02:00 / 기사수정 2006.05.14 02:00

윤욱재 기자


[프로야구 25년 특별기획- 나의 몬스터시즌 19] 1999년 이병규 

무너지는 LG의 유일한 희망

LG는 당초 우승을 목표로 잡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기 때문에 올해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은커녕 포스트시즌 진출에도 실패하면서 매직리그 3위로 주저앉고 말았다. 시즌 중반까지 타력으로 간간이 버티던 리그 2위 자리를 탄탄한 투수력으로 무장한 한화에게 빼앗기며 모든 꿈을 접어야 했다.

와르르 무너진 투수력도 문제였고 용병 타자들이 골치 꽤나 썩인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지만 덕아웃에서 부는 찬바람의 영향도 컸다. 시즌 전 연봉싸움으로 선수들과 갈등이 심했던 LG는 이 과정에서 김재현과 유지현을 차별대우해 뒤숭숭한 분위기를 만들고 말았다. 또 계약을 질질 끌었던 최향남과 갈등을 빚었고, 억지로 투수로 전향시킨 심재학이 시즌 말미엔 아예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그래도 LG팬들은 위안거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적토마' 이병규보는 재미. 이병규는 LG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병규는 200안타에 조금 모자란 192안타로 최다안타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 최고 타자의 반열에 올랐음을 온몸으로 입증했다.

이병규는 단국대 시절부터 '한국의 이치로'로 불리며 프로에 입문, 입단 첫 해 신인왕을 차지하고 2년차 징크스도 남의 얘기로 만들었다. 한국 최고의 교타자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였던 이병규는 투수와의 수싸움에서 투수가 던질 코스를 정확하게 파악, 안타로 연결하는 영리함을 보였다. 물론 안타를 잘 치는 거야 이해가 갔지만 홈런 개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건 하나의 미스테리처럼 보일 만큼 놀라웠다.

4월에만 홈런 8개를 기록하며 홈런 부문 선두권을 형성하던 이병규는 역대 최소경기 20-20 클럽 가입에 성공, 호타준족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이병규가 이렇게 홈런에 눈을 뜬 것은 웨이트 트레이닝에서 그 비결을 찾을 수 있다. 하체가 든든하게 받쳐주니 타격에 신바람이 나는 건 당연했고 자연스럽게 비거리도 늘어나면서 심심찮게 담장 밖을 넘기게 된 것이다.

이병규는 시즌 초 김한수(삼성)와 함께 4할 타율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4할 타율보다 200안타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홈런 개수도 늘어나자 30-30 클럽에 욕심이 나는 것도 당연지사. 정상을 향한 고독하고 힘겨운 싸움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쉬움 속에 접은 '200안타'

99시즌은 극심한 타고투저의 해였다. 날카롭게 돌아가는 타자들의 방망이와 용병 타자들의 화끈한 배팅으로 타격에 불이 붙은 것. 이것은 기록에도 영향을 미쳐 어느 해보다 풍성한 기록 잔치를 펼치게 된 도화선이 되었다.

먼저 이승엽(삼성)의 시즌 최다 홈런 도전에 야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됐고 이병규의 시즌 최다 안타 및 200안타 달성 여부에도 많은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이병규의 200안타는 상당히 희망적이었다. 최소경기 100안타를 달성한 이병규는 전반기에만 128안타를 생산, 산술적으로 200안타 이상이 가능했다. 이종범(주니치 드래곤즈)이 196안타를 때려냈던 94시즌과 비교했을 때 팀당 게임수가 132게임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후반기에 이병규는 전반기만큼 시원하게 방망이를 돌리지 못했다. 이병규는 200안타 달성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밝혔지만 사실 내심 30-30 클럽도 기대하고 있었다. 타석에서 안타든 홈런이든 하나만 노리고 들어가지 못한 것. 두 개의 목표를 모두 쫓다보니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이다.



윤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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