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07.14 00:16 / 기사수정 2007.07.14 00:16
[엑스포츠뉴스 = 박종규 기자]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로부터 유난히 소외받는 강원도, 그 중에서도 춘천이 야구 붐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는 18일 프로야구 2군 역사상 최초로 올스타전이 열린다. '한국형 퓨처스 게임' 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 경기는 '야구 불모지' 인 강원도 춘천에서 개최된다. 대다수 야구팬은 '춘천에서 야구를 할 수 있나?'하고 의아해 하겠지만 일단 야구장만큼은 경기하기에 손색이 없다는 평을 듣고 있다. 과연 춘천은 프로야구 붐을 일으킬 만한 터전이 될 수 있을까?
프로야구 원년, 춘천에서는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 당시만 해도 강원도는 소외되지 않았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인천을 비롯해 경기도, 강원도를 연고로 하여 춘천에서도 경기를 치렀기 때문이었다.
1982년 4월 4일, 삼미의 역사적인 홈 개막전이 열린 장소는 바로 춘천 야구장이었다. 당시 인천 야구장은 세계선수권대회를 대비한 공사에 한창이었기 때문에 경기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게 한국 프로야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춘천 야구장에서는 1988년까지 7년 동안 간간이 프로야구 경기가 열렸다.
춘천, 야구와 멀어지다
그러나 춘천은 프로야구계가 달갑지 않게 여기는 '소도시' 였다. 인구가 적고 지역 발전이 느린 데다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80년대나 현재나 서울과 춘천을 잇는 통로는 경춘국도와 경춘선 철도뿐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프로야구 시장이 커지고 상업성이 강조되는 현실에서 춘천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도태되고 말았다.
야구와 동떨어진 것은 비단 춘천만의 일이 아니다. 강원도 전역에 걸친 학생 야구의 침체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강원지역 4개 도시(춘천, 원주, 강릉, 속초)에는 초, 중, 고교 야구부가 각각 한팀뿐이어서 타지역의 선수를 영입하는 실정이다. 반대로 강원도의 유망주들은 성공하기 위해 타지역의 강팀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선수 기근 현상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이러한 현실로 볼 때, 지난 6월 막을 내린 제62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강릉고의 준우승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이전까지 강원도 팀의 전국대회 결승진출은 1999년 청룡기대회에서 춘천고(준우승)가 이뤄냈을 뿐이었다.
춘천의 야구사랑
그렇다고 춘천에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여느 지역처럼 사회인야구 리그는 존재한다. 현재 20개 팀이 2개의 리그를 이루어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강원대학교, 한림대학교 등에도 야구동아리가 활성화되어 있어 교내리그 및 학교 간 교류전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동호인들을 위한 변변한 야구장 하나 없는 열악함 가운데서도 그들의 야구사랑은 멈출 줄 모른다.
이렇듯 춘천시민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어느 지역 못지않다. 단지 프로 스포츠를 즐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다.
의암 야구장의 탄생
지난 2003년, 프로야구 원년의 체취가 남아있던 춘천 공설운동장 내 야구장은 철거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춘천시 외곽 송암동 부지에 새로운 야구장이 건설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그곳에서 열렸던 전국 고교야구 대회의 강원도 지역 예선은 인근 춘천고등학교 운동장을 개조한 야구장에서 치러지기에 이르렀다. 정식 야구장 하나 없는 도시, 춘천 야구의 '암흑기' 가 찾아온 것이다.
2004년 말, 마침내 완공된 의암 야구장은 춘천시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수원 야구장을 연상시키는 외관에 컬러전광판, 조명탑을 갖춘 '야구장다운 야구장'의 위용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작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연고구단인 SK 와이번스가 2005년 3월 26일과 27일 두산과 시범경기를 계획했으나, 사전 답사 결과 그라운드 상태가 경기를 치르기에 부적합하다고 판단, 경기를 취소한 것이다. 결국, 야구장을 다시 정비해 그해 9월 말에야 준공식을 하게 되었다.
한 번의 진통을 겪은 끝에 검증을 받게 된 의암 야구장은 이후 초, 중, 고교야구대회는 물론 전국대학 야구 춘, 추계리그도 치러냈다. 사회인야구 동호인들 사이에서도 '꿈의 구장'으로 불리며 주말마다 장거리 원정을 마다하지 않은 손님들을 맞이했다.
프로야구 붐 조성의 시작
지난 4월,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비 연고지역의 프로야구 활성화를 위해 프로야구 2군 경기 일정을 조정하여 춘천에 12경기를 편성한다고 밝혔다. 연고팀을 지정하지 않고 중립경기로 규정하여 8개 구단 모두(상무, 경찰청 제외)가 한 번씩 의암 야구장에서 3연전을 치르게 된 것.
이것이 바로 춘천에 프로야구 붐을 조성하기 위한 작은 출발이었다. 프로야구 활성화라는 KBO의 목표와 춘천시민들에게 새로운 여가생활을 제공하려는 춘천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그리하여 지난 4월 21일, 마침내 LG와 KIA의 프로야구 2군 경기가 열리게 되었다. 1999년 3월 27일 춘천 야구장에서 열린 현대와 두산의 시범경기 이후 8년 만에 프로야구가 춘천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사실 4월 20일이 3연전 첫날이었지만, 그날 경기가 비로 취소되는 또 하나의 우여곡절도 숨어있다.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비록 8000석에 관중이 가득하지는 않았지만 프로야구 경기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은 환호했고, 항상 적막한 분위기에서 경기를 했던 선수들은 덩달아 힘을 냈다.
다음날(22일), 잠실 야구장 기자실은 춘천 2군 경기에 관중이 800명가량 입장했다는 LG 구단 관계자의 발표에 술렁거렸다. 각 스포츠지 기자들은 지방 소도시에, 그것도 2군 경기에 800명이라는 숫자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후 6월 22~24일에는 현대-롯데의 2군 경기가 열렸다. 23일 경기에서는 5회 말 종료 후 양팀 선수들이 관중석을 향해 싸인 볼을 던져주기도 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의 오후 1시 경기였지만 춘천시민들은 지난 4월과 같이 큰 관심을 보이며 선수들을 지켜보았다.
12일 열린 두산-삼성의 2군 경기(더블헤더 2차전)는 개장 이후 첫 야간경기로 진행되었다. 이날 1000명가량의 관중이 지켜본 가운데 의암 야구장의 야간조명 시설도 검증받은 셈이다.
경기를 위해 의암 야구장을 찾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는 "생각보다 그라운드 상태가 좋다" 며 입을 모았다. 천연잔디가 훌륭하고 토질이 좋아 1군 경기도 가능할 것이라며 대단히 만족하는 반응이다.
연고구단 SK는?
지난 2004년 말, 의암 야구장 건설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자 SK 와이번스의 열성팬들 사이에서는 '춘천에서도 홈경기가 열렸으면' 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도 경기도, 강원도 등 연고지역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달라는 여론이 형성된 바 있었는데, 새로운 구장을 계기로 SK의 연고지에 대한 노력을 촉구한 것이다. 직접 야구장에 찾아가 찍은 사진을 소개하며 경기를 치르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린 팬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SK는 의암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한 적이 없다. 팬들은 춘천에 경기가 편성되면 원정 응원이라도 가겠다는 열의를 보였지만 현재 춘천 2군 경기는 SK의 홈경기가 아닌 중립경기일 뿐이다.
올 시즌 '팬 여러분을 위한, 팬 중심의 구단 운영'의 기치를 내걸고 야심 차게 출발한 SK가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연고지역에 대한 관리는 KBO가 아닌 구단이 해야 할 역할이다.
퓨처스 올스타전,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
오는 18일 열리는 퓨처스 올스타전은 춘천의 프로야구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최고의 이벤트임이 틀림없다. 그뿐만 아니라 야구인들에게 춘천 의암 야구장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프로야구 선수들과 올드 스타, 거기에 연예인 야구팀까지 한꺼번에 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렇게 큰 이벤트를 관중 없이 치를 수는 없기 때문에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열렸던 2군 경기에 대한 홍보보다 훨씬 더 대대적인 홍보가 있어야 춘천시민들은 물론 타지역 팬들도 몰려올 것이다.
한가지 걸림돌이 있다면 의암 야구장이 시 외곽에 있다는 점이다. 춘천시민들조차 야구장을 찾아가기 어렵다면 타지역에서 오는 관중에게는 더 어려운 발걸음일 수 있다. 야구장으로 향하는 버스 노선도 현재 단 한대에 불과해 증편이 요구된다.
그동안 소외되었던 춘천은 충분히 잠재력이 있는 시장이다. 2009년 말이면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와 전철이 완공된다. 그렇게 되면 여느 수도권의 야구팬들과 마찬가지로 춘천의 야구팬들도 잠실구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프로야구가 그것을 바란다면 춘천으로 야구 열기를 확산시키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춘천의 프로야구 경기 유치를 계기로 프로야구 저변 확대라는 KBO의 목표가 성취될 수 있을까. 연고구단인 SK 또한 가능성을 인식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개척되지 않은 새로운 영역, 한국 프로야구가 도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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