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1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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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섭 ‘잘 가세요.’

기사입력 2005.05.24 12:01 / 기사수정 2005.05.24 12:01

안희조 기자
 

박진섭 ‘잘 가세요.’


울산의 박진섭

 프로축구 울산 경기에서는 경기 막바지, 울산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오면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있다. 바로 ‘잘~가세요! 잘 가세요~~’라는 노래. 패배를 안게 될 원정팀 선수들과 써포터들에게 울산 써포터들이 불러주는 위로의(?) 메시지이자 더 실점 없이 리드를 지키려는 승리의 주문이다.


 지난 일요일(22일) 울산과 전북의 경기에서도 울산의 1-0리드가 지속된 채 경기가 로스타임에 접어들자 어김없이 ‘잘~가세요!’는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날의 ‘잘 가세요’는 패배를 한 전북선수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울산의 꾀돌이 미드필더 ‘박진섭’! 그 역시 이 노래를 들으며 울산을 떠나야 할 선수였다.

 이날 울산과 전북의 경기는 성남으로 이적이 확정된 박진섭이 울산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나선 마지막 경기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시절 좌영표-우진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맹활약 했던 박진섭은 고려대 졸업 후 바로 상무로 진출했고 2002년 울산에 입단을 하며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울산에서 네 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올해까지 박진섭은 ‘꾀돌이’라는 별명답게 재치 있는 축구센스와 부지런한 활동으로 공수 양면에 걸쳐 맹활약을 펼쳤다. 네 시즌동안 쌓아 온 기록은 총 116경기 출전 3득점 14도움, 경기 출전 수에서도 알 수 있듯 박진섭은 울산에 있어서는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주전미드필더였다.


이제는 성남맨이 되어...

  사실 박진섭은 울산에게 있어 단지 기량이 뛰어난 선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98년 아쉽게 우승컵을 놓친 뒤 울산은 주전들의 노령화와 세대교체 실패로 꾸준한 하향세를 그려왔다. 그러던 울산이 2002년부터 팀 전력강화에 다시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 해 이루어진 박진섭, 이천수, 현영민 등의 영입은 그 시발점이었다. 그 후 꾸준히 울산의 오른쪽 미드필드 자리를 지키며 팀을 이끈 박진섭은 지난 시즌 주장완장까지 받으며 전력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에서 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었다. 울산 팬들에게 있어 박진섭은 김현석 이후 울산을 대표하는 ‘레전드’가 될 선수였고 ‘박진섭 없는 울산’은 상상하기 힘든 그림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앞일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영원한 ‘울산맨’으로 남을 것만 같았던 박진섭이 성남으로 이적한다는 발표가 난 것. 이적은 피스컵을 대비해 전력을 강화하려는 성남 구단의 의지와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축구 인생을 시작하려는 박진섭의 의사가 맞아떨어진 결정이었고 울산구단은 이적을 원하는 본인의 의사를 억지로 막지는 않았다.

 이적이 결정 된 후 박진섭은 구단홈페이지와 써포터 처용전사 홈페이지에 글을 남겨 이적을 하게 된 입장과 그동안 보내준 성원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유종의 미

 울산의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나선 마지막 경기, 자신의 의사를 수용해 준 울산구단과 그동안 많은 성원을 해주고 자신의 이적에 많은 아쉬움을 나타낸 팬들을 위해서라도 박진섭은 열심히 뛰어야만 했다. 그리고 90분간 출전 해 팀의 소중한 1-0승리를 이끌며 울산선수로서의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경기가 끝난 후 처용전사와의 이별의 자리, 처용전사는 헹가레로 그동안 울산에서 최선을 다 해 뛰어준 소중한 선수를 반겨주었고 박진섭은 감사의 인사와 함께 정든 자신의 유니폼을 선물하며 작별의식을 치렀다.


 아쉬움, 그리고 고마움

 팬들과의 인사가 끝난 후 박진섭의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며 북받치고 있었다. 그는 ‘울산에 우승을 안겨주지 못하고 시즌 도중에 팀을 떠나는 점이 너무 아쉽고 미안하다. 내 의사로 이적을 결정했지만 울산을 떠난다고 하니 섭섭한 마음이 많이 든다.’며 첫 운을 뗐다.


“우승을 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고요, 그렇지만 팀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4년 동안 정말 즐겁게 운동했습니다. 동료선수들이 제가 갑자기 가서 처음엔 너무 아쉬워했는데요, 나중에는 다 열심히 하라고 반겨주고 응원해 주더라고요. 성남 선수가 되어 울산을 만나면 제가 헷갈려서 아마 울산 선수들한테 패스 할 거 같아요. 지나가는 소리로 오늘 송별회 하자고 하던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울산의 선수로서 보낸 시간들, 박진섭에게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좋은 추억들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아쉬움을 두고 울산을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역시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컵대회 막바지쯤에 처음으로 오퍼가 들어왔어요. 그리고 한 5일 정도 고민하다가 어렵게 결정 내렸습니다. 제 축구인생에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되었고 더 늦으면 어렵겠다고 생각 되었어요. 성남에서 좋은 활약 이어가다가 은퇴하기 전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외에 진출해서 다른 경험도 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국가대표에 대한 미련은 없어요. 그저 프로선수로서의 생활에 충실할 생각입니다.” 

 이제 성남 유니폼을 입게 되면 박진섭은 7월 달에 벌어질 피스컵에 출전하게 된다. 아인트호벤, 올림피크 리옹, 온세 칼디스 등 쉽게 접하기 힘든 명문 클럽팀들과 경기를 펼치게 되는데 그에 대한 각오를 들어봤다. “저로서는 큰 영광입니다. 한 수 배운다는 각오로 경기에 나서야 될 거 같아요. 하지만 선수는 자신보다 잘하는 선수들이랑 뛰어야 실력이 늘어요. 그런 의미에서 좋은 경험이 될 거 같구요. 좋은 기회에서 열심히 뛰도록 하겠습니다.”



 박진섭의 이적이 발표되자 구단 게시판은 박진섭의 이적을 반대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그만큼 박진섭에 대한 울산팬들의 애정이 강하다는 증거였다. 프로선수로서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명제, 바로 ‘팬’이다. 울산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박진섭의 목소리에는 짙은 아쉬움과 고마움이 배어 있었다. “여러분들의 글에 답변을 달았어요. 구단 홈페이지랑 처용전사 게시판에... 구단에서 내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제 의사로 가게 되었는데 좋게 가는 것이니 만큼 죄송하지만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4년 동안 항상 잘하나 못하나 격려해주고 응원해주신 것 너무 감사드리고요, 어디에 있던지 울산 잊지 않고 생각하며 지내겠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박진섭은 경기 다음 날인 23일, 성남으로 떠났다. 24일 매디컬 테스트를 받은 그는 이제 울산의 박진섭이 아닌, 성남의 박진섭으로 태어나 새로운 축구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그의 어려운 선택을 울산 팬들은 축복과 성원으로 받아주었다. 관중들이 빠져나가고 스산한 기운이 감돌 때 까지 경기장에서 들리던 ‘박진섭’의 외침들은 팬들의 그에 대한 끝없는 성원을 증명한다. 이제 성남의 노란 유니폼을 입게 될 박진섭, 또 다른 그리고 더 좋은 선수로 거듭나 경기장에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만이 마지막까지 그를 성원해주던 팬들에 대한 보답이 될 것이다.



안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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