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2-0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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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이라크에서 온 손님

기사입력 2007.10.14 17:44 / 기사수정 2007.10.14 17:44

박영선 기자

[엑스포츠뉴스=박영선 기자] 쓰러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년, 트와나

플레이오프 진출을 희망하는 대전 시티즌의 10월 13일 연습장에는 즐거운 웃음소리와 함께 잘 조율된 긴장감이 함께했다. 개운한 선수들의 몸놀림이 가벼우면서도, 실전과 다를 바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수원이라는 상대이기에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시합을 앞둔 대전선수들의 오전훈련이 끝나 갈 즈음, 누구나 할 것 없이 온몸이 땀으로 적셔져 있던 대전선수들에게 먼 곳으로부터 손님들이 찾아왔다.
이라크로부터 색목인의 손님들은 작은 여자아이 한 명과 조금 더 큰 남자아이와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 3명과 함께였다. 이들과 함께 간 대전의 이영해 팀장은 “하필 중요한 경기 전날이어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다.” 미안해하며, 두 아이에게 대전의 유니폼과 사인볼을 선물했다.

마무리 훈련까지 끝낸 선수들은 이라크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고, 땀에 젖은 몸을 씻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자체 훈련장이 없는 대전선수들이 대전시설관리 공단의 도움으로 훈련을 하는 대전월드컵 경기장의 보조경기장에는 자체 샤워시설이 없는 관계로 훈련이 끝나면 선수들은 서둘러 버스에 올라, 유성 시내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마지막 경기를 목전에 앞둔 전날이었기에 이라크에서 온 손님들을 살뜰히 챙겨줄 여력이 없었다.

주장인 강정훈만이 남아 이라크에서 온 손님들 중 어린 남자아이에게 사인볼을 이용해서 볼을 키핑하는 방법과 드리블하는 방법 등 기초 자세를 가르쳐 주었다.

털 스웨터와 긴 청바지를 입고 있던 이라크 소년은 여느 소년들과 달리 특별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 또래 아이들처럼 밝고 건강하게 웃을 줄 알았으며, 잔디를 밟을 수 있는 축구장에서 프로 선수의 지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조금은 흥분해 있는 듯 보였다. 공이 주어지고 아이가 조금씩 뛰기 시작했을 때서야, 발을 옮기는 걸음걸이가 조금은 불편해 보이는구나 싶었지만, 빨리 뛰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쉽게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볼을 키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자 곧잘 잘 따라하는 아이에게, 강정훈은 시범을 보인 뒤 “드리블”을 외쳤다. 그런데 갑자기 이라크 손님들과 동행한 한국 손님들이 안 된다 말려왔다. 강정훈은 잠시 당황한 듯 보였고, 이라크 소년 역시 조금은 멈칫했지만, 자신의 두발 앞에 놓여져 있는 공을 번갈아 차며 서툰 드리블을 시도했다. 채 3미터도 되지 않은 짧은 드리블이었지만, 꽤 괜찮은 드리블이었다. 소년은 태양을 담은 듯 밝게 웃었고, 강정훈의 목을 끌어안으며 서툰 한국말로 고맙다 했다.

이라크에서 온 이 소년의 이름은 트와나 17세. 이라크에서 태어났고, 웃는 모습이 예쁘며, 축구를 매우 좋아하고, 아이에게는 두 다리가 없다. 전쟁이 끝났어도 전쟁 중인 나라, 이라크에서 트와나는 3살 때 지뢰로 인해 두 다리를 잃어야 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다리를 잃은 탓이었는지, 처음 트와나를 봤을 때 13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체구였다.

한쪽은 대퇴부에서부터, 다른 한쪽은 발목에서부터 의족을 하고 있었고, 자이툰과 외환은행 나눔재단 관계자 분들의 도움으로 6살 난 여자아이 아진과 함께 의족을 새로 맞추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했다. 동행한 이라크 남자들은 이들의 아버지들과 통역이었고, 작고 예쁘고 새침했던 아진은 태어나자마자 팔이 괴사되어 한쪽 팔을 잃은 상태였다. 레이스가 달린 예쁜 치마를 입고 온 아진은 아빠의 주변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안녕과 하이를 아무리 외쳐보아도 사진을 찍자고 하면 새초롬이 고개를 돌리곤 했다.

이들과 함께 대전을 찾은 외환은행 나눔재단 이청원 국장은 “우리도 전쟁을 겪어본 나라의 사람이기 때문에, 이들의 아픔이 무엇인지 더 잘 알고 있다.” 며 밝게 웃으며 축구를 하는 트와나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와 아저씨와 함께 잔디위에서 축구를 하는 트와나는 축구를 무척 좋아하는 아이라고 했다. 이라크에서도 축구를 열심히 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주 넘어졌을 것이다.

잔디 위에서 하는 축구도 공을 쫓아 속도를 낼라 치면, 금새 넘어져 버리곤 했다. 엎어지고 넘어지고 아이는 계속해서 쓰러졌다. 그렇게 쓰러졌다 일어서 다시 공을 쫓아 달리곤 했다. 하지만, 아이가 일어설 때 손을 내밀어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트와나의 아버지조차도 그가 쓰러질 때마다 안쓰러워 표정이 어두워 졌지만, 그를 부축해 일쎄워주지는 않았다.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것은 트와나 혼자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아주 잘 해내고 있었다. 아니 잘해내는 것 이상이었다.

넘어졌다가도 일어설 때면, 매번, 트와나는 조금 전보다도 밝게 웃었다. 넘어지는 것이 재미있다는 듯이, 아프지 않은 듯, 공을 쫓아 달릴 때보다도 더 밝게 웃어보였다. 사람들은 그가 넘어지며 다칠까 걱정하고 두려워했지만, 정작 트와나는 넘어지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 헤딩을 해보고 싶다며, 자신의 머리 쪽으로 공을 던져 달라고 했다. 몇 번인가는 멋지게 헤딩에 성공했고, 몇 번인가는 트와나의 머리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공이 날아갔다. 하지만, 매번 아이는 공을 맞추기 위해 몸을 던졌고, 털썩 앞으로 쓰러졌다. 웃었다.

강정훈 선수를 보내고 난 뒤, 잔디 위에서는 한국 대 이라크의 친선 경기가 열렸다. 이라크팀에는 트와나와 트와나의 아버지와 아진의 아버지와 이라크-영어 통역사가, 한국팀에는 자이툰과 외환은행 나눔재단 관계자들과 대전시티즌 서포터즈 퍼플크루의 여성 서포터가 함께했다. 4대 4에 한쪽 골대만을 사용하는 작은 게임이었다. 골대에 가까이 서있는 사람이 골기퍼가 되는 막무가내식 규칙이 적용되었지만, 점수를 계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득점이 나왔다.

게임은 으레 몸이 불편한 트와나를 봐주는 일방적인 내용이 될 거라 예상했지만, 실전에 들어가자 서로 공을 향해 한치의 양보도 없는 일전이 벌어졌다. 마른 체구의 한국 아저씨와 볼록히 배가 나온 이라크 아저씨가 어깨를 부딪치며 서로의 공을 뺏으려 했다. 서로의 몸이 부딛힐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축구란 그런 것이었다. 달리고 몸을 부딪칠 때마다 살아있는 내안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웃음이 터지는 것.

1대1로 공을 가지고 상대할 때만큼, 트와나는 공을 많이 잡아 볼 수는 없었지만,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자신의 위치를 잡고, 공을 향해 달렸다. 다른 이들보다는 활발하고 많이 움직이는 데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사람들 속에서 달리며, 부딪치며, 혼자 하는 축구와 다른 진짜 축구를 할 수 있었다. 배가 고파질 만큼 한참을 달린 후에야 이라크와 한국의 친선 경기는 끝을 맺을 수 있었다.

축구시합을 위해 한쪽에 벗어 놓았던 두꺼운 청바지를 다시 주섬주섬 입던 트와나가 말했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통역이 옮겨주는 그 말에 자리에 있던 몇몇은 울컥했다. '고마워해야 하는 것은 우리란다. 아이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쓰러지는 것이 두렵지 않은 이가 누가 있을까. 아프지 않은 이가 누가 있을까. 하지만, 쓰러진다 해도, 넘어진다 해도, 웃으면서 다시 일어서면 된다는 것을 작고 어리고, 남들은 모두 당연한 듯 가지고 있는 두 다리를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잃어버려야만 했던 트와나는 알고 있었다. 가르쳐 주었다.

보조경기장에서 지척에 보이는 대전-수원전을 앞둔 대전월드컵 경기장은 고요하기만 했다.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거대한 기둥들이 더욱 웅장 해보였다. 내일 저곳에서 휘슬이 울리면, 수많은 사람의 환호와 외침이 가득 차게 될 것이었다. 피치위에서 달리는 선수들은 서로 향해 몸을 날릴 것이고, 부딪치고 쓰러지고, 잔디와 흙과 그들의 땀으로 유니폼은 물들어 갈 것이다. 지쳐 쓰러진다 해도 웃으며 일어설 수 있다면 살아가는 동안 살아가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트와나의 이야기는 이라크에서 한국까지 동행 취재한 ‘병원 24시’를 통해 10월 23일 11시 30분에 방송된다.


대전시티즌 선수들과 함께 한 단체 사진-맨 아랫줄 오른쪽에서 세번째에 트와나이다. 




대전 월드컵 경기장 보조구장에서 공을 차보고 있는 트와나. 이라크의 17세 소년이다.




트와나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 아진. 아버지가 다른 아저씨들과 함께 축구를 하고 있는 쪽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트와나가 대전시티즌의 주장, 강정훈에게 축구를 지도 받고 있다.



수줍어 아빠의 곁을 떠나지 않는 아진에게 함께 축구를 해볼 것을 권유하는 강정훈 주장.




안녕, 고마워요. 아쉬운 짧은 이별.




이라크어-영어 통역사 아저씨의 실수에 박장대소 하고 있는 트와나.




'저에게 공을 던져주세요!' 라며 헤딩을 연습해 보기도 했다.



헤딩을 하면 넘어진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움직임은 의족에게는 무리다.



헤딩을 할때면 몸 전체가 고꾸라지듯 넘어졌지만, 그는 즐겁게 다시 공을 던져달라 요구했다.



쓰러져도 웃으며 다시 일어난다. 소리내 웃기도 한다. 마치 넘어지는 게 즐겁다는 듯이. 아이는 축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했다. 축구를 하기위해 넘어지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아이의 다리는 무척이나 낯설은 것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



트와나가 쓰러져도 트와나의 아버지는 쫓아가지 않는다. 멀찍이 서서 걱정스레 바라만 볼 뿐이다. 누구도 그가 트와나의 아버지라고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가 트와나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그의 아버지임을 알게 해준다.



아들이 웃을 때면, 아버지도 함께 웃는다.




아빠, 축구 언제 끝나요? 오빠와 아빠와 아저씨들은 축구만 해요. 아진이 아빠가 벗어 놓은 양복 윗도리와 구두가 놓여져 있는 자리에서 축구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잊지 않을께요. 감사합니다.



박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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