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무대를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는 K팝 시장이지만 '아이돌 정산' 문제 만큼은 답보 상태다. 아무리 업계 처우가 좋아지고 시스템이 개선된다고 해도 정산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면 갈등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뮤직 비즈니스 전문가들과 함께 K-아이돌 산업적 관점에서 정산 시스템 현주소와 문제점, 해결 과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김예나 기자) 최근 그룹 피프티 피프티 사태가 연예계를 넘어 사회적 이슈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데뷔 7개월 만에 빌보드 진입이라는 기적을 이뤘지만 불투명한 정산 등을 문제 삼으며 소속사 어트랙트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외부 세력 개입 정황과 저작권 분쟁 등까지 불거지며 가요계 전례 없는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번 피프티 피프티 사태에서 '정산' 문제를 두고 여러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유명 아이돌들도 "n년 만에 정산 받았다"라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죽하면 최근 한 유튜브를 통해 그룹 오마이걸 미미도 '예능 대세'로 활약하는 이제서야 통장에 돈이 들어온다면서 "8년 만에 버는 것"이라 밝혔을까.
엑스포츠뉴스는 피프티 피프티 사태뿐 아니라 고질적으로 이어온 '아이돌 정산' 문제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남승호 서울호서예술실용전문학교 K팝 계열 교수 겸 음악 프로듀서, 황가람 음악 프로듀서 겸 CH1496 스튜디오 대표와 인터뷰를 가졌다.
남승호 교수는 밴드 스픽아웃과 솔로 앨범 등 음악 활동을 펼쳤으며 현재 작사, 작곡, 편곡, 믹싱 등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더불어 수많은 음악 페스티벌 및 방송 무대 경험을 지닌 베테랑 뮤지션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황가람 음악 프로듀서는 밴드 피노키오 보컬로 활동 중이며 각종 앨범 제작 및 프로듀싱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15년 이상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크고 작은 기획사에서 보컬 트레이너 활동을 펼치고 있다.
크고 작은 정산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K팝 시장에서 '아이돌 정산' 문제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접근하게 된다. 중소 기획사든 대형 기획사든 일단 정산 갈등이 생겨난 '시점(timing)'에 집중하고, 그 기간 동안 얼마나 '투자'했는가를 따진다. 분명 한 배를 탄 기획사와 아이돌이지만, 정산 앞에선 철저하게 갈라진다.
◆ "얼마면 돼?" VS "얼마나…줄 수 있는데요?"
지금도 많이 회자되는 드라마 속 대사처럼, 결국 '얼마'를 두고 기획사와 아이돌은 다투게 된다. 그런데 그 '얼마'를 따지기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결국 다 '돈'이기 때문.
"트레이닝 비용, 곡비, 뮤직비디오 제작, 헤어·메이크업 비용, 이동비, 숙소 등등 굉장히 많은 항목을 두고 기획사와 아이돌은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기획사 입장에서는 아이돌 제작을 위해 사용하는 돈이기 때문에 '투자' 개념이지만 사실 아이돌 입장에서는 이 모든 비용을 떠안는 느낌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이를 두고 '빚'이라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황가람)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준다고 했을 때도 어떤 선생님에게 얼마 동안 레슨을 받고, 그룹 형태인지 개인 형태인지에 따라 들어가는 돈이 천차만별이다. 숙소, 이동 차량 등등 모든 항목에 따르는 비용은 천차만별 다르다." (남승호)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고생해서 만들어가는 것인지, 아이돌을 위해 기획사가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것인지 다른 개념.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갈등이 발생하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다.
◆ "결국 사람이 하는 일"
두 사람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제작비 0원으로도 아이돌 그룹 만들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결정적으로 '인건비'가 가장 중요하다는 설명. 엔터테인먼트 산업, 조금 더 좁게 봤을 때 가요계는 '품앗이'가 이뤄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숙련된 전문가들이 서로 최대한 도움을 주고받으면 얼마든지 아이돌 그룹 제작이 가능하다 내다봤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 아닌가. 서로 서로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기꺼이 돈을 받지 않더라도 함께할 수 있다. 실제 저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아이돌들의 보컬 트레이닝을 무료로 해주고 있다. 내가 이 친구의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다는 타이틀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기 때문이다." (황가람)
◆ "잊지마! 계약서"
불과 얼마 전까지도, 아니 어쩌면 현재까지도 업계의 관례처럼 주먹구구식 정산이 이뤄졌다는 설명. 더 이상 날림으로 계약서 쓰고, 어영부영 사인하던 시절은 없다.
"암묵적으로 좋게 좋게 넘어가던 시절은 지나갔다. 처음부터 확실하게 계약서를 검토하고 정산 세부 내용을 정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계약서라는 것은 좋을 때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다. 분쟁이 일어나고 최악으로 치닫았을 때 방패와 창이 되는 것이다." (남승호)
"요즘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계약 부분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다. 대형 기획사 소속 연습생들은 처음 계약서 쓸 때부터 부모님이 세무사나 변호사를 끼고 이야기한다. 대형 기획사들도 한 번에 사인하지 말라고 한다. 천천히 살펴 본 뒤 사인해야 탈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황가람)
◆ "아이돌 제작=돈의 전쟁"
이렇게 지지고 볶고 싸우도 다투는 모든 배경은 결국 '돈'이다. 투자를 못 받고, 제작비가 없고, 정산 과정이 의심스럽고… 이 모든 과정에서 금전적으로 모두 만족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그래서 두 사람은 "돈이 있는 대형 기획사가 아이돌을 제작해야 한다"라고 공통된 의견을 내놓았다. 물론 단순히 '돈'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각 분야 숙련된 전문가들의 '맨파워'도 중요하고, 좋은 음악과 환경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결국 이 모든 요소 역시 '돈'이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돌은 애초에 중소 기획사에서 다룰 수 없는 상품이라고 본다. 중소 기획사에서는 아이돌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돌 시장은 대형 기획사가 제작하는 게 맞다. 그렇게 대형 기획사에서 해도 될까 말까 한 것이 아이돌이다." (황가람)
"방탄소년단(BTS)의 성공 스토리가 많은 울림을 준 것은 사실이다. 이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K팝이 뻗어나가 아이돌 시장이 커진 것도 맞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중소 기획사들이 손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는 K팝 아이돌 업계가 철저하게 비즈니스가 되었기 때문에 보다 확실한 자본과 시스템, 계획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남승호)
([아이돌 정산 뭐길래 ②]에서 계속)
사진=개인 사진, 엑스포츠뉴스 DB
김예나 기자 hiyena07@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