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1.03.15 15:25 / 기사수정 2011.03.15 15:29
[엑츠기자단=최재훈] 경기장을 찾은 소수의 팬, 10여명이 채 되지 않는 서포터즈, 몇 대 안되는 방송 카메라, 저조한 언론의 관심. 조기축구회도 아니고 동남아 등지에 있는 군소 리그 소속 프로팀 이야기도 아니다. 바로 내셔널리그의 이야기이다.
K리거들의 아시안컵 활약상으로 인해 K리그가 전체적으로 흥행 분위기를 이어나가고 있는 가운데 내셔널리그는 상위리그라 할 수 있는 K리그를 부러운 눈을 바라보며 2011년 새 시즌을 시작했다.
지난 3월 5일과 6일에 시즌 개막을 알리며 역대 1라운드 최다 관중과 함께한 K리그. FC서울과 수원 블루윙즈의 경기에 수많은 관중들과 언론들의 관심이 집중 되었다는 이야기 등은 내셔널리그 관계자들에게는 먼 나라의 이야기 같았다.
관중이 없어서 썰렁한 경기장, 경기장에서 내지르는 선수들의 고함소리가 다 들려올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에서 치러지는 경기. 내셔널리그 울산미포조선돌고래와 부산교통공사간의 경기는 그렇게 1000명이 채 안되는 관중들과 함께 새 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무관심 속에서도, K리그에 비해 보잘 것 없는 환경에서도 내셔널리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매력을 느끼고 매번 경기장을 찾는 이들이 있었다. 2011 내셔널리그 1라운드 울산과 부산 간의 경기가 열린 울산 종합운동장에서 이들이 내셔널리그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 몇 가지를 알아보았다.
1. 조용해서 좋다?
내셔널리그에 대해 물으면 다수의 사람들은 "에이 경기도 재미가 없고 말야. 관중도 없다며? 그럼 분위기가 별로잖아. 그런 곳에 뭐하러 가?"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이날 가족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한 시민은 "시끄럽지 않아 가족들과 소풍나들이 하는 기분으로 경기장에 들렀다"며 "경기장이 조용하니까 가족들끼리 경기 보면서 평소에 못다 한 이야기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같은 경기장을 보면서도 기자는 "에이 무슨 경기장이 이렇게 썰렁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경기장이 조용해서일까? 남자친구 손에 이끌려 와서 쿨쿨 자는 관중도 보인다. 축구를 좋아하는 남자친구 기분에 맞춰주고 자신은 모자란 잠도 보충하는 1석 2조의 효과를 이곳에서는 만들 수 있다.
평일 밤에 경기가 열렸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주로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경기가 열린다. 따뜻한 토요일 오후에 가족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아 그간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눠보자.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도시락과 함께 가족들과 즐기는 축구장. 내셔널리그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2. 싸인볼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경기장을 찾는 사람들이 꼭 받고 싶어 하는 것은 공짜 기념품이다. 싸인볼은 그 중에서도 단연 인기가 으뜸이다. 종목을 불문하고 인기만점인 싸인볼은 축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선수들이 경기 전 차주는 싸인볼은 어지간해선 받기가 힘들다. 수많은 관중들과 몸싸움을 해가며 받아야 한다. 하지만 내셔널리그에서는 다르다.
싸인볼을 안간힘을 다해 잡으려 노력하던 한 시민은 "작년에도 몇 개 갖고 갔었다"면서 껄껄 웃었다. "오늘은 개막전이라 사람이 좀 왔지만, 평상시에는 요만큼도 안온다. 그래서 싸인볼 얻어가기가 더 쉽다. 이거 받아가는 재미로 가끔 축구 보러 온다"고 말한다.
그간 K리그에서 사인볼을 얻지 못해 속을 졸였던 그대! 사인볼을 받고 싶다면 내셔널리그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으로 가 볼 것을 권한다.
3. 경기가 재미있다?
이날 부산교통공사를 응원하러 울산까지 온 축구팬 김영만(26·학생)씨는 "내셔널리그의 묘미는 후반전이다. 경기 보러 왔다가 전반전만 보고 나가면 후회한다"고 말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K리그와는 다르게 내셔널리그에서는 선수들이 후반전에 지치는 모습을 자주 연출한다. 그러다보니 전반전에서는 호각세를 다투다가도 후반전만 되면 공간이 많이 생겨 득점 찬스가 나고 골이 많이 터진다"고 답했다.
그의 말대로 후반전이 되자 양팀 모두 전반전에 비해 기회를 많이 연출해 냈다. 부산교통공사가 골대를 맞추는 슛을 때리는 등 전반전에 비해 좋은 장면들이 더 많이 나왔고,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의 탄식도 전반전보다 많이 나왔다.
4. 가족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수원 삼성이나 FC서울과 같은 거대 서포터조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가족적인 분위기를 내셔널리그에서는 느낄 수 있다.
울산 미포조선 돌고래의 서포터인 김현진(39·회사원)씨는 "같이 밥도 먹고 서로 알고 지내니까 안부도 묻고, 그렇게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모여서 서포팅한다. 언제든지 누구나 환영한다.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선수들과 주말마다 공도 차고 하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팀과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고양 팬들 역시 선수들과 가족같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부산 팬인 김씨는 "SNS를 이용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경기를 보러 온다"며 "오늘처럼 중요한 경기이거나 울산, 부산, 김해 등 비교적 가까운 지역에서 열리는 경기는 거의 원정을 온다. 대부분이 서로 알고 같이 움직이니까 심심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5. 사라져가는, 채 꽃을 피우지 못한 선수들을 볼 수 있다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내셔널리그로 돌아온 선수들과 K리그에서 적응하지 못해 내셔널리그에 발을 들여놓은 선수들. 듣도 보도 못한 선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K리그에서 이름을 날린 선수들도 있다.
올해 내셔널리그 소속 팀들이 영입한 56명의 전직 K리거들 중 월척은 단연 대전이 영입한 고기구 선수. 이날 울산 종합운동장에서 맞붙은 두 팀 선수단에도 K리거 출신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김상록, 김효일, 최병도, 최기석, 서민국 등이 바로 그렇다. 이날 일부 관중들은 김상록을 보며 "K리거의 실력을 보여줘!"라고 외치기도 했다.
실력 저하로 인해 내셔널리그에 안착했다가 회춘해 K리그로 다시 돌아간 사례도 있는데, 울산 소속의 정유석 골키퍼가 가장 대표적이다. 10년 넘게 K리그에서 뛰었지만, 나이로 인한 기량저하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러 내셔널리그로 돌아갔다.
결국 강릉에서 수차례 선방을 날리며 작년 내셔널리그 최고 골키퍼가 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의 활약상은 다시 K리그로 복귀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고, 지난 K리그 2라운드 경남과의 경기에서 자신의 복귀를 만방에 알렸다.
6. 미래의 스타를 남들보다 미리 볼 수 있다
재작년과 작년, K리그를 보며 우리가 환호했던 한 선수는 '괴물'이라 불리며 내셔널리그에서 한 가닥 했었던 선수였다. K리그에 데뷔한 첫해,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 선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색한 드라마도 나왔었다.
이 선수는 누굴까? 그렇다. 강원FC의 김영후다. 내셔널리그에는 김영후의 경우처럼 K리그에 올라와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숨은 진주가 많다. K리그 구단들이 줄기차게 내셔널리그 선수들을 영입하고 테스트해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내셔널리그 출신 선수들 중 제 2의 김영후에 가장 근접한 선수는 이재민이다. 내셔널리그 울산에서 뛰었던 이재민은 작년 7월 내셔널리그에서 J리그로 직행했다. 지난주에 열렸던 J리그 개막전에서 후반 74분 교체 투입되어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선수다.
수많은 선수들이 매년 내셔널리그에서 K리그로 건너간다. 일부는 높은 벽을 실감하며 다시 내셔널리그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성공하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강원의 창단과정에서 K리그에 안착한 안성남, 유현 등은 팀 창단 이후 꽤 좋은 활약을 펼치며 신생팀 반란을 주도했다.
무명 생활을 거듭하다 작년 이범영과 치열한 주전 경쟁을 펼친 부산 아이파크의 골키퍼 전상욱도 내셔널리그를 거쳤다. 올해도 많은 내셔널리거들이 K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이들 중 김해시청에서 울산 현대 호랑이로 이적한 이경식과 수원시청에서 광주 FC로 이적한 박병주가 축구팬들에게 크고 작은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내셔널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중에서는 부산교통공사에 소속된 이용승이 가장 돋보인다. K리그 경남에 있다가 내셔널리그 부산으로 온 이용승은 작년 내셔널리그 베스트 11에 뽑혔고, 현재 K리그 재진입을 위해 칼을 갈고 있다.
7. 국제화를 체험할 수 있는 내셔널리그?
영어 잘 하는 학생으로 키우기 위해 비싼 돈 들여 영어마을에 보내고, 해외로 보낼 필요가 없다. 내셔널리그 경기장에 보내면 만사가 해결된다. 축구선수를 꿈꾸고, 박지성, 이청용 선수처럼 국외에서 선수생활을 꿈꾼다면 더더욱이 내셔널리그 경기를 보러 경기장에 오길 권한다.
특히 부산의 경우는 100% 믿고 맡길 수 있다. 부산에는 영국, 미국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 팬들이 있는데, 이들 중 대부분이 원정까지 쫒아오는 열혈 팬이다. 부산의 한 팬은 고향 축구팀과 팀 컬러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열혈팬을 자처하고 있다.
경기장 와서 이들과 친해진다면 영어실력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지사. 국제학교 등에 소속된 영어 강사들이 이들 틈에 속해 있다고 하니 귀가 솔깃하지 않은가? 이들과 같이 경기장에 다니면 축구와 관련된 영어는 물론 일상 생활영어까지 빠삭하게 할 수 있는 글로벌 한국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8. 유럽처럼 승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아시아축구연맹의 권고에 따라 한국축구는 승강제를 도입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사실 이전에도 몇 번 승격 시도가 있었다. 승격을 시도한 주인공은 울산미포와, 고양 국민은행이었다. 고양과 울산은 승격 조건이었던 내셔널리그 우승을 이뤄놓고도 승격을 포기했다.
하지만, 2013년이 되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AFC의 반 강제적인 권고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KPL을 새로이 만들어 KPL과 K리그간의 승강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가지만, K리그와 내셔널리그 간의 승강제도 검토되고 있다. KPL이 생기더라도 K리그에 내셔널리그 구단 중 일부가 참가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게임에서 자신이 운영하던 팀이 상위리그에 승격하면 매우 뿌듯하다. 하물며 자신이 응원하는 실제 축구팀이 승격한다면 그 기분은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부터 내셔널리그 팀을 하나 정해 응원해보자.
2013년은 그리 먼 훗날이 아니다. 유럽 축구팬들처럼 승격의 기쁨을 누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 내셔널리그에서 내가 응원할 팀을 찾으면 된다.
9. 공짜라서 더 즐거운 내셔널리그?
내셔널리그에 끌리는 이유는 이밖에도 많이 있지만 그 중 단연 으뜸은 '공짜'였다. 부담스럽지 않게 가족들끼리 산책하다가 경기장에 들어와서 경기보고 나갈 수 있고, 시간은 어떻게든 때우고 싶은데 돈이 없는 이들에게도 좋은 볼거리가 된다.
운이 좋으면 유니폼도 공짜로 얻을 수 있다. 이날 경기장에서 미포를 응원하던 한 외국인 팬은 한 서포터로부터 공짜로 유니폼을 얻었다. 경기가 끝난 후 "얼마냐?"고 묻던 외국인은 "공짜"라고 말하는 서포터의 답에 쾌재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에 또 오겠노라고 공언하면서 말이다.
현재 내셔널리그 연맹에서는 장기적인 플랜을 놓고 입장료 유료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공짜일 때 어서 가서 보자! 대한민국 어디서 프로급 축구 선수들의 경기를 공짜로 볼 것인가? 세일기간이 끝난 후 백화점에 가면 말짱 도루묵이다.
10. 그리고 그 이외의 많은 이유들…
한 축구팬은 "내셔널리그에는 스타도 없고, 수많은 관중도 없다. 시설이 뛰어나지도 않다. 경기력도 K리그 보다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 팬들은 나름의 매력을 찾아가고, 자신의 팀을 정해 응원을 한다"고 말했다.
뿌리가 있어야 줄기가 나고, 줄기가 있어야 풀과 꽃이 자라듯 아마추어가 있어야 세미프로가 있고, 세미프로가 있어야 프로가 존재할 수 있다. K리그가 대표선수를 배출하는 줄기라면, 내셔널리그나 첼린저스(구 K3)리그는 K리그를 지탱해줄 수 있는 뿌리가 된다.
이들 뿌리는 결코 약하지 않다. 울산 현대미포조선, 부산 교통공사, 고양국민은행 등은 과거에 K리그를 잡아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팀들이다.
특히나 고양의 경우 쟁쟁한 프로팀들을 재치고 FA컵 준결승에까지 올라 수원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큰 주목을 받았었으며, 지금도 내셔널리그 팀들 중 일부는 당장 K리그에 올라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만큼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껏 내셔널리그가 외면 받아왔던 이유는 2인자이기 때문이다. 1인자만을 기억해주는 한국문화의 특성상 내셔널리그는 팬들로부터 먼 거리감을 줄 수밖에 없었다. 사실 1등과 2등의 차이는 백지 한 장 차이인 경우가 많다.
내셔널리그와 K리그의 수준차도 마찬가지다.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외면 받는 이유는 K리그보다 못한 하위리그라는 편견 때문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아무리 말해봐야 직접 보고 느끼지 않는 이상 편견을 깰 수가 없다. 한 때 한 K리그 선수가 팬들의 질타에 못 이겨 자신의 미니홈피 방명록에 "그럼 니들이 한번 뛰어보던지"라는 말을 남겨 큰 이슈거리가 되었는데, 이에 빗대서 축구팬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한 번만 가서 보세요. 보시고 평가해주세요"
[사진 = 내셔널리그 ⓒ 엑스포츠뉴스 정재훈 기자, 카투니스트 김꽁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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