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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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츠기자단] '군인 아저씨'들이 광주에 남긴 발자취

기사입력 2011.03.14 14:46 / 기사수정 2011.03.14 14:46

엑츠기자단 기자


[엑츠기자단=문지성] 2011년 K-리그 참가팀들을 쭉 훑어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상주 상무 피닉스', 아직은 눈으로 읽을 때도, 입으로 소리내어 읽어 볼 때도 어색하기만 하다. 2003년 광주광역시와 연고지 협약을 체결한 이후로 상무는 언제나 광주 상무였으니까.

고등학생 시절, 이동국과 정경호를 보러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가까운 광주월드컵경기장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머리를 짧게 깎은 선수들은 지는 경기가 이기는 경기보다 많았을지언정 군인답게 끝까지 최선을 다해 뛰는 것으로 팬들에게 보답했다.

흔히 광주는 해태에서부터 KIA로 이어진 야구의 인기가 워낙 좋기 때문에 축구의 열기가 좀 시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다.

하지만 광주에는 김판근, 김태영, 윤정환, 고종수, 기성용 등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전·현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한 축구명문 금호고등학교가 있다. 그리고 2004년 K-리그 신인상을 수상한 수원 삼성의 문민귀 선수와 이번 남아공월드컵에 출전한 염기훈 선수를 배출한 호남대학교가 유명하다.

특히 호남대학교는 국내 대학 최초로 축구학과를 신설해 축구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고 FIFA가 공인한 인조잔디구장과 천연잔디구장을 보유해 연중 수시로 국내 축구 지도자·심판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는 광주의 폭넓은 축구 저변과 시민들의 축구사랑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또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스페인과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전 끝에 4강 신화를 이뤄낸 곳이 바로 광주다. 당시 지역 일간지에서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 최대의 인파"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뽑았을 만큼 광주 시민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뜨거웠다.

월드컵 이후 K-리그에 대한 국민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기업의 투자를 발판삼아 전국 각지에서 신생 축구팀이 창단되었고, 광주는 국군체육부대 소속으로 지역연고가 없던 상무를 받아들여 2003년부터 당당하게 K-리그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된다.

사실 광주시는 당초 예상했던 기업의 투자를 받지 못 하자 인천 유나이티드나 대구FC처럼 시민이 직접 주주가 되어 새 팀을 꾸리는 방안도 고려하였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5년 내 팀 창단을 시민들에게 약속하고 상무와 협약을 체결했다.

어찌됐든 광주에도 축구팀이 생겼으니 좋다는 반응이 대다수였지만 당시 광주의 축구팬들 중에서는 광주라는 연고를 광주의 독자적인 구단이 아닌, 언젠가 떠날 군부대에 임시로 임대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분들도 상당했다. 그것이 그토록 염원하던 광주 축구팀의 '시작'이자 첫 출발이었기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미우나 고우나 내 자식이기에 마음이 쓰이는 건 당연지사. 비록 굴러온 돌이라 정도 없고 실력도 처져 리그 최하위를 면치 못하지만 언제나 묵묵히 뛰는 이 '군인 아저씨'들에게 광주 팬들도 차차 마음을 열게 된다.

그 동안 마음 붙일 연고팀이 없어 인접한 전남 드래곤즈와 전북 현대 모터스를 응원하던 축구팬들도 광주로 돌아오고, 지역 주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공식 서포터즈 '1980'이 결성된다.

그 수가 너무나 적어 홈인지 원정인지, 관중인지 서포터즈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지만 그들의 열정은 다른 어떤 팀의 서포터즈보다 뜨거울 거라 확신한다. 이제 그들의 열정은 오랫동안 기다려 온 광주FC로 온전히 옮겨가 새롭게 불타오를 것이다.

'빛고을'광주에서 광주 상무가 '빛났던' 날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광주 상무는 국군체육부대의 특성상 매년 주전 선수들의 대부분이 물갈이되고, 다른 프로 구단과 달리 외국인 용병을 쓸 수 없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8번의 K-리그와 FA컵에 참가해 2004시즌 K-리그 8위, 2008년 FA컵 16강 토너먼트에서 스타군단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8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특히 2009년의 광주 상무는 정말 막강한 전력을 갖춰 광주 상무의 전성기를 꼽자면 이 때라고 하겠다. 상무에 온 후 물이 오른 최성국-김명중 투톱과 노련한 미드필더 최원권, 패기 넘치는 고슬기, 산전수전 다 겪은 수비수 박병규, 배효성, 황선필, 장현규와 국가대표 골키퍼 김용대라는 - 실로 눈부신 라인업을 갖춘 상무는 리그 초반 강팀들을 연파하면서 순위표의 맨 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 당시 상무의 핵심전술은 국내 정상급 골키퍼 김용대를 축으로 한 포백 라인의 견고한 수비를 통해 상대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기동력이 좋은 전방의 최성국-김명중 투톱에게 한 번에 연결해 골을 노리는 전광석화같은 역습이었다.

여기에 1990년부터 무려 20여년간 상무 한 팀만을 맡아오면서 군 축구팀이라는 특수한 팀 운영의 노하우를 쌓아온 데다 온화한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단합을 이끌어 낸 이강조 감독의 능력은 리그 중반까지 광주 상무를 선두권에 올려놓는 원동력이 되었다.

비록 얇은 선수층 탓에 주전 선수들의 피로가 누적되고 부상 선수가 생겨 순위가 점점 하락, 최종 순위는 13위에 그쳤지만 2009년에 상무 선수들이 보여줬던 군인다운 패기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는 모든 축구팬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그 외에 2003~2004년 상무를 이끌었던 이동국, 정경호 쌍두마차가 있다. 당시 히딩크의 부름을 받지 못해 와신상담하던 국내 최고의 공격수 이동국과 빠른 발로 상대의 측면을 흔들었던 정경호 두 선수의 활약은 많은 광주 시민들의 발걸음을 경기장으로 이끌었다.

두 선수 모두 소속팀과 국가대표에서 동시에 활동 중이었고 특히 이동국 선수는 잘생긴 외모로 여성 팬들도 많았다. 광주 상무는 이 두 선수가 동시에 활약한 2003년과 2004년에 각 언론사 및 연맹에서 제정한 '올해의 페어플레이상'을 연속으로 수상함으로써 광주의 깨끗한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기여
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가끔 국군체육부대장, 즉 "스타"가 떠서 경기를 지켜보는 날엔 상무는 K-리그에서 가장 강한 팀으로 돌변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골을 넣으면 포상휴가가 주어지고 실수로 골을 먹으면 휴가제한은 물론이고 얼차려까지 주어진다는…

웃고 넘기던 어느 날 TV를 통해 실제로 지켜봤던 수원 삼성과의 경기가 있다. 경기 시작 전 부대장님과 악수하며 힘차게 관등성명을 복창하는 선수들의 눈에는 어떤 결의가 서려 있는 듯 했다.

그 전 경기까지 연전연패하던 약체 광주 상무는 국가대표가 즐비한 수원 삼성에게 거짓말 같은 완승을 거뒀다. 이것이 바로 국군체육부대의 신조인 '수사불패'(죽을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정신인가! 경기를 마치고 팬들을 향해 일렬로 서서 절도 있는 동작으로 멋진 거수경례를 날리던 선수들이 기억에 남는다.

광주FC와 상주 상무 피닉스의 새 출발

2010년 들어 김치우, 최효진, 김지혁, 주광윤 같은 리그 최정상급 선수들을 받아들여 기대를 모으고 있는 상무는 이제 광주FC에게 자리를 내 주고 상주시로 연고를 옮겨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프로 축구선수들의 병역 문제 해결과 기량 유지라는 두 가지 과제를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상무는 선수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보금자리이다. 8년간 광주 시민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기고 떠난 상무가 상주에 가서도 지금까지 해 온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이젠 광주FC를 응원하게 되었지만 광주 시민들은 '광주 상무 축구단'을 마음 속에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오는 4월 9일, 광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상주 상무 피닉스와 광주FC의 역사적인 첫 맞대결이 펼쳐진다. 친정을 찾은 상무 선수들과 광주의 새로운 주인이 된 광주FC 선수들의 진한 한판 승부를 고대한다.

광주 시민들은 기저귀 찰 때부터 키워놨더니 어느덧 훌쩍 커서 군대 간다며(!) 집을 떠난 큰아들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늦둥이 막내아들에 이 두 팀을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부디 축구를 사랑하고 K-리그를 사랑하는 광주 시민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워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길 바란다.

[사진 = 광주 상무 ⓒ 엑스포츠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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