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고척, 윤승재 기자) “정규시즌이랑 가을야구요? 다른 거 하나도 없습니다.”
프로야구 1년차, 만 19세의 어린 투수에게 첫 가을야구 무대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처음 겪어보는 큰 무대, 팀의 명운이 달려있다는 생소한 중압감에 두려움부터 앞서지 않았을까. 하지만 KT 위즈의 신인 투수 박영현은 달랐다. 17일 경기 전 만난 박영현은 오히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정규시즌과) 다른 거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박영현에게 올 시즌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1차 지명으로 KT 유니폼을 입은 박영현은 시즌 초부터 이강철 감독의 믿음 아래 일찌감치 1군 경험을 쌓았고, 오랜 기간 승, 패, 홀드, 세이브 기록 없이 이닝이라는 값진 경험을 쌓아가며 성장을 거듭했다. 그렇게 박영현은 52경기 0승1패 2홀드 평균자책점 3.66이라는 인상적인 기록을 남기고 프로 첫 정규시즌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가 얻은 것은 기록표에 새겨진 숫자만이 아니었다. 경험으로 체득한 경기 운영 방식과 담대한 마음가짐 등 숫자에 기록되지 않은 값진 경험들이 박영현에겐 자양분이 됐다. 여기에 창단 최하위부터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모두 겪은 경험 많은 투수 선배들의 경험담과 조언은 그저 어리기만 했던 박영현의 성장을 돕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시즌 초반의 저는 ‘어리석음’ 그 자체였어요.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화가 났고 좋았던 폼을 기억하는 것보다는 폼을 바꾸려고 애썼죠. 하지만 선배들이 그럴 때마다 많은 이야기를 해줬어요. ‘지금 안 좋은 건 컨디션이나 사이클 때문이다. 좋았던 모습이 분명 있는데 왜 스스로에게 혼란을 주려고 하냐. 일희일비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갔으면 좋겠다’라고 하셨죠.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죠(웃음). 정말 큰 힘이 된 것 같아요.”
이렇게 시즌 내내 정신무장을 거듭해 온 덕일까. 박영현은 데뷔 첫 가을야구 무대에서도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지난 16일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첫 가을야구 무대를 밟은 박영현은 비록 단 한 타자만 상대하고 내려왔지만, 강타자 이정후를 투수 앞 땅볼로 잡아내면서 기분 좋은 가을야구 출발을 알렸다.
“(이)정후 선배가 정말 강한 타자라서 긴장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하지만 그럴수록 ‘그저 한 경기’, ‘한 타자’라는 걸 되뇌면서 공을 던졌죠. 다행히 결과가 좋아서 자신감을 찾은 것 같아요. 물론 처음이다 보니 긴장이 아예 안 된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정규시즌과 다를 것 없는 하나의 경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사실이에요. 시즌 내내 선배들이 계속 말씀해주신 덕에 가을야구에서도 정신무장이 잘 되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정신무장을 잘 시켜준 선배들 덕분이라지만, 사실 박영현의 멘탈은 입단 때부터 남달랐다. 시즌 중 인터뷰에서도 “‘신인이니까’라는 말이 제일 싫다”라며 핑계를 대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강철부대’ 선배들의 조언과 함께 더 강력한 ‘강철멘탈’로 거듭났다. 신인인 그가 중압감이 센 가을야구에서도 웃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박영현은 2차전에서 2이닝 무실점 완벽투를 펼치며 'KBO리그 포스트시즌 최연소 세이브‘라는 타이틀을 수확했다. 다시 만난 이정후를 상대로 3구 연속 직구를 꽂아 넣는 담대함으로 팀의 승리를 지켰다. 경기 후 이강철 감독은 “제일 믿을 수 있는 투수라고 생각했다.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아는 투수로, 앞으로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영현의 재발견이 큰 수확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신인의 2점차 2이닝 세이브 활약. 사실 '강철 멘탈'을 자랑하던 박영현도 긴장은 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아직도 손이 떨린다"라고 할 정도. 하지만 그의 장점은 캠프 때부터 강조해 온 '포커 페이스'다. "긴장은 했지만 표정에 드러내지는 않으려고 한다"라고 말한 그는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환하게 웃으며 감독 및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렇게 박영현은 준플레이오프의 난세 영웅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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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재 기자 yogiyoon@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