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나금주 기자] '선녀들-리턴즈' 설민석이 동학농민혁명의 의의에 관해 밝혔다.
31일 방송된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40회에서는 정유미, 김호중이 동학농민혁명 특집에 함께한 그려졌다.
이날 선녀들은 동학농민군의 첫 집결지인 말목장터로 향했다. 고부, 정읍, 태인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다. 설민석은 "사발통문을 만들고 사람을 모아야 하지 않냐. 전봉준 주변 인원으론 안 돼서 손화중 선생을 떠올린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손화중은 시기가 아직 아닌 것 같다며 다음을 기약한다고.
이에 전봉준은 동학교도와 농민들을 모아서 조병갑의 학정을 고발하고, 고부관아로 향한다. 설민석은 "농민들은 거의 무혈입성을 한다. 조병갑이 이미 변장을 하고 도망간 후였다"라고 밝혔다. 고부 관아를 점령한 농민들은 먼저 창고에 쌓인 곡식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고.
이때부터 전봉준은 암살 위협을 당한다. 정유미는 "수천 명이 모인 와중에 스파이처럼 섞여 있는 거 아니냐. 징표를 만들어서 적, 아군을 구분할 수 있도록 노끈을 감았다. 타지역 동학농민군들은 '음'하고 물어보면 '송'하고 답하는 암호를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조직적인 방법에 결국 몰아냈다고.
설민석은 "신임 군수 박원명은 상대적으로 성품이 온화한 사람이었다. 지금이라도 해산하면 처벌하지 않겠다고 설득하고, 잔치를 벌인다"라고 밝혔다. 이에 많은 동학농민군의 분노가 녹고 있었다. 설민석은 "지휘부 대다수가 향반 출신이라 역적의 누명을 쓰는 게 불명예라고 생각했고, 동학보다 원민이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안핵사 이용태가 나타나며 농민들의 분노는 다시 들끓는다. 설민석은 "이용태는 민란이 벌어지는 동안 눈치만 보다가 화해하니까 수백 명의 군졸을 이끌고 들어온다. 반란이라며 주모자를 찾아다니고, 마을 사람들을 구타한다. 부녀자를 겁탈한다"라고 밝혔다. 선녀들은 "인간이 아니다"라고 충격을 받았다.
결국 전봉준은 다시 나선다. 설민석은 "전봉준 주변에 4천 명이 모이고, 조직화를 한다. 총사령관 전봉준, 부사령관 손화중, 김개남이 모인다. 김개남은 '어벤져스'로 따지면 헐크다. 동학농민군이 전라도를 자치할 때 양반을 잡아다 심판하고 곤장 친다. 양반들이 가장 무서워한 상대가 김개남이다. 전봉준, 손화중은 그 안에선 상대적으로 온건한 성향이었다. 이렇게 '동학 어벤져스'가 만들어진다"라고 밝혔다.
이어 설민석은 동학농민군과 관군의 최초의 전투인 황토현전투에 대해 밝혔다. 설민석은 "동학농민군의 원래 목표가 전주이지 않냐. 관군이 내려오자 일단 동학농민군은 황토현의 고지를 선점, 매복했다"라고 밝혔다. 관군은 동이 트면 싸우기로 하고, 말소리가 들릴 정도로 동학농민군 가까이 있었다.
하지만 동학농민군이 기습 공격을 하고, 대승을 거둔다. 당시 관군도 강제징집한 양민들이 많았다고. 정유미는 "대승 후 세리머니가 굉장히 화려했다고 한다"라며 백성들도 함께 행렬을 즐겼다고 밝혔다. 김종민은 "황토현 전승일을 기념해 2019년부터 5월 11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한다"라며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을 설명했다.
동학농민군은 전주성도 함락한다. 설민석은 "고종은 10년 전 임오군란을 떠올리며 청나라를 다시 불러들인다"라고 밝혔다. 이에 일본군도 톈진조약을 들먹이며 들어왔고, 위협을 느낀 고종은 전주화약을 체결한다.
농민자치기관인 집강소를 만들며 잘 해결되는 듯싶었지만, 일본군이 문제였다. 청은 돌아가겠다고 하지만, 일본군은 경복궁을 점령한다. 이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제2차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다. 설민석은 "반외세 항일투쟁이었다. 이때 동학 북접 세력, 남접세력이 연합을 하게 된다. 2대 교주 최시형 선생은 3대 교주가 되는 손병희 선생에게 합류하라고 한다"라고 밝혔다.
남북접 연합 동학농민군은 공주 점령을 위해 우금치 공격을 결정한다. 하지만 동학농민군의 무기는 여전히 죽창, 낫이었다. 너무나 열악한 상황에 동학농민군은 무참히 학살당했다. 설민석은 "우금치가 하얀 시체로 뒤덮였고, 계곡에 핏물이 며칠간 흘렀다고 한다"라며 당시 안타까운 상황을 전했다. 이후에도 동학농민군은 계속 맞서 싸우다 몰살당한다.
유병재는 "당시 희생당한 동학농민군이 3만 명에서 5만 명이라고 한다. 청일전쟁 때 죽은 일본군, 청나라군보다 많은 숫자"라고 밝혔다. 설민석은 "국가에선 일본군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우리 국민을 살육하는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게 무능한 정부였다"라고 했다. 전봉준도 더 이상 희생시킬 수 없다는 판단에 농민군 해산을 명했다.
이후 선녀들은 전봉준 장군의 단소로 향했다. 유병재는 "이곳에 계신다고 말할 순 없다. 처형된 후 시신을 수습 못했다"라고 밝혔다. 전현무는 전봉준 체포에 대해 "별장 이종록은 전봉준을 오히려 숨겨주며 의리를 지켰다. 반면 전봉준의 부하였던 김경천이 전봉준을 밀고한다. 김경천은 현상금을 얻지도 못하고 손가락질당하다 아사했다"라고 밝혔다. 설민석은 전봉준이 취조를 받고 죽는 순간까지도 백성과 나라를 생각한 자신의 뜻을 펼쳤다고 밝혔다.
설민석은 "전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잔여 세력은 독자적인 항일운동을 한다. 민중이 하나 되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민주주의의 뿌리, 정신이 되었다. 승리의 역사다. 어찌 이름있는 꽃만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냐. 민초 정신을 마음속에 새겨야겠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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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금주 기자 nkj@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