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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노트북] 혜리 "대중이 맞다면 맞는 것이고, 아니라면 아닌 것이에요"

기사입력 2020.10.25 10:00 / 기사수정 2020.10.25 08:36


[낡은 노트북]에서는 그 동안 인터뷰 현장에서 만났던 배우들과의 대화 중 기사에 더 자세히 담지 못해 아쉬웠던, 하지만 기억 속에 쭉 남아있던 한 마디를 노트북 속 메모장에서 다시 꺼내 되짚어봅니다.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저는 대중에 의해서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대중의 역할이 굉장히 큰 사람이잖아요. 대중이 맞으면 맞는 것이고, 대중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에요." (2018.09.03. 영화 '물괴' 인터뷰 중)

혜리는 그룹 걸스데이 멤버에서 연기자로, 예능까지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특유의 밝고 에너지 넘치는 매력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2010년 가수 데뷔 후 2012년 SBS 드라마 '아버지의 딸'로 처음 연기에 도전했고, '선암여고 탐정단'(2014)에 이어 2015년에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성덕선 역을 통해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죠.

이후에도 '딴따라'(2016), '투깝스'(2017), '청일전자 미쓰리'(2019)까지 드라마 출연은 물론 2018년에는 영화 '물괴'로 스크린에도 도전했습니다. 지난 해 개봉한 '판소리 복서'까지, 다양한 캐릭터와 작품을 통해 꾸준히 활동해왔죠. 최근에는 3년 간 활약했던 tvN 예능 '놀라운 토요일-도레미마켓'에서의 아쉬운 하차 소식을 전하며 연기 활동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2년 전 혜리의 스크린 첫 주연작이던 '물괴' 인터뷰로 TV 화면 속에서만 느껴왔던 그녀의 에너지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두 팔 간격 정도의 거리에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혜리의 한마디 한마디를 기록하기 위해 손으로는 그야말로 '낡은 노트북' 키보드를 부지런히 두드리고, 두 눈으로는 그녀를 계속 바라봤습니다. 이른 오전부터 열 명이 넘는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긴장하는 표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큰 눈에 힘을 주며 계속해서 취재진에게 눈길을 주고 또박또박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죠.

인상 깊었던 것은, 자신의 일을 대하는 혜리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응답하라 1988'로 연기 영역까지 성공적으로 안착했지만, 차기작에서 보여준 모습들에서는 '캐릭터의 덕선화'라며 아쉬운 연기를 지적받기도 했죠. 이후 스크린 첫 주연작인 '물괴' 속 연기에 대한 우려가 이어진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시선을 당연히 혜리도 알고 있었고요. '아이돌 출신 배우가 연기하는 것은 더 가혹한 시선으로 보는 것 같다'는 말에 두 눈을 크게 뜨며 "그럼요! 사람이다 보니까…. 뭔가 억울함이 들 때도 있어요, 당연히"라고 단번에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죠.

이내 "그런데 가혹한 만큼, 제가 받는 것도 많은 것 같아요. 가혹함의 대가만큼 사랑을 받는 크기도 큰 것 같아서, 그것 역시 제가 감수해야 할 몫이라 생각해요. 물론 억울할 때도 있죠, 가끔.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제가 바다도 하늘도 아니고!"라며 특유의 시원시원한 웃음과 함께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대중에 의해서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대중의 역할이 굉장히 큰 사람이잖아요. 대중이 맞으면 맞는 것이고, 대중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에요. 제가 봤을 때 제가 아무리 열심히 했고 '이건 정말 잘했어'라고 생각을 해도, 대중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죠. 제가 보기엔 '이건 이상한 것 같다' 해도, 대중이 '혜리 이 부분은 좋다'라고 하면, 또 그건 대중이 맞는 것이고요. 그것을 늘 생각할 수밖에 없고, (좋게 봐주시는 부분은) 더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죠. 저라는 사람은 그런 부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혜리는 특유의 발랄한 말투로, 당시에 존재했던 포털사이트 댓글들을 다 보고 있다며 "상처도 많이 받고, 많이 울기도 해요. 그런데 그 다음날은 또 괜찮아져서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죠. 제가 그런 부분에서는 잘 인정하는 것 같아요. 잘 헤쳐 가려고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죠.

무거울 수 있는 얘기를 너무나도 밝은 표정으로 하는 혜리의 모습에 자리에 함께 했던 기자들도 "연예인하기엔 최적의 성격이다"라며 너스레로 화답하기도 했습니다. 내내 긴장하는 듯 했던 표정의 혜리는 인터뷰가 끝날 즈음에야 조금 마음이 편해진 듯 "저 그런 말들 많이 들었어요! 연예인 안했으면 뭐 했을 것이냐고요"라며 밉지 않은 능청스러움으로 얘기를 이었죠.

"어릴 때부터 그렇게 컸어요. 내가 겪는 일만큼 다른 사람도 다 이만큼은 겪고, 내가 가진 이 아픔이 세상의 아픔이 아니라고 항상 생각했죠. 주변에선 '왜 이렇게 긍정적이냐'고 하지만, 저 굉장히 현실적이거든요. (연예인이란 직업이) 조금만 생각이 깊게 빠지면 정말 힘들 직업일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런데 저는 (싫은 말을 들어도) '언젠간 난 잘 해낼 수 있어' 이 마음이 늘 있어요. 잘 받아들이고 좋게 생각하려 하고, 상처도 받지만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죠. 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자신의 약점을 대놓고 이야기하고 인정하는 것에 의연해지기란 사실 누구라도 쉽지 않습니다. 늘 대중의 시선 속에 자리하고 있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더욱 그렇겠죠. 지켜보는 눈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사랑을 받을수록 자기객관화가 어려워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혜리에게선 짧은 순간이었지만, 스트레스와 고민이 될 수 있는 부분들까지도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이겨내려 하는 듯한 모습이 느껴졌습니다.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말을 하며 싱긋 웃던 얼굴도 기억에 남고요.

열일곱 살이던 2010년 데뷔해 당시 데뷔 8년차를 맞이했던 혜리가 이 시간동안 그렇게 자기중심을 잡는 법을 스스로 깨우치고, 다져왔겠구나 싶었습니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혜리 역시, 여러모로 지금이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싶고요. 조금은 덜 완벽해보일지라도, 또 덕선이의 모습이 캐릭터 속에 조금 묻어나 보인다 할지라도 그렇게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혜리만의 밝은 에너지를 좋은 작품 안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엑스포츠뉴스DB, tvN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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