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부산, 조은혜 기자] 젊다 못해 어린 선수들로 구성된 파격 라인업으로 시작한 최원호 감독대행의 첫 경기. 거짓말처럼 연패를 끊었다면 이야기는 더 드라마틱 했겠지만, 결국 롯데 자이언츠에게 패하며 한화 이글스는 창단 최다 15연패에 빠졌다. 그러나 더그아웃이 가라앉는 모습은 없었다. 오히려 더 활기 넘쳤다. 이날 한화가 이날 패배 속에서 본 것은 지난 경기들의 패배들과는 분명 달랐다.
극단적이라고 느껴질 법한 변화였다. 최원호 감독대행은 지휘봉을 잡자마자 주전 선수들을 대거 2군으로 내려보냈고, 그 자리를 젊은 선수들로 채웠다. 첫 경기 선발 라인업에는 1군 등록조차 처음인 신인 박정현, 최인호가 상위타순에 들어섰다. 2년차 노시환은 데뷔 처음 4번타자가 됐다. 이날 한화의 선발 라인업 평균 나이는 김태균과 이용규를 포함하고도 만 25세였다.
최원호 감독대행이 가장 먼저 바꾸고 싶었던 것은 분위기였다. 최원호 대행은 "연패가 길어지고 팀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정신적인 피로도가 높아지고, 육체적 피로로도 연결된다"고 엔트리 변화 배경을 설명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다 바꿀까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최 대행은 "일단 선수들이 정신적, 기술적 문제를 케어받고 재충전을 해야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일단 컨디션이 안 좋은 선수들을 내렸다"고 얘기했다.
신인들을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자리로 밀어넣은 이유도 있다. 최원호 감독대행의 말은 "이슈메이커가 필요하다고 느꼈다"였다. 최 대행은 "경력자들은 기존 분위기를 감지하고 적응을 빨리 한다. 경험이 없는 선수들은 아무래도 적응력이 떨어진다. 그런 선수들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주면 이슈메이커가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참들을 너무 배제하는 것 아니냐'는 주변 목소리에는 "나이나 경력이 많은 사람이 우선권을 가지려면 어린 선수보다 실력이 좋아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실력에 대한 평가가 비슷하거나 어린 선수가 더 좋다면, 어린 선수를 써야 한다는 얘기였다. 최 대행은 "그게 확률이, 미래 가치가 더 높으니까. 변화할 수 있는 시간과 폭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베테랑이 주춤한 현재 한화의 상황은 젊은 피를 기용하기에 적기라면 적기였다.
최원호 감독대행은 "경력 있는 선수보다 어린 선수들이 못하면 못 뛰겠지만, 비슷하게만 한다면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실력이 더 나은 사람을 쓴다'는 가장 단순한 논리다. 변화를 꾀하고 있는 최 대행은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해보는 거다. 좋을 수도 있지 않나. 해봐서 안 되면 안 하면 된다. 접근을 너무 조심스럽게 하다보니 안 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비록 15연패에 빠졌지만 이날 한화는 그동안 없었던 새로움을 감지했다. 주전이 빠졌어도 생각보다 수비는 안정적이었고, 더 나빠질 것도 없었던 타격에서는 새 얼굴이 등장을 알렸다. 데뷔전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한 최인호, 비시즌에서의 좋은 모습을 이어간 조한민, 공수에서 잠재력을 내비친 박상언 등 '이슈메이커'의 자질을 갖춘 선수들이 많았다.
선수들을 향해 "내가 114경기를 맡았는데, 100연패는 안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는 최원호 감독대행은 성적과 육성을 모두 잡겠다고도, 전면 리빌딩을 택하겠다고도 단언하지 않았다. 대신 최 대행은 "1%의 확률이라도 지워지지 않는 이상 성적을 포기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근데 난 세상엔 0%도 없고 100%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과정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곳이지만, 결과를 내겠다고 해도 마음 먹은 결과가 나오는 곳도 아니다. 과정에 충실해도 질 때야 있겠지만, 과정에 충실하다 보면 좋은 결과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웃으며 재시작 버튼을 눌렀지만 한화의 남은 시즌은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다. 당장 리그의 연패 기록을 다시 쓸 수도 있고, 최다패를 할지도 모른다. 출전만으로 선수의 성장은 뚝딱 이뤄지지 않고, 특히 중간층이 빈약한 한화 뎁스에서 세대 교체는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시즌 만큼은 한화가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곳은 더 먼 곳에 있다. 100번을 더 져도 달라질 것 없는 순위, 달리 생각하면 100번도 넘는 실험과 경험을 하면서 팀을 다지고 방향을 재정립 할 수 있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eunhwe@xportsnews.com / 사진=연합뉴스, 한화 이글스
조은혜 기자 eunhw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