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8.27 08:54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넬로 빙가다 감독이 이끄는 FC서울이 포스코컵 2010에서 지난해 K-리그 챔피언 전북 현대를 3-0으로 대파하고 4년 만에 컵대회 정상 탈환에 성공했다. 동시에 2007년 이후 계속됐던 ‘무관’의 설움도 벗을 수 있었다.
고백하건대 빙가다 감독이 처음 서울에 부임했을 때 선입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포르투갈 출신이지만 중동에서 오랜 시간 감독을 지냈고, 아시아의 약체인 요르단 대표팀 감독 출신이란 것도 한 몫 했다. 대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모습은 알렉스 퍼거슨, 거스 히딩크, 주제 무리뉴 같은 유럽의 명장들의 카리스마와 외모에 한참 못 미쳐 보였다. 전임자 세뇰 귀네슈의 그늘도 있었고, 이름도 왠지 촌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빙가다 감독에게 감히 ‘명장’이란 호칭을 붙여주고 싶다. 혹자는 K-리그에 온지 8개월 밖에 안 된, 유럽의 평범한 감독이 서울과 같은 강팀을 이끌고 컵대회 우승 한 번 한 게 무어 대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언론과 팬 모두가 ‘명장’이라 불렀던 귀네슈 감독조차 박주영·이청용·기성용이 한 팀에서 뛰던 시절의 서울을 이끌고 3년간 무관에 그쳤던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나 우승이란 성과만으로 그를 ‘명장’이라 부를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빙가다 감독이 정말 훌륭한 감독이란 점은 오히려 그의 인터뷰에서 자주 드러난다.
기자들이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감독에게 가장 자주 하는 질문 중 하나가 그날의 수훈 선수에 대한 평가다. 그러나 빙가다 감독은 항상 똑같은 대답을 한다.
“OOO가 오늘 좋은 경기력을 보였지만, 팀원 모두가 그를 도와줬기 때문에 OOO도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우리 선수들 모두 좋은 경기를 했다.”
이 동문서답 내지는 판에 박힌 듯한 모범답안은 컵대회 우승 후 기자회견에서도 똑같이 반복됐다. 처음에는 지루한 답변이라 생각했지만, 매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그 속에서 빙가다 감독의 지도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은 스타 플레이어가 많은 팀이다. 베스트11에서 국가대표팀을 지내보지 않은 선수가 손에 꼽을 정도이며, 어느 팀에 가서도 주축으로 뛸 수 있는 선수가 후보로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선수 개개인의 스타성과 자존심이 너무 강하면 그 클럽은 ‘팀’이 아닌 ‘모임’에 불과해진다. 그런 경우 강팀은 될지언정 우승팀은 되기 힘들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서울은 지난 4년간 최강의 스쿼드를 보유하고도 단 한 차례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빙가다 감독이 그런 서울을 단 8개월 만에 우승팀으로 바꿔놓았다. 빙가다 감독이 강조하는 ‘팀 정신’이 과거 스타들의 군집체에 불과했던 서울을 조직력과 끈끈함을 갖춘 하나의 팀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유럽 축구가 뛰어난 체격을, 남미 축구가 화려한 기술을, 아프리카 축구가 의외성 넘치는 탄력 있는 움직임을 각자의 장점으로 가져갈 때, 아시아 축구는 어떤 점에서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그 답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있다고 생각한다. 박지성은 ‘팀을 위해 헌신하는’ 이타적 플레이에 있어서 최고를 자랑하는 선수다. 그런 플레이야말로 박지성이 맨유라는 빅클럽에서 수년 간 뛰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동시에 ‘나’보다 ‘우리’가 강조되는 아시아권 문화만이 가질 수 있는 팀에 대한 헌신과 단결력은 아시아 축구가 가지는 가장 큰 힘이다. 이러한 ‘팀 정신’은 조직력과 단결, 강한 정신력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는 이미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도 한국, 일본의 16강 진출과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탈락으로 입증된 바 있다.
아시아에서 감독 생활을 오래한 덕분에 빙가다 감독은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듯, 서울에서도 늘 지도자부터 선수단까지 하나가 되는 ‘팀 정신’을 강조한다. 빙가다 감독 부임 이후 서울 선수들의 인터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선수들이 빙가다 감독과 똑같은 답변을 한다는 점이다.
“동료들이 도와줬기에 좋은 기회가 나서 골을 넣을 수 있었다. 동료들에게 고맙고, 다음 경기에서는 내가 이 빚을 동료들에게 갚아나가겠다.”
또한, 그는 상대방 감독과 선수에 대한 존중심이 있는 감독이다. 빙가다 감독은 단 한 차례도 상대팀 전술이나 선수·감독을 평가해 달라는 말에 답변한 적이 없다. 대신 “그런 부분을 언급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K-리그와 한국에 대한 존중과 애정도 느껴진다. 유럽 출신 감독이라면 어떤 우월 의식을 가지고 선진 프로리그와 비교하며 K-리그의 시스템을 비난할 수 있다. 물론 빙가다 감독도 이런 부분을 지적한 적이 있지만, 그는 항상 “유럽은 이런 제도를 택하고 있는데, K-리그에 한번 적용해 보는 게 어떨까. K-리그가 부족하단 뜻이 아니라 한국 실정에 맞게 이를 변형해 인프라를 개선하자는 의미”라며 ‘비난’이 아닌 ‘토론’의 자세를 취한다.
빙가다는 월드컵 본선에 나가본 적도, 유럽리그 명문팀을 맡은 적도, UEFA 올해의 감독상을 받은 적도 없는 어찌보면 평범한 외국인 감독이다. 그러나 빙가다의 진면목은 K-리그, 나아가 아시아 축구의 덕목과 강점이 무엇인지 꿰뚫어보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이 속한 리그를 존중할 줄 아는 감독이란 점이다.
그런 면에서 빙가다 감독은 아무리 우승을 많이 해봤자 돈을 많이 준다고, 개인 사정이 있다고, K-리그 수준이 별로라며 떠났던 이전의 외국인 감독들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어쩌면 빙가다는 ‘K-리그가 원하는 명장’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사진 (C) 엑스포츠뉴스 권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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