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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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또 컴백] 굴곡 많은 한화 용병史

기사입력 2005.05.20 09:50 / 기사수정 2005.05.20 09:50

윤욱재 기자

결국 올해도 되풀이되고 말았다.

한화 이글스가 용병 타자 마크 스미스를 방출하기로 결정하고 한국야구에 잔뼈가 굵은 틸슨 브리또를 영입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용병 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이 땅에 용병 제도가 도입된 후 무수한 선수들이 한화 유니폼을 입었지만 성공작으로 꼽히는 선수는 제이 데이비스와 댄 로마이어, 브랜든 리스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용병 영입에 큰 재미를 못봤던 한화. 그만큼 얽히고 설킨 사연도 많다.

그 사연의 출발선은 당연히(?) 용병 도입이 결정된 첫 해(1998년)부터 시작된다. 역대 용병 드래프트(현 자유계약제 시행) 1순위의 주인공이자 오른손 거포였던 마이크 부시와 공격형 유격수로 점찍은 조엘 치멜리스를 선발, 주위의 엄청난 기대를 모았으나 용병 선수라 하기에 초라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고 팀은 용병도 없었던 쌍방울에 밀려 7위로 주저앉고 말았다.

'홈런왕 1순위'였던 부시는 변화구 공략에 혼란을 겪고 한국 문화에 적응을 못했으며, 부상까지 당해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짐을 꾸려야했고 그나마 치멜리스는 막판 분전으로 타율을 2할 8푼대까지 끌어올렸지만 옆동네에선 홈런 신기록(타이론 우즈, OB)을 세우고 15승 투수(스캇 베이커, 삼성)가 나오는 바람에 재계약 대상자로 선정될 수 없었다.

한편 2001년엔 6명의 용병 선수를 그라운드에 내보내는 '엽기'를 선보였던 한화는 그 후 많은 한화팬들의 추억(?) 속에 담겨진 '방화범' 레닌 피코타와 '8번타자' 로베르토 메히아, 이쑤시개 사건의 주인공 앙헬 페냐 등 성적보다 일화로 더 화자되는 선수들을 배출(?)하면서 한화는 용병과 관련된 에피소드하면 처음으로 떠오르는 구단이 되었다.

물론 성공의 시간도 있었지만 그것은 단 한 시즌에 불과했다. 바로 한화가 V1을 달성했던 99년. 

한화는 중심타선에 파워를 배가하기 위해 댄 로마이어를 1순위로 지명하고 발 빠른 1번타자감으로 제이 데이비스를 2순위로 선택했다. 그런데 이들은 엄청난 괴물이었다. 로마이어의 타구는 연신 대전구장의 허공을 가르면서 역대 용병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45개)을 세웠고 데이비스는 발만 빠른 것이 아니라 정확도와 파워를 갖춘 3번타자로 활약, 30-30 클럽에 가입하며 한화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절대적으로 공헌했다.

2000년, 두 선수 모두 재계약에 성공했고 이 때 데이비스는 여전히 꾸준한 활약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반면 로마이어는 한국야구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와 불같은 성격을 표출하며 결국 '굿바이'를 선언하고 말았다. 로마이어는 다음해 LG에서 뛰다 김성근 감독 눈 밖에 나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용병 선수의 실력과 성적을 떠나 항상 '화젯거리'를 만들었던 한화. 용병 제도를 통해 득보단 실이 많았고 그 때문에 팀 성적도 굴곡이 심했다. 결국 올해도 용병 스미스를 교체하고 말았지만 새로 영입한 브리또가 예전에 보여줬던 기량을 다시 선보일 수 있다면 분위기 전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몸 상태만 완벽하면 말이다.

일단 브리또는 한국 무대에서 전성기를 보냈던 포지션인 유격수로 컴백하고 복잡했던 외야라인이 고동진-데이비스-김인철로 정리되면서 더욱 견고한 타선과 내야 수비를 구축할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올해도 칼을 빼든 한화. 과연 브리또는 한화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될까? 어떤 선수로 기억되느냐에 따라 한화의 운명도 달라질 것이다.

엑스포츠뉴스 윤욱재 기자
사진 / 구단 홈페이지



윤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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