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1.05.22 10:23 / 기사수정 2011.05.22 10:23
[엑스포츠뉴스=김준영 기자] 누구도 이렇게 잘 던질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21일 대구 삼성-두산전. 양팀 선발 투수들이 나란히 부진한 투구를 선보이며 경기 중반 뒤죽박죽 난타전이 벌어졌다. 결국, 연장전에 돌입했고 두산은 정재훈에게 9회부터 연장 12회까지 4이닝을 맡기는 초강수를 뒀다. 구원 4이닝 소화가 흔치 않은 일이지만, 3연패 중인 두산의 '내일은 없다'식의 마운드 운용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선발 장원삼의 부진투에 이어 안지만 권오준이 연이어 실점해 리드를 지키지 못한 삼성은 꽤 당혹스러운 입장이었다. 일단 류중일 감독은 7-7 상황서 9회 마무리 오승환 카드를 뽑아들었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수순.
하지만, 10회 류 감독은 깜짝 마운드 운용을 선보였다. 안지만과 권오준을 소모한 상황서 오승환으로 더 길게 끌고 갈 수 있었음에도 이우선을 투입했다. 그리고 이우선은 무려 3이닝을 던졌다. 연장전을 홀로 책임진 것. 최근 4연승을 달리고 있지만 이날 전까지 연장전 무승(1무 1패)의 삼성이 사실상의 패전 처리 투수 이우선의 연장전 투입은 누가 봐도 무리수였다. 더군다나 두산 마운드에는 올 시즌 최고 피칭을 선보인 정재훈이 올라있는 상황.
그러나 이우선은 정재훈에 맞서 연장전 3이닝 동안 11타자를 상대로 1피안타 2사사구로 막아냈다. 홈플레이트 모서리로 꽂힌 직구는 두산 타자들이 쉽게 공략하지 못했고, 커브 궤적과 슬라이더 등 변화구는 홈 플레이트에서 오른손 타자 바깥쪽으로 뚝 떨어지며 두산 타자들의 타이밍을 흐트렸다.
본인의 뒤에는 누구도 대기하지 않았고, 경기 상황은 동점인데다 상대 마운드에는 최고의 구위를 과시한 정재훈이 있었지만 심리적인 동요도 전혀 없었다. 퀵 모션이 다소 느린 게 단점이지만, 10회 2사 후 몸에 맞는 볼로 나간 정수빈을 도루자로 잡아냈고, 12회에는 선두 타자 최준석에게 안타를 맞은 게 빌미가 돼 2사 1,3루 위기에 닥쳤으나 손시헌과 고영민을 범타로 처리하며 균형을 지켜냈다.
사실 이우선은 유난히 두산에 좋은 기억이 있다. 2009년 신고선수로 입단한 그는 그해 6월 28일 잠실 두산전서 5이닝 2실점으로 프로 데뷔 첫 승을 따냈다. 작년에는 두산전에 무려 8경기에 출장해 16⅔이닝을 5실점으로 막아내며 평균자책점 2.70을 기록 한 바 있다. 아직 개인 통산 3승뿐이라 데뷔전 승리와 작년 호투가 그를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이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우선의 이날 호투는 정현욱, 오승환을 아끼면서 차후 경기를 대비할 수 있게 된 삼성 불펜에 큰 도움이 됐지만 그보다 이우선이 스스로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됐다는 것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이우선은 올 시즌 꾸준히 1군에 머물렀지만 워낙 두터운 삼성 1군 투수층 속 선발과 필승조 어디에도 자리하지 못한 채 패전처리로 기용되고 있었다, 지난 2년간 몇 차례 부여받았던 임시 선발의 기회조차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우선은 올 시즌 아직 승, 패, 홀드, 세이브 등의 기록도 없다. 0승 0패 0홀드 0세이브.
심지어 팀내 최고의 유망주 정인욱이 선발 수업을 위해 그간 1군과 2군을 전략적으로 오갔던 것도 알고 보면 이우선이라는 추격조 투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필승조 투입이 애매한 시기에 나올 수 있는 이우선이 없었다면 삼성은 결코 정인욱을 선발로 육성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우선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법했지만 이날 류 감독의 신뢰를 확인했고, 동시에 대구 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떨쳤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3이닝 역투였다. 무승부로 끝나는 바람에 또다시 아무런 기록도 얻지 못했지만 마운드에서 기록보다 더 깊은 아우라를 발산했다.
[사진=이우선 ⓒ 엑스포츠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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