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대구, 김현세 기자) 포스트시즌에서는 소위 '미친 선수가 나와야 한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단기전에는 분위기가 좌우하는 영역이 크다고 보는 이가 많은 까닭이다. 김태형 감독은 '키플레이어가 누구냐'고 묻는 말에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두산에는 선수보다 '미친' 분위기 안에서 매일 다른 난세영웅이 나온다.
정규시즌에는 부진했다가 가을이 되자 펄펄 날기 시작한 준플레이오프 최우수 선수(MVP) 정수빈은 삼성 라이온즈와 플레이오프를 두고 "분위기 싸움이 될 거다"라며 "준플레이오프에서 이기고 올라가는 만큼 우리 쪽 분위기가 더 좋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전망은 실제로 들어맞았다. 그런데 두산에는 '미친 선수'가 특정돼 있지 않다. 매 경기 다르다. 두산은 9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과 2021 신한은행 SOL KBO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6-4로 역전승했다. 1회 말 구자욱과 호세 피렐라의 적시타에 초반 분위기를 빼앗기는 듯했지만, 김태형 감독이 "하위 타선은 타격감이 사실 다 비슷하다"고 본 타자 중 한 명인 9번 타자 강승호가 동점 적시타를 치더니 정수빈은 멀티 출루에 이어 천금 같은 득점을 올렸고, 정수빈과 마찬가지로 정규시즌에서는 타격 사이클이 떨어져 있던 박세혁이 삼성의 강수였던 오승환을 상대로 쐐기 홈런도 터뜨렸다.
두산은 심지어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선발이 5회를 넘기지 못했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두산이 치른 6경기 가운데 선발이 5이닝을 채운 건 지난 4일 열린 LG와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 등판한 최원준 한 명뿐이었다.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부터 사나흘씩 쉬어 가며 등판한 최원준은 쌓인 피로로 인해 정상적인 투구 수를 소화하기가 어려웠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도 두산 벤치는 최원준의 투구 수를 80구대에 끊어 줬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4⅓이닝 2실점에 그치며 불펜에게 뒤를 맡겼다.
불펜도 정상적인 전력은 아니었다. 이날에는 이영하가 등판하지 않았다. 앞선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투구 수 66구로 4이닝을 실점 없이 책임지며 두산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끈 까닭이다. 그런데 하필 선발이 5회 말을 넘기지 못했다. 이전 시리즈였다면 이영하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영하와 더불어 주요 역할을 맡아 주리라 기대받은 홍건희가 투구 수 52구로 3이닝을 1실점으로 막으며 호투했다. 최원준이 넘기고 간 5회 말 1사 만루에서는 오재일로부터 병살타를 유도해냈고, 이날 데뷔 첫 포스트시즌에서 구원승을 거두며 데일리 최우수 선수(MVP)로도 뽑혔다. 홍건희의 뒤에는 또 이현승이 역전 위기를 막아내는 맹활약을 펼쳤다.
애초 두산은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언더독이었다. 외국인 선수 워커 로켓과 아리엘 미란다가 부상으로 이탈하며 선발진에 구멍이 났고, 정규시즌 4위를 확정하느라 국내 선발과 불펜은 과부하에 시달렸다. 그런 상태로 바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렀고, 업셋당할 위기에도 몰렸었다. 이번 플레이오프를 앞두고도 삼성의 우세를 점치는 이가 많은 건 당연했다.
하지만 3위 LG를 상대로 업셋을 이루며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한 뒤에는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이번 플레이오프는 5전3선승제가 아닌 3전2선승제다. 두산은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1승 남았다. 1승을 더한다면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인데, 이는 KBO리그 역사상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기록이다. 매년 FA 전력 유출로 약체 평가를 들어 온 두산이 이번에는 지난 6년과 달리 외국인 선발들도 없는 상황에서 한국시리즈 진출에 도전한다. 앞서 박세혁은 "외국인 선수가 빠졌다고 떨어진다는 말은 듣지 않겠다"며 "우리 팀은 누가 빠지면 늘 메우는 팀"이라고 말했다. 여러 혹평과 맞선 두산에는 매일 서로 다른 미친 선수가 서로를 상쇄하고 있다.
사진=대구, 박지영 기자
김현세 기자 kkachi@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