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8.03 16:29 / 기사수정 2010.08.03 16:31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K-리그 올스타팀과 맞붙는 FC바르셀로나의 무성의가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바르셀로나는 당초 정예 멤버로 내한할 것이라던 약속을 뒤집어 28명의 선수단 중 단 11명의 1군 선수와 함께 아시아 투어에 나섰고, 내한 첫날 기자회견에서는 K-리그 올스타전에 대한 최소한의 언급도 없이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해 빈축을 샀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바르셀로나의 이번 내한 경기로 인해 K-리그 올스타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K-리그 올스타전은 엄연히 K-리그 팬들을 위한 축제의 자리다. 그런데 이번 맞대결은 오직 바르셀로나라는 세계 최고의 클럽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누구를 위한 올스타전인가
그러나 자국리그에 대한 지지 기반이 다른 리그에 비해 탄탄하지 않은 K-리그가 유럽의 빅클럽과 맞대결을 펼치는 방식은 어떤 면에서도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K-리그 올스타와 해외 유명 클럽과의 대결이 갖는 명분은 이를 통해 국내 축구팬들에게 빅클럽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동시에 K-리그를 대내외 적으로 홍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무리 바르셀로나가 인기 팀이라지만 K-리그 올스타와의 경기라면, 올스타전의 그 존재 의미에 따라 일반적인 국내 축구팬들보다는 평소에 K-리그를 아끼고 사랑해 온 K-리그 팬들을 먼저 우대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번 경기의 높은 티켓값은 그럴 가능성을 저해시킨다.
10만원 내외의 비싼 티켓값의 원천은 '바르셀로나를 보는 것'이지 'K-리그 올스타팀과 바르셀로나를 보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K-리그는 관심 밖이며, 그 경기에 오는 관중들은 바르셀로나를 응원하고, 바르셀로나에 초점을 맞춘다. K-리그 팬들은 자신들에게 별 의미도 없는 친선 경기에 그런 비싼 티켓 값을 낼 생각이 없다.
바르셀로나를 응원하는 관중들은 메시와 즐라탄을 비롯한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환상적인 경기력이 보고 싶을 뿐이다. 이날 모인 관중들 사이에서 바르셀로나는 '우리' 팀이 되고 K-리그는 들러리가 된다.
홈 경기장에서 졸지에 '원정팀'이 된 K-리그 올스타팀은 이겨도 '바르사가 시차 적응이 안됐어','친선 경기 이길라고 죽자고 덤비네','메시가 드리블하게 나둬'같은 반응을, 지면 '이것이 너희의 현주소'라는 비야냥을 받을 것이다. 바르셀로나 팬들이 잘못되거나 K-리그가 인기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상황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
단적인 예로 지난 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C서울의 친선전을 들 수 있다. 당시 서울 스트라이커 정조국이 경기 중 태클로 파울을 저질렀는데, '감히' 맨유 선수에게 거친 파울을 했다는 듯 갑자기 경기장이 야유로 가득했다. 그 장면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조국은 엄연히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했던 K-리그와 서울의 대표 선수였고, 그곳은 서울의 홈 구장이었다.
물론 메시나 즐라탄을 비롯해 지난 시즌 '세계 챔피언'이었던 바르셀로나를 스페인에 가지 않고도 눈 앞에서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왜 K-리그 올스타전이어야 할까?
국내 축구팬들에게 해외 축구 클럽의 경기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면 (그나마도 차선책이지만) 바르셀로나와 K-리그 단일 클럽 간의 경기로도 충분했다. 만약 그랬다면 바르셀로나 팬과 해당 K-리그 팬의 열띈 응원 경쟁도 벌어지고, K-리그 클럽과 올스타에 뽑히지 못하는 선수들에게도 좋은 경험의 기회가 됐을 것이다.
K-리그 팬을 내쫓는 고가의 티켓
만약 비싼 초청비로 높은 티켓 가격 유지가 불가피했다면, 연맹이 이 경기에 K-리그 팬들을 위해 발벋고 나섰으면 어땠을까?
연맹은 바르셀로나를 초청한 주관사로부터 5억 원을 받았다. 올스타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고 판단했는지 홍보 활동을 제외한 TV중계권, 티켓 판매, 메인 스폰서 등은 대부분의 권한을 주관사에게 넘겼다.
그보다는 연맹이 주관사와 공동으로 이번 경기를 주최하여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되도록 많은 K-리그 팬들이 올스타전에 함께할 수 있도록 티켓 가격을 낮추거나, 차라리 주관사로 받았던 5억원을 그대로 K-리그 팬들에게 돌려주는 것도 가능했다.
예를 들어 K-리그 클럽 시즌 티켓 소지자들에게 티켓 가격을 파격적으로 할인해 줌으로써 평소 K-리그에 성원해주는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1인당 평균 25,000원 정도씩만 혜택을 받더라도 K-리그 시즌 티켓 소지자 2만명이 바르셀로나전에서 메시 대신 이승렬과 구자철, 정성룡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암표라는 부작용에 대한 반론도 있겠다. 그러나 티켓과 시즌권의 이름을 대조하는 방법도 있고, K-리그 팬들은 겨우 1~2만원 남겨먹자고 자신들의 자존심을 팔아먹을만큼 충성도가 낮은 사람들도 아니다. K-리그 시즌권 살 정도 열정은 그리 쉽게 나오는게 아니다.
대내외적 홍보 효과도 미미할 것이다. 바르셀로나가 프리시즌에 1.5군으로 K-리그 올스타와 친선전을 치렀다는 것이 K-리그 이미지 재고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줄지 의문이다. 국내팬들도 앞서 말한 그런 경기장 분위기에서 K-리그를 달리 보는 계기를 갖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바르셀로나의 훈련장이 되어 버린 K-리그 올스타전
마지막으로 K-리그 올스타전을 대하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태도도 K-리그 팬들의 축제가 되야할 올스타전을 빼앗아가 버렸다.
리오넬 메시는 방한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오랜만에 실전에서 뛰는데 시즌을 앞두고 체력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준비를 잘 할 수 있는 경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K-리그 올스타전은 졸지에 유럽 빅 클럽의 연습경기장이 되고 말았다.
이는 바르셀로나의 잘못 만은 아니다. 현재 K-리그는 시즌이 한창이지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시즌 개막을 목전에 둔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서 바르셀로나는 자연스럽게 K-리그 올스타전을 프리시즌 연습경기처럼 임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 기획 자체가 잘못된 경기다.
이런 이유로 K-리그 올스타와 바르셀로나의 대결은 K-리그에도, K-리그 팬들에게도 의미있는 경기가 되기 힘들게 된, 본질을 잃어버린 경기가 되어버렸다.
아쉬운 조모컵의 중단
기존의 올스타전 방식에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K-리그 올스타와 J리그 올스타가 맞붙는 조모컵이 2년 만에 중단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K-리그 올스타와 J리그 올스타는 조모컵이란 이름 아래 2008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각자의 홈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첫 해에는 K-리그가 3-1으로 승리했지만, 지난해에는 J리그가 4-1로 승리했다.
지난 해 조모컵의 패배는 AFC챔피언스리그의 초반 부진과 맞물려 K-리그 클럽과 팬들에 경각심을 심어줬고, 절치부심한 K-리그는 2010 AFC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 배정된 동아시아 4장의 티켓을 싹쓸이하는 쾌거를 이룩해냈다.
J리그 역시 2008년 조모컵 당시 참패를 당한 뒤 이듬해 설욕을 위해 리그 최고의 선수들로 팀을 구성하는 등 양리그 올스타의 맞대결을 통해 팬들에게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처럼 올스타전의 패배가 마치 A매치 한일전에서의 패배처럼 기분 나쁘고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 적이 있었는가?
재밌는 골세레모니 장면 외에는 별다른 의미를 찾기 힘든 중부올스타와 남부올스타의 맞대결이나 주객이 전도되는 해외 유명팀 초청 올스타전보다는 흥행은 조금 덜 되더라도 K-리그에 훨씬 의미있는 작업의 계기가 됐던 조모컵의 유지가 아쉽기만 하다.
서로 라이벌 의식을 고취시켜 K-리그와 J리그의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일반 축구팬들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한일올스타전은 양 리그의 발전을 도모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존경받을 만한 클럽이고, 배울 점이 많은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K-리그를 사랑하고 아끼는 팬들은, 그 중에서도 적어도 이글을 쓰고 있는 기자는 K-리그 올스타전에서 메시와 즐라탄이 골을 넣고도 무덤덤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대신 이동국이 고금복 주심 앞에서 코너킥 플래그를 걷어차는 골 세레모니나 이승렬이 J리그 올스타 골문에 환상적인 슛을 넣는 것을 보고 싶고, 챠비와 이니에스타가 오지 않은 것보다 백지훈과 지동원이 올스타에 뽑히지 않은 것이 아쉬울 뿐이다.
K-리그 올스타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표 선수들이지, 바르셀로나가 축구 경기를 하기 위해 필요한 11명의 무명씨들이 아니다. 내년에는 '우리'가 즐길 수 있는 K-리그 올스타전을 돌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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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C) 엑스포츠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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